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관리자 [340191] · MS 2010 · 쪽지

2010-11-28 2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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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순간] '촌철살인의 힘' 교훈·급훈의 메시지와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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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강당에 걸려 있는'10계명'.

“인생은 거꾸로 생각해도 답이 나온다.”

학교의 교훈이나 급훈 중 다소 역설적 발상들이 삶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명언들이 많다. 그 중 가장 강렬한 것이 '거창고 10계명'. 이달 22일 거창고를 불쑥 방문했다. 취재를 하자마자 거창고는 이런 10계명이 나올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의 자율 속에는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고, 학교를 처음으로 찾았지만 대개의 낯선 눈빛이 아닌 담임교사를 대하듯 깍듯한 인사와 정감이 전해왔다. 축구를 하는 고3 학생, 쉬는 시간에는 옹기종기 모여 자유롭게 유럽 축구를 보는 학생들은 분명 역설적이지만 자율이 있었다.

58년 역사를 자랑하는 거창고가 왜 명문고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지 학교는 그렇게 꾸밈없이 말하고 있었다. '내 아이들도 나중에 크면 이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물질만능주의, 천박한 자본주의, 이기주의 등이 판치는 요즘 세태를 보면 거창고의 가르침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세상을 향한 외침이 '거창고 10계명'이다. 학교 강당 맨 뒤편에 크게 걸려 있으며, 누구나 한번 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봄 직하다.

경남 창녕이 고향으로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특강 때마다 이 '거창고 10계명'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카페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파르재 마을' 역시 이 '10계명'을 따로 소개하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연말과 다가올 신년, 마음을 다잡는 의미에서 '세상 속 메시지'를 취재했다.

◆대단한 역설, '거창고 10계명'

거창고의 취업 10계명에는 역설이 가득한 통찰이 깃들어 있었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해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이 두 가지 계명에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담겨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자는 거창고의 교육이념이 배어 있다. 요즘 학생들은 보수가 좋고, 편안한 직장을 선호하기 쉽지만 이 사회에 공헌하는 일은 주로 음지가 많다는 사실을 새겨봄 직 하다.

셋째,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등이다.

거창고의 계명은 강렬했다. '철저히 낮아지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평생직을 택하고 개척할 수 있는 즉, 도전할 만한 일을 찾고 아무도 가지 않는 미지의 곳으로 가라는 것. 하지만 멀리 내다 보면 이 계명의 의미도 곧 알 수 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평생 일할 수 있는, 게다가 아무도 가지 않는 '블루오션'을 개척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다시 한번 대단한 역설이다. 역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장보다는 묵묵히 일하며 일에 대한 보람과 타인에 대한 배려·봉사로 점철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대목에서 김선봉 거창고 교장의 말이 귓가를 때렸다. “우리 학교 출신들이 나중에 총리나 장관, 국회의원 등 쉽게 말해 사회적으로 출세한 이들이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가라. 마지막 열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세상의 가르침과는 분명히 다른 계명이다. '아내의 말도 듣지 말고, 또 단두대로 가라니' 말이다. 놀랍기만 한 대목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영어 속담 '노 크로스, 노 크라운'(No Cross, No Crown: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이다.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때론 가정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뜻과 불구덩이로 뛰어든 자가 오히려 살게 된다는 역설이 내포돼 있는 셈이다. 그 의미를 안다면 모두 새겨도 손해될 것이 없는 계명들이다. 가히 '명품'이다.

◆이색 교훈 속 삶의 반추

'잘 살자'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다' '낚이지 말자' '엄마가 보고 있다' '담임이 뿔났다' '큰 흐름의 나를 찾아라' '지금 이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등등.

대구시와 제주도 등지의 주요 학교의 교훈·급훈이다. 이 시대의 세태는 물론 미래 세대인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무엇을 지향하며 살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 톡톡 튀어야 사는 시대의 흐름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대구 영남고의 교훈은 간단하지만 와 닿았다. '잘 살자.' 웰빙 시대에 딱 맞는 짧은 3음절 교훈으로 이를 보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각자 나름대로 '잘 살자'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오성중·고는 불교 고승들의 선문답을 연상케 한다. '순간적인 감정에 살지 말고 큰 흐름에 나를 찾아라.'

각 학교별 특성이 반영된 교훈들도 눈에 띈다. 대구체육고는 '정상에 서자', 경북예고는 '진·선·미', 대구여고는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겨레의 밭'을 교훈으로 쓰고 있다.

급훈도 다양하다. 제주도의 경우 '이왕이면 다홍치마' '배워서 남주자' '공부해야 밥 준다' '급훈 보냐? 칠판 봐라!' 등 학생들의 독창적이면서 개방적인 세태를 그대로 반영한 급훈들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대구시와 제주도는 교육청 차원에서 좋은 교훈·급훈 만들기를 각 학교와 학생들에게 권장하고 있으며, 각 학교별로도 교육이념을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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