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딸기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1577502
내가 군대를 가고나서 어머니께는 특별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건 내가 면회할 때나 휴가를 나올 적이면 항상 어디선가 딸기 한 소쿠리를 들고오시는 것. 딸기를 적잖이 좋아하는 나이긴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두세번 입에 가고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그냥 외면하기 마련인게 사람이지요. 그래 면회할 때 그렇게 딸기를 들고오시면 처음에 대여섯개는 입에 갖다대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다른 기름진 햄버거, 피자 따위를 먹고는 그저
ㅡ어휴, 뭐 다른걸 많이 먹으니까 딸기는 이제 못 먹겠다. 뭐 이래 많이 들구 오셨어요.
라는 말로 능청스레 집에 다시 가져가기를 어머니께 요구하고 부대로 복귀하곤 했습니다.
오늘도 휴가를 나온 밤, 어머니는 퇴근하면서 또 딸기 한 소쿠리를 사오셨습니다. 면회 세번에 휴가 세번이니 이제 나는 군대 가고서는 여섯번째로 딸기를 대접받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간단하게 만둣국으로 술자리를 하고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보면 그랬듯 후식으로 딸기를 준비하시다가는 대뜸 딸기만 보면 나의 생각이 난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께서 항상 나에게 딸기를 사와주시던 것이 불현듯 생각이 나 무슨 말씀이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건 내가 여섯 살 때의 이야기랍니다. 여섯 살의 나는 가족과 아파트 근처 지하에 있던 마트에서 찬거리를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제법 큼지막한 소쿠리에 담겨있던 딸기들이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나봅니다. 여섯 살의 나는 딸기를 사달라고 하면 '딸기는 나중에 사줄게'하며 후일을 기약할 게 뻔한 엄마아빠 생각이라도 했던지 그 딸기 소쿠리를 들고 계산대 아주머니의 눈을 피해 집에 자랑스레 가져가 두었답니다. 갑자기 이 여섯 살짜리 떼쟁이가 어떻게 가져온건지 적잖이 당황한 어머니가 이건 도둑질이야,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돼, 하며 다시금 나를 이끌고 그 마트로 가 계산대 아주머니께 저희집 아들이 이걸 계산도 안하고 가져왔다고, 당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연신 죄송하다 하시며 딸기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때 내가 과연 그 아주머니께 사과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것이 아닌데도 가게에서 함부로 물건을 들고올 정도의 성깔이었다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며 눈만 꿈뻑거리다가 다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가기만 했었겠지요.
그 뒤로 어머니는 어쩌면 이제 집에서 보이지 않는 큰아들, 딸기를 찾아다니며 당돌하게 현대판 딸기서리를 감히 감행하였던 큰아들의 모습을 딸기에서 찾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입대식 날에 나를 안고는 애써 한 화장이 다 번지도록 슬프게 우셨던 어머니. 그 어릴 적의 큰아들이 그렇게 바라마지않던 딸기는 어머니께는 저멀리 떨어진 나를, 당신이 걱정하든말든 안부전화 하나 짜게 굴며 연락 한번 하지 않던 나를 당신과 이어주던 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섯 살때처럼 딸기에만 매료되지 않는, 아니 이제는 딸기에는 여섯 살의 관심을 아주 끊어버린 23살의 청년은 이제 집에 냉장고에 딸기가 있었든, 면회할 때에 준비해온 음식에 딸기가 있었든 상관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의 주근깨 가득한 얼굴같은 그 딸기들은 나의 무관심 속에 썩어버려, 지금은 이제 어디로 갔을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겠지요.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또싸움? 2
살려줘
-
이스라엘인가 어디에서는 만장일치가 안되게 해놨다는데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이면...
-
아조시가 학생들 노는데서 놀기 좀 그렇자너
-
졸려 자러가야지 1
바이바이 잘자요
-
한완기 수학1 미개봉 팝니다. 반택포 2.3입니다. 중고나라,번개장터에서 거래 가능합니다.
-
유튜브보다 긁힘 5
저중에 실재로 하는 행동이 있음 시발
-
가끔 저를 그냥 팔로우 하시는 분들은 무엇..?
-
똥에서 설사가는느낌이지만 지2는 수능날 모르면50분을줘도 못푸는과목이라 화1갑니다...
-
필자는 새벽 3시경 고민이 있어서 글을 올렸다. 여기는 누구나 사람이라면...
-
다자는구나 4
내소중한오르비가,,,
-
과탐만 하다가 사탐을 하게 되어서.. 질문 남깁니다
-
잘자여 1
~~
-
의사선생님들 10
저 어렸을때부터 숨쉬면 심장이 자주 아팠는데 이유가 뭘까요 지금도 아픔 바늘로 찌르는 느낌
-
[소개 및 성적인증] https://orbi.kr/00071877183 안녕하세요...
-
그럼 Deers are jumping in the Kwanak mountain. 임?
-
한 35쯤에 요절하겠지 건강도 안좋아서
-
지금처럼 누워만있을까 ㅋㅋ
-
메리 솔크입니다~
-
아 쪽팔려 6
하 왜물어봤지
-
포기하면 편해 5
룰루랄라
-
M자탈모가오기시작했음
-
왜 근육통이 없지 등도 그렇고 요즘 상체가 잘 안먹는구만
-
갸름해짐 진짜
-
캬캬 주식 하따 5
-
갓다가 돈만 뜯길까봐 겁남
-
오른닮앗대..
-
앞으로 옯보검은 2
옴뇸뇸~~님이시다!
-
길게연애한건아님 걍 좀… 썰이많은거지
-
아니 무친거 아님?
-
-> 찐따됨-> 자존감 더 내려감 무한반복
-
유빈이랑 별개로 2
N제 가격은 애미없긴함
-
옛날에 mp3 불법다운 해 들었잖아 학교 선생님이 틀어주던 불법 영화 파일 봤잖아...
-
님들 인생 애니 있음? 13
추천 오네가이시마스
-
남자한테 받았던건 과거에 풀어서 다시풀기귀찮음
-
잠이 안와.. 2
아..
-
난 애인 있음 1
옵붕이들이 내 애인임
-
미친사람인줄알았음
-
돈 많이벌고 싶은이유가 10
다이닝 원없이가고싶어서임 맛있는게 좋아
-
오르비 internal server error는 못 참겠다
-
전여친썰) 3
-
나는 안 씀 1
딱히 양심 그런건 아니고 걍 나는 돈을 써야 풀게 되더라
-
짱깨 새끼들 1
냄새 ㅈㄴ 나서 속으로 욕하고 있었는데 신분증 사진으로 보여주길래 안된다고 돌려보냄...
-
야메추좀
-
ㅇㅇ...
-
연애썰 좀 길긴 한데 11
해피엔딩이아님 풀어볼까
-
고백 성공률 백퍼임 16
고백은 wwe임 이미 합 맞춰보고 기술드간다~~ 잘받아!! 하고 들어거는거임
엄마ㅠㅠ
8ㅅ8
아 진짜 이런 글 정말 좋아요 담백하다 진짜..
ㅠㅠㅠㅠ
ㅠㅠㅠㅠ
엄마생각난다 ㅠ
ㅠㅠㅠㅠㅠㅠㅠㅠ
교육이 참 중요하죠
직접 쓰신 거에요?? 글 정말 잘쓰신다ㅜㅠㅜㅠㅠ 문체가 향토적이야 너무 좋아요
와 산문시급 필력... ㅠㅠㅠ
깨달은 만큼 성숙해진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