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지역감정 이해 안되는건 아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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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쌓여온 이미지가 일반화 된거 아님?
근거없이 생기진 않았을거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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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대선 이기려고 찌라시 뿌린게 먹혀들었죠.
그때의 지역감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고요
김대중:호남사람들 만큼은 저를 뽑아주서야 합니다!!
김대중이 만들었을까요 박정희가 만들었을까요?
누가 만들었음?
그전까지는 지역구별없이 서로 하하 호호 하고?
적어도 박정희가 쾅 터뜨렸다는 게 다수설임
김대중 끌고 들어오는 저의를 모르겠네요
어떻게 터트림?
그당시 박정희랑 대선뜬사람이 김대중이라서도 그랗고 김대중이 저 발언해서 얘기하는건데
김대중 얘기하면 불편하심?
지역감정이 없는 이상적인 나라가 있을까요
자기 이익을 위해 조장하고 격화시켰다는 것이지요
그건 알겠는데
그당시에 다른대선후보들도 지역 언급하면서 유세했음
박정희가 뭘 어떻게함?
얘기를 못들어서
경상도민의 인구 숫자가 호남인구보다 많아서 그쪽 표를 얻는게 관건이였는데 국민의식이 그때만 해도 엄청 낮은상태, 그냥 예를 들자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티슈 한통만 줘도 뽑아주는 시대..였다고 들었습니다(뭐 과장된 면이 있기야 하겠죠) 하튼, 지금 보다는 국민의식이 좋지 않았죠.
경상도의 표를 얻기위해 찌라시를 배포해 뿌렸고, 그게 먹혀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예를들면 전라도 식당에 경상도 사람이 가면 밥을 안준다더라..등등 유명한 말이죠? 지금들으면 개소리지만 그땐 먹혔었죠.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대선에 당선되었고요
박정희가 찌라시 돌렸다는 근거는?
지역발전차별
영남지역에 집중적으로 고속도로니 공장이니 깔면서 호남지역 소홀히한건 팩트. 영남지역이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그때 이득을 너무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당선때에 생긴 지역감정이 격화되어 최고조에 달하였을 때에, 그 지역감정 완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던 노태우 전두환을 사면하고 조금이라도 국민을 통합하려 했던 대통령이 DJ라는 것을 알고 계시다면 적어도 DJ가 지역감정의 시초라고 보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이여 단결하라 ㄷㄷㄷㄷㅈ
개무섭내요
뭐가 무섭다는 말이죠?? 호남인이여 단결하라라는 찌라시가 DJ가 뿌린것이였던가요?
당시 호남에도 인프라 엄청 깔렸다고 들었는데 구라임?
박정희는 영남지역이 지지기반이었음. 그리고 이후 전두환때 광주민주화운동때 호남홀대는 정점을 찍었었음. 확실한건 특정지역감정이 전혀 자연스럽게 나타난현상은 아니란거임. 글쓴이도 뭔가 그런경향이 있는거같은데 호남이든 영남이든 지역감정은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하길
박정희가 영남에 기반세력을 둔거는 뭔상관
김대중도 호남이 기반세력 뒀는데
전두환이 특별하게 호남을 차별했다는 근거는?
518 광주민주회 운동은 호남에서만 일으켰으니 다른지역과 비교 불가능하니 제외하고 ㅇㅇ
그 자연스럽지 않다는게 확실하다는 근거는 어디서 나옴??
무얼말하고싶은거임 지역감정이 김대중때문에 생긴거라고 말하고싶은거임 아니면 원래 호남사람들이 후져서 지역감정이 생겼다는거임 님이 뭘말하고싶은지 모르겠음
난 내가 말하고싶은게 아니라 님얘기를 듣고싶어하는거임
제가 마지막에 단 댓글을 보셈
무슨 근거로 얘기하는지 그걸 듣고싶어하는건데
지역감정이라는것은 매우특수한것임. 나도 직접겪은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쟁이후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이승만때 제주도 양민학살사건부터 박정희때의 포항기반으로한 영남지역 공업화정책, 전두환때 서울회군사건직후 발생한 광주학살극 등의 여러가지 정치적인 사건들을 겪으면서 사람들 인식에 뿌리내린것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그 지역감정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있음. 광주사람들을 홍-어,전라도사람들을 절_라_디언이라 비하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아직까지도 일베에서 유포되고있으니.
그리고 좌익효수라는 국정원직원이 그런 용어를 사용한것들이 증거로 인터넷에 남아있는것으로보아 지역감정조장은 현재에도 특정정권이 심어놓은 정치공작이라는것을 유추할 수 있음.
제주도 양민학살
아무일도 없는 제주도에서 사람을 심심해서 잡아다 죽였을까?
그랬다면 나쁜짓이고
지역감정이 특수한것임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어디를 가도 존재하는데..?
지역감정은 근현대부터 시작되었음
조선시대때 함경도 지역차별때문에 반란생긴거 모름? 지역감정은 고대부터 있었음
국정원이 좌익효수라고 말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김
증거 ㅇㄷ?
경상도만 발전시킴
여수같은 작은곳에 공항도 놔주고 호남에서 레이싱대회도 개최시켜주고 경부선 말고도 호남선 고속도로, 철도등 많은데?
박지만이같은 사이비보수가 하는말들 너무 믿지 마세요... 글쓴이의 근현대사 역사관이 심각하게 우려됩니다... 제대로된 역사저널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좌익효수 검색 ㄱㄱ
국정원알파팀같은 댓글조작사건을 아직도 모르시는거같은데 좌익효수 댓글공작사건은 꽤 오래전이야기임...
박지만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ㄱ근거는 주장하는사람이 제시하는거임
ㅇㅇ 근거없는 편견은 아님 근데 너무 심해서 문제인듯해요 서로 죽일듯이 달려드니.. 그리고 나이 많으신분들은 과거에 역사적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젊은 세대가 지역감정가지고 있는거는 노이해 그건 그냥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고 밖에 안보임
박정희 전까지는 지역에 따라 당의 양극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호남세력에 기반을 두었다, 영남세력에 기반을 두었다. 기반을 둔 건 맞지만 결과적으로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게 지역감정의 산물이란거죠. 호남이여 대동단결하라! 이 찌라시가 어디 돌아다녔겠습니까 경상도에 돌아다녔습니다 김대중이 주도해서 호남아 뭉치자!가 아닌 박정희의 경상도 사람들아!전라도인이 지역감정으로 뭉치니깐 우리도 뭉쳐야 한다는, 역으로 지역감정을 일으킨거죠. 직접적인 근거를 찾긴 어렵죠 그당시 공화당과 중앙정보부가 어떤 곳인데.. 정황으로 볼때 대다수의 의견이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것이고 그냥 이정도로 팩트 전달해 드립니다. 관련 이야기들은 네이버에 찾아봐도 많이 나오더군요 한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이후 판단은 본인이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인물을 평가할 때 좋은점은 좋은점대로 높이 평가하고 나쁜점은 나쁜대로 평가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격화 되는 것도 문제가 있듯, 박정희 전대통령의 경제성장정책만 보고 모든 행적을 숭배하는것 또한 옳지 않습니다.댓글 보아하니 박정희 꽤나 좋아하시는 분 같으신데, 저것만은 유념하시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시는걸 권해드립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나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겠다
논박을 하려면 관련 증거 링크라도 걸던가 그런거도 없고
그리고 저 박정희 존나 싫어하는데 김대중도 존나 싫어하고
근거를 가져오랬더니 근거가 없다고 하면 저보고 어쩌라는거임 알아서 판단하라고?
님은 증거없이 심증만으로 알아서 판단해서 김대중 좋아하는거임?(뜬금없이 박정희 좋아하는 사람이라길래 저도 똑같이 말해봄)
그리고 저는 박정희 경제사업
고속도로 새마을 삼백사업 세개밖에 모름 ㅋㅋ
근데 내가 뜬금없이 박사모가 됬네
근거는 도대체 어떤 근거를 말하는거죠
박정희를 무덤에서 데리고 와야하나요~
많은 역사계에서 일하는 분들의 의견이 그렇다는거에요~ 저위에 제가 댓글 삭제한게 링크 갖고 왔다가 클릭해봤더니 삭제된 게시물이라 해서 지운거구요~ 박정희 지역감정 쳐서 검색해 보세요~ 같이 삼수 열심히합시다 화이팅
제가 말하는건 그런 의견을 어디서 말했는지 알려달라는거임
트위터같은 sns나
신문 기사나
오피셜이나
관련 서적에 어떤 문구가 있다 이런거요
김대중이 지역감정을 이용해서 표를 얻을려한 시초임 억지ㄴㄴ
영남을 먼저발전시켜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죠
우선 서해안은 중공때문에 무역을 위한 위치적 조건부터가 성립되지 않았고, 조선해양사업에 적합하지 못한 갯벌때문에 우선적으로 생각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호남지역은 이미 일제시대부터 일제의 정책에 의해 곡창지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업지대로서의 역할이 컸습니다. 반대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남지역은 물자운송과 경공업이 그나마 발전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쌀조차 수입해와야 했던 당시 사정상 이미 있던 곡창지대를 공단으로 전환하는 것 부터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우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3년만에 호남선 공사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공화당은 당시 영산강개발계획, 광주공업단지조성, 여수에 정유공장 유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이를 보아 '호남 푸대접'은 상당부분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신민당후보들은 껍데기뿐인 지원은 필요없다면서 호남주민들의 반발을 유도했고, 67.5.3선거에서 최초로 호남인들의 집결을 촉구하는 유세를 시작합니다.
이어 DJ는 71년 경선 당시 YS와의 대결구도가 성립되자 노골적으로 호남인들의 민심을 이용하려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영남민심 붙잡기는 67년 5월 3일 선거 유세에 관한 기사를 보시면 찾아볼 수 있으나 이후 71년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영남의 공화당 지지율이 하락하였고, 호남지역의 득표율이 신민당을 앞서는 등, 지역감정에 의한 투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7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마항쟁의 여파로 영남지역의 공화당 지지율이 급락하고, 전남지역의 공화당지지율이 여전히 신민당을 앞서는 모습을 보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81년이 되어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영남지역의 민정당지지율은 33%를 선회하며 호남의 민정당 지지율은 36%에 육박합니다. 이 선호도는 85년까지 유지됩니다.
그런데 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부터 판세가 변화합니다. 호남에서 YS의 민주당이 0~2%의 지지율을 보이는 반면 DJ의 평민당 지지육은 67%를 선회합니다. 이에따라 위기감을 느낀 YS는 민자당을 창당하고 영남으로 정치적 기반을 설정한 뒤, 결국 92총선에서 영남의 50% 몰표를 받고 당선됩니다. 이때 호남의 DJ 지지율은 70%에 가까워집니다.
역사적인 통계사실을 놓고 보았을때 박정희 대통령의 지역감정 조장은 설득력이 떨어져보이며 87년 이후 지역투표의 50%이상 표몰아주기 현상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발현되는 시기는 실질적으로는 30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중에 수능 끝나고 관련자료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