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성장 [265927] · MS 2008 · 쪽지

2017-04-08 22: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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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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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으로 본다면 각각의 정치적 입장에도 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썰을 풀어 본다면...


1) 보수(주의) vs 진보(주의)


보수의 대응개념으로 진보를 얘기할 때는 보수주의 vs 진보주의와 같이 "주의"가 붙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때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다음과 같은 논거를 가진다.


- 보수주의: 어떠한 사회체제가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과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고, 이를 섣불리 바꾸고자 할 경우 부작용이 생긴다. 그리고 그러한 체제유지의 필요성은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

- 진보주의: 어떠한 사회체제가 존재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역할과 필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체제가 적절하지 않을 경우 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체제유지의 필요성은 쉽게 소멸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농업생산과 토지소유제도에 대해 얘기한다면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 보수주의자: 매일 해가 뜨고 계절이 반복되는 것처럼 농업생산의 기본조건은 크게 바뀌지 않으므로 토지소유제도 역시 함부로 바꿀 일은 아니다. 토지소유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 진보주의자: 농업생산기술은 끊임없는 발견과 발명을 통해서 누적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농업생산의 기본조건은 동일할 수 없다. 따라서 토지소유제도는 달라진 생산조건에 맞추어 변경되어야 한다. 이를 막는 것은 농업생산조건의 유지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토지소유자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이때,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역사의 발전성에 대한 관점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시적으로 토지소유제도 개편시 혼란가능성에 대해 양자가 동의하더라도 진보주의자는 역사의 발전방향에 비추어 볼 때 일시적인 혼란이 예상되더라도 토지소유제도 개편은 추진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타당하다고 본다.


2) 수구(보수)적 태도 vs 개혁적 태도

수구(보수)의 대응개념으로 개혁을 얘기할 때는 보수 vs 진보...와 동일한 대응구도인 것은 아니다. 수구적 태도의 논거는 섣부른 개편시 혼란가능성에 대한 우려라는 점에서 보수주의의 논거와 기본적으로 동일하지만, 개혁적 태도의 논거가 진보주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진보주의자라고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개편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 경우 진보주의자이면서 수구적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보수주의자일 경우 특정사안별로도 (혼란의 문제 때문에) 수구적인 태도를 취할 경향이 크지만, 진보주의자일 경우 사안에 따라서 수구적인 입장 또는 개혁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진보주의자 정권의 다음 정권이 보수주의자 정권이라면 진보주의자들은 다음 정권에서는 수구적 태도를 취할 것이며, 보수주의자들이 거꾸로 개혁적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2-1) 개혁주의

사람들이 개혁주의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개혁주의라는 범주는 사실 애매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진보주의는 사회는 (생산력 발전, 경험의 축적 등으로) 발전한다는 역사관에 근거하므로 진보적 입장을 취하자는 것이므로 "주의"라는 접사가 어색하지 않지만, 각종 사안에 있어서 개혁"주의"적인 입장이라면 자신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혁하는 쪽이라는 것인데 다소 모순적이다.


(종교학 등에서의 개혁주의 표현은 별론으로 하고) 정치에서 개혁주의라는 것이 빈번하게 사용되는 경우는 사회주의이론 또는 사회주의국가에서인데 이때 개혁주의는 변혁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사회가 진보하는 양상에 있어서 일회적인 급격한 변혁을 통해서만 사회진보가 가능하냐? 소규모적인 개혁의 누적을 통해서도 사회진보가 가능하냐인데, 사회주의자들 일부는 소규모적인 개혁의 누적을 통해서도 사회진보 또는 사회주의 완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주로 사회민주주의자, 민주사회주의자 등 북유럽계열의 국가들이 그렇다.


소련, 중국,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에서 개혁주의자라는 표현은 자본주의와 타협하자는 것으로 치부되어 타도대상이었는데, 한자어를 사용하는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주의라는 번역 대신에 개량주의라는 번역을 선호한다(영어 원문은 reformism이다.) 그 나라들에서 "당신은 개량주의자야!!!"라는 표현은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주의는 특히 여성, 외국인, 성적 소수자,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은 이러한 집단에 대한 차별은 낮은 사회발전 양상으로 인해 나타난 차별이 권력집단 등의 이해관계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철폐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지금 어떤 진보주의자가 외국인, 여성에 대한 배려를 주장한다면 "차별이 철폐되어야 하는 현재적인 필요성이 있다"라기 보다는 "역사발전은 그러한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이다. 즉, 지금 당장 치별이 철폐되어야 경제가 발전하고 그런 현실적 필요성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현대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보다는 진보주의 입장에 친근하다. 상공업은 농업에 비해 기술발전속도와 조직변화도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보수주의가 훨씬 친근했다. 해는 내일도 뜰 것이고, 사계절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보수주의보다는 진보주의가 익숙하다 하더라도 특정국면에서 수구적 태도가 아닌 개혁적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근거를 요구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보주의자이면서 특정사안에 대해서는 수구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급격한 발전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다보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거부감 또는 두려움이 강하다.


p.s) 언론사 등에서 보수주의/진보주의 성향조사를 할 때에는 주로 여성, 외국인 등에 대해서 이러이러하게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우리나라는 특별히 북한에 대한 관계가 주요하게 언급됨) 그런데 설문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주의"에 대한 것과 "태도"에 대한 것이 혼동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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