핥짝 [669956]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7-04-11 00: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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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체제의 국제정치와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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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국제정치를 도식화할때 'n극체제'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다극체제라고 하면 여러 개의 강대국(강대국의 기준은 상이할 수 있지만 보편적 기준에 따라서 정함) 들이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뜻하고, 양극체제라면 두개의 강대국, 일극체제라면 단! 하나의 강대국이 있는 것이죠.


현실의 역사에 대입해 보면, 1차대전 전, 전간기에는 다극체제였고, 전통적 강국인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의 헤게모니에 독일-이탈리아-일본을 비롯한 신흥 세력이 도전하는 모양새였죠(1대전 전에는 이탈리아는 연합국쪽이었지만요. 사실 간잽충이었음 ㅍㅅㅍ). 여기서 특기할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쪽이 현상 유지를 바라는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측-주로 전쟁과 같은 극단적 해결책을 동원하게 되는 측-은 현재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세력이죠.


2차대전이 끝나고, 영.프.미.러의 헤게모니에 대한 독일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부분적으로는 성공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대전기에 너무 큰 타격을 입고 더 이상 '강대국' 이라고 불리기 힘든 수준이 된 것이죠. 대신 소련과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두 국가의 국력은 그 전까지의  다극 체제 하에서의 강대국들의 그것과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이었고, '초강대국' 이라는 용어가 두 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양극 체제의 시작인 것이죠.


그렇게 긴장으로 가득찬 냉전-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전쟁이 적었던 시기임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이 1989년(공식적으로는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초강대국'으로 불리던 두 국가중 한 축이 무너지고,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자 초강대국으로 남은, 일극체제가 열린 것이죠.


앞에서 1차대전 시기를 설명하면서 말했듯,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세력은 보통 현상 유지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특히 일극체제라는, 그야말로 로마 이후에 처음 출현한 국제정세 하에서는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죠. 당연히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저런 전쟁에 개입했고, 논란의 여지가 약간 있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전까지는 말이죠. 알카에다가 이끄는 항공기가 미국 세계무역빌딩에 들이박아 버렸습니다. 미국 국민은 당연히 분노하고 당황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아 당연히 현상 유지를 위하는 세력이어야 할 유일 패권국이,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미국 국민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자국민의 목숨이 테러리즘이라는 위협에 시달리는데 현 상황에 만족스러울 국가가 어디 있겠어요? 위에서 말했듯이, 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국가는 극단적 해결책을 추구하게 되기 마련이죠. 문제는, 유일한 패권국이 '극단적' 으로 나가면 막을 나라가 아무도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게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테러리즘의 공포에 빠진 미국은 알 카에다 지도자를 숨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패권국이 아닌 일반적인 국가의 경우는 실행하기 힘든 옵션이죠),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이라는 이유로 이라크를(표면적 이유지만) 침공했습니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죠. 김대중 정권이 햇볓정책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정권 자체의 추진력도 있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미국이 그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9.11 이후로는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안보에 극단적으로 민감해진 미국의 입장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적국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었고, 결국 햇볓정책을 계승하고자 했던 노무현 정권과 마찰을 빚고, 종래에는 햇볓정책이 폐기됩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죠. 미국은 여전히 현 상황에 불만이 많고, 양극체제에서 탈락한 러시아는 과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긴장이 야기되는 이유도,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이 북한의 핵위협을 더 이상 좌시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 정부의 붕괴는 거대한 권력의 공백을 만들었고, '아랍의 봄' 과 맞물려 탄생된 IS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9.11 테러 하나에서 비롯된 결과인 거죠. 그런 견지에서 보면,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낸, 다시 말해 가장 성공적인 테러였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자기 전에 갑자기 심심해서 썼읍니다.


p.s. 이 아프가니스탄이 ㄹㅇ루다가 대단한 게, 1800년대부터 그 시대의 패권국들을 한 번씩 이겨봤어요. 첫빠따는 영국이, 냉전시기에는 소련이, 마지막 빳다는 미국이 맞았죠.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을 '제국의 무덤' 이라고 부르기도 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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