인생-고통=0 [736900] · MS 2017 · 쪽지

2017-08-04 02:09:29
조회수 20,784

공장에서 알바 한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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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흘전 친구와 밥을 먹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알바를 사흘간 할 생각이 없냐는 거였다.

(모 알바사이트에 지원해 뒀던 공장이었는데 친구랑 젊어서 공장알바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일 것이라고 둘이 지원한 거였는데 나에게만 연락이 왔다. )


사실 친구를 배신하고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했는데 연락해주신 분이 부르신 시급이 일반 알바의 두배였다. 공장알바가 페이가 쎈줄은 알았지만...



그래서 그날 바로 공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왜 ' 그 날 바로' 이냐면 2교대 야간 근무이기 때문이다.



*2교대가 뭔지 나도 알바를 하면서 정확히 알게 되었는데

  하루에 2번 교대하는 것이다. 즉 12시간씩 일을 하는 것 이다.

일반적인 대학병원 등에서 하는 3교대는 하루에 3번. 8시간씩 일을 하는 것이다.


2.

밤 8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8시에 퇴근을 한다.

남들 다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남들 다 출근 할 때 퇴근을 해서 집에가서 잠을 잔다. 그리고 해가 지면 일어나서 바로 출근을 하고 이 생활을 약 사일정도 했다.  


이때 바뀐 생활 패턴을 복구하느라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처음에  알바 할때도 정말 피곤했지만 복구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왜 수면패턴을 잘 지켜야 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수면 패턴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면 일상이 엄청나게 황폐해 진다. 

알바를 하는 동안 가족과는 정상적인 이야기를 한마디도 나누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낮에 잠을 자기 때문에 아무래도 깊게 자는게 어렵다.





3. 

내가 일한 공장은 작은 전기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는데 내가 맡은 업무는 매우 단순하고 쉬운 업무였다.


손톱보다 조금 더 큰 반도체 같이 생긴 부품을 계속 돌아가는 오븐기에 넣어주는 것인데, 이게 아래를 보면 안되고 위를 보게 넣어야 한다.



사실 첫날은 어찌저찌 할만 하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정말 지겨워 지는데 혼자서 온갖 잡생각을 해도 심심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있는데, 내가 포장마차 주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포장마차냐면 어렸을 때 내 꿈이 포장마차 주인이었다.



그래서 작은 은색 부품을 은색 멸치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굽는 상상을 했다.

'나는 지금 멸치를 굽는다..나는 포장마차 주인이고....나는 지금 멸치를 굽는다...최대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야해' 이렇게 계속 상상했다.





컨셉은 일본 영화 심야식당이었다.

즉, 사소한 멸치 같은 음식에도 정성을 담는 포장마차 주인 이었다.




하다가 속도가 좀 느려지는 것 같으면 "아 손님들이 기다리시겠다. 빨리빨리 구워야지ㅡㅡ" 하면서 끊임없이 각성하면서 멸치(부품)을 구웠다.





마지막날에는 이 놀이에도 환멸을 느끼게 되어 그냥 올렸다.






4. 

보통 공장에서는 서서 일하는게 원칙인데 



셋째 날은 나를 매일 집으로 출퇴근 시켜 주시는 부장님께서 갑자기 오셔서는 

"힘들죠? 여기 앉아서 해도 괜찮아요"  하시고는 의자를 가져다 주셨다.




그리고 부장님이 사무실로 올라가자 마자 옆에 일하던 여사님이 


"원래 부장님이 절대 의자에 앉으라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의자까지 가져다 주고 학생이 예쁘게 생겨서그런가봐~" 하시며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매우 놀란듯 말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그렇게 예쁜가? ㅎ' 라고 좋아하고 그런 부장님의 호의에 감동받아 더 빠른 속도로 열심히 멸치들을 구웠다.



그리고 집에가서 거울을 본 결과 여사님의 말은 정말 빈말이었던 것이다.



밤을 새서 일을 마친 나의 모습은 그야 말로 폐인 상태 였다.

어딘가에 그을린 오징어 같았다.



 여사님이 확실하게 빈말을 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5. 

공장알바를 하루 하고 나서 바로 감기에 걸렸다.

사실 밤샘보다 감기 때문에 정말 죽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그 날 소개팅이 잡혀있었다.



집에 가서 바로 잠을 자도 몸이 안돌아 올 것 같아서 

소개해준 친구에게 제발 소개팅을 미루면 안되겠는지  싹싹빌며 부탁을 했지만 친구가 이미 세번이나 미룬 상태여서 한번만 더 미루면 나를 차단하겠다고 했다.


앞에 글에도 썼지만 나는 아파도 절대 아프다고 하지 않기도 하고 약속에 대한 책임감에 그냥 감기에 걸려서 골골대는 상태로 소개팅에 나갔다.



상대가 마음에 들었어도 소개팅에 열심히 하기 힘들었겠지만,


 상대가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내 스타일이 아닌데다가  몸이 너무 안좋고 피곤한 상태여서 빨리 집에 가고싶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상대방은 전혀 집에 갈 맘이 없었다.




밥을 먹고 나에게 카페에 가자고 했다.



집에 간다고 하고 그냥 도망가고 싶었지만, 만나면 일단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가 오랫동안 기달렸다는 듯이  두려운 표정으로 나에게 




"근데 혹시 담배 펴요?" 라고 물었다.




나같이 하얀 피부의 소유자에게 담배라니;;;;;......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자꾸 기침을 하고 목이 잠겨서 참 걸걸 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 것 같았다.






내가 약간 당황스럽다는 듯





 ".......냄새나요?" 라고 묻자






그 분이 진짜 헉...하는 표정을 지으며



 "냄새는  안나는데요.....담배펴요?"

라고 아주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엔 전자담배만 펴서 냄새 안날텐데.? 옛날에는 두개 번갈아가면서 폈는데, 냄새 날까봐 요즘엔 엥간해서 안그래요. "





그러자 그분은 "아.....아.....뭐...개인 자유인데.....저는 안펴서 좀 그렇네요.." 

(그러니까 소개팅어로 번역하자면 엄청나게 담배피는 여자싫다는 거였다.)





"아 ...그러시구나....^^"





그리하여 우리는 카페에서 역대 소개팅 최단시간인 20분만에 음료를 마시고 헤어지는 기염을 표했다.









6.

여자들의 싸움



첫날에는 주말이라 남자직원들이랑 일을 했지만.


둘째날 부터는 평일이라 여자중년분들과 함께 일을 했다.



여러분이 계셨는데 내가 일하는 작업장 쪽에 계신 여사님은 우울한 개구리 페페를 닮으신 분이었다.


 나에게 초반에는 정말 잘해줬지만 갈 수록 내가 쉬는 (합당하게 쉬는 것이었다)모습을 보면 못마땅해 하며 일하라고 눈치를 줘서 정말 싫었다.


부장님등 모두 다 내가 일을 잘한다고 칭찬해주셨는데 페페여사는 잘챙겨주는 듯 하면서도 나를 견재했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아들을 계속 자랑했다.



그리고 다른 여사님은 무지 무섭게 생겼는데,

 내가 페페여사 라인인줄 알고 나에게 자꾸 일을 시켜서 힘들었다.



하지만 후에  이 무지 무섭게생긴 분은 내가 페페여사 라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사탕도 챙겨주고 자기 딸과 나를 비교하시며 나를 칭찬해 주셨다.




마지막날 공장 분위기를 다 파악하고 보니 페페여사가 사실 왕따였다.




너무 장대해서 내가 글로 다 풀을 수는 없지만 이 작은 공장 여자 휴게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궁중 암투극 보다 더 치열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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