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되자 [134678] · MS 2006 · 쪽지

2011-04-07 23: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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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선택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몇 가지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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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무려 3년 전에 수능을 치고
2년 전에 다시 한번 수능을 치고
연대 사과대에 입학한
대학생입니다.


처음 대입에 낙방을 하고 오르비에서 참 많은 글을 읽고 격려와 위로를 받아 힘을 얻게 된 기억에,
입학하고 나서 한번 나도 재수생에게 격려가 될만한 글을 한번 써보자 생각했었는데요.
2년이 지나고 나서야 글을 올리게 되네요.


게시판의 수많은 홍수 속에 의미없는 글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들었지만,
제가 아는 재수생에게 한번 격려의 글을 썼던 것이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많은 재수생 분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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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선택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몇 가지 조언



재수. 한 번 더 시도한다는 것. 힘든 일입니다.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 친구들의 시선, 선생님의 기대도 부담스러울 테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확실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을 했습니다. 빨리 대학생이 돼서 캠퍼스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스스로 이 길에 올라선 그대를 스스로 대견해해도 좋을 만큼,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겁니다.


그런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재수생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먼저 한 사람 중에 한명으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제가 재수를 해서 엄청난 성공을 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제가 힘든, 하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면 스스로 대견한 재수 생활을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몇 가지 교훈을 말해주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말하기에 앞서 하나 짚어둘 게 있습니다. 재수를 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공부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습니다. 원하지 않는 재수를 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스무 살의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버리면서 본인은 물론 부모님까지 소득 없이 고생만 하게 되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봉사활동이나, 기타 과외 활동 등을 해서 경력을 쌓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수시 모집이 확대되고 있는 요즘 수능 공부를 정말 억지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활동경력을 앞세운 수시를 노리는 편이 여러 방면에서 더 좋습니다.


하지만 수능을 보기로 작정했다면, 이 치열한 싸움에 한 번 더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것들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수능에 최적화된 상태로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면 전지훈련을 떠납니다. 주로 떠나는 곳이 동남아, 하와이 등 세계적인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죠. 남들은 신혼여행 때나 가는 따뜻하고 쾌적한 곳으로 곳에 거의 매년 여행을 가는 운동선수를 보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렇게 날씨가 좋은 곳으로 훈련을 가는 이유는 좋은 곳에서 훈련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후원자들이 돈이 흘러넘쳐서 운동선수들에게 환경 좋은 데서 훈련하라고 그 곳으로 보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가는 이유는 바로 경기가 열리는 시즌의 시기의 날씨와 비슷한 곳에서 선수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6개월에서 9개월 정도 훈련을 하는 기간 동안 국내에서만 있게 되면 날씨가 변하기 때문에, 몸이 달라진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한 방법인 것이죠.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혹독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수험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능 시험은 결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한 번 경험을 해서 알겠지만, 수능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선 수험기간에 지식을 쌓을 뿐만 아니라 체력도 다져나가야 합니다. 수능에 최적화된 몸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거나, 늦게 일어나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면 하루빨리 생활패턴을 수능 시험에 맞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충분한 주무시되(6~7시간) 기상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십시오. 수능 시험이 8시 40분에 시작되므로 최소한 6시 40분 이전에는 기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정상적인 두뇌활동을 하기까지에는 최소한 2시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밤을 새면서 공부하는 것은 절대 수능 시험에 적합하지 않는 공부입니다.



2. 300일간 꾸준한 건강관리를 해야 합니다.


저는 수능 시험을 준비하는 300일 동안 매일 잠자기 전 40분가량을 운동에 투자했습니다. 혼자 상경해서 공부를 해야 했던 상황이었기에 몸이 아프면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매년 한두 번씩 감기에 걸리곤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로라면 이번에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을 했죠. 감기에 걸려서 몸이 아프게 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체화된 생활패턴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운동이었습니다. 수험기간 내내 정말 열심히, 꾸준하게 운동을 했습니다. 남자인 저는 주로 근력운동을 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운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럽고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저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근력운동법을 소개하는 책을 구입해서 그에 따라 운동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운동과(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간단한 아령 운동을 병행했습니다. 준비 운동과 마무리 운동을 포함해서 40~5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습니다. 여자 분들이라면 조깅이나 줄넘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환절기나 추운 겨울, 무더운 여름에는 실외운동이 부담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날씨와 상관없이 실내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좋습니다. 저는 자기 전에 운동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난 사실이지만 취침 직전에 운동을 하는 것은 수면을 방해한다고 하네요. 저녁을 먹고 나서 1시간 정도 뒤에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하루에 1시간가량을 매일같이 운동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신감,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건강한 몸은 수험기간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시간을 아껴 공부하시고, 남는 시간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운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식사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침을 먹는 것이 두뇌활동에 좋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속에 부담이 되지 않는 밥으로 아침식사를 빼먹지 말고 하십시오. 아침식사도 하나의 중요한 생활패턴입니다. 평소에 아침을 안 먹던 사람이 수능 당일에 긴장한 상태로 아침밥을 먹게 되면 탈이 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평소에 먹던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생전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귀찮아서 혹은 게을러서 아침을 거르는 분이라면 아침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꾸준한 운동과 하루 세 끼 정시 식사는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입니다.



3. 자신의 모든 신경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친구, 이성, 기타 활동, 컴퓨터 등에 대해


재수생은 주변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청소년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애매한 존재이죠. 전에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청소년을 주변인이라고 했습니다만, 청소년의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있는 요즘에는 재수생이야말로 청소년도 성인도 아닌 주변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청소년도 성인도 아닌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기도 하고 성인이기도 한 때가 바로 재수생 시기입니다. 고등학생 때 가지고 있던 수많은 성장기의 고민과, 사회인으로서 성인이 막 되어 생기게 되는 고민이 함께 몰려오는 시기인 것이죠. 그만큼 복잡하고도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친구, 이성, 과외 활동, 웹 활동 등이 그것들이죠. 재수 학원에서 사복을 입고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그 곳도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사회집단이어서 인간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 그 곳에 들어가서 자리를 앉기 시작하는 것부터가 사회생활의 시작인 것이죠. 빈자리 어느 곳에 누구 옆에 앉을지, 밥은 또 누구와 먹어야 할지, 쉬는 시간에는 몸 둘 바 모르도록 불편한 정적을 어떻게 깨야 할지 등등 수많은 고민의 연속입니다.


이것은 매우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학원 안에서 친구가 생기고, 괜히 시선이 가는 이성이 생기게 됩니다. 거리에라도 나가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 아닌 성인이 되었기에 주변에서는 성인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웹상에선 싸이, 트위터, 페이스북을 비롯한 수많은 SNS 상에서 자신의 관계망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관계망을 폭발적으로 늘려놓기 때문이죠. 이런 다양한 ‘사회 활동’을 최소화하고 간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것 알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고립되지 않은 곳에서 스스로 연결을 차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수할 때 이 문제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는 친구들을 보게 됩니다. 여학생의 경우에는, 학원 반 친구와의 문제 때문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우 사소한 문제지만, 매일 보는 친구와 겪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거죠. 남학생들은 이성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보통은 재수를 하는 남학생은 재수를 함과 동시에 위축되어서 소심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속 앓이를 몇 번 하다가 금세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나아가는 일도 있죠. 쉽지 않은 일이고 이렇게 조언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관계를 최소화시키고 불필요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생각을 단순화시키십시오.


재수생은 고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학습한 내용뿐만 아니라, 문제풀이 노하우도 훨씬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수생이 수능을 보는 입장에서 분명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수를 하고 본 수능 결과가 이전보다 좋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원인을 한 가지로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재수생이 너무 생각을 복잡하기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수능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뜻한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학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변질되어 학벌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초래하는 단순히 성취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만, 본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더 큰 배움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학습 능력이 갖추어졌는가를 묻는 시험입니다. 사실 대학 입시에서 필요한 지식은 대학에 진학해 앞으로 수험생이 접하게 될 학문에 비해 매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기본적인 지식과 학습 능력을 묻는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보다 생각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하거나 복잡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문제에서 묻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재수생의 공부는 고삼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하거나 고차원적인 발상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잘못된 지식이 무엇인가 파악해 재정립하고 기본적인 사고를 더 단순하고 명확화 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5. 선생님을 믿으십시오.


어딜 가나 선생님을 믿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재수 학원에서도 선생님의 실력과 수업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선생님이 아무리 싫어도 수업시간에는 앉아 있고 시험기간에는 공부를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재수학원에서는 반응이 조금 다릅니다. 그 시간에 아예 교실에서 나와 자습을 하거나, 인강을 듣곤 합니다. 여러 과목의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원을 중도에 나오는 학생도 많습니다.
이런 선택이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결코 긍정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이리저리 꾀를 내고 동분서주하며 눈치를 보는 것도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입니다. 불신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동반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선생님의 수업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기저기 다른 학원을 알아보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야말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비록 선생님의 수업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를 믿고 신뢰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뢰라는 긍정적인 감정이 공부에 훨씬 이롭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믿고 잘 따라서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습니다.



6. 말을 줄이십시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Talk, Play, Love'. 모 휴대폰 회사의 유명한 광고 카피였던 이 말은 정말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수험생의 금기사항을 표현해서 한동안 재수학원가에서 회자되었던 말입니다. 이것 말고도 흡연, 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게임은 남자 수험생이 조심해야 할 치명적인 덫입니다. 다른 것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 유해성을 익히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말’의 유해성을 잘 모르고 계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 이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시험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불안해진 수험생이 그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소해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수다’입니다. 여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도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친구끼리 모이면 서로의 불안에 대해 끊임없이 토로하게 됩니다. 특히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면 여기저기서 떨어진 점수를 한탄하며 이미 해결책을 알고 있는 문제―어떻게 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 무의미한 토론을 하느라 시끌벅적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을 떨치려고 하는 수다를 한다고 해서 그 근본적인 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다를 떨 때는 조금 기분이 나아지고 불안감을 덜 느끼게 될지는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불안이 엄습해옵니다. 수험생들의 문제는 이미 해결책이 정해져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다가 보통은 한탄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부정적인 감정은 에너지 소비를 동반하기에, 한탄으로 이어지는 수다를 하고나면 힘이 더 빠지게 됩니다.


특히 불안한 상황,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에서 말을 많이 해서 소득 없는 에너지 소비를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불안할수록 가급적 말을 줄이고 차분하게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좋은 태도입니다.



7. 담대하고도 무덤덤한 자세로 임하십시오.


계절이 지나가고 지나가고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수험생은 불안해집니다. 현재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학생은 물론이고, 성적이 나름대로 잘 나오는 학생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누구나 수험생은 불안하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절대로 나만 불안한 게 아닙니다. 모의고사 전국 1등을 받은 학생도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불안합니다.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본인의 상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고 불안에 매몰되지 않아야 합니다.


수험생이 불안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수능 대박이 쳐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거나, ‘문제를 틀리면 어쩌지’라고 걱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앞의 생각을 잠깐 고찰해봅시다. 누구나 수능 대박을 원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 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 점수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흔히 수능 당일에 운이 좋아서 자신의 실력보다 훨씬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을 수능 대박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기대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자기 실력대로 결과가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운이 조금 좋다면 그것보다 한두 문제 정도 더 맞을 수도 있겠죠. 시험 문제를 받고 다 풀어보니, 확신이 가지 못하는 문제가 5문제가 남았습니다. 어차피 그 문제는 다 틀리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내 실력으로는 풀지 못한 문제이기 때문이죠. 답안을 내면서 그 다섯 문제를 다 찍었는데, 그 중에 운 좋게도 한 문제가 맞았습니다. 그러면 대박이 난 겁니다. 우리는 ‘수능 대박’이란 말을 이렇게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를 틀리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다시 생각해보죠. 사실 극소수의 학생(상위 0.0001% 이내)을 제외하고 절대 다수의 학생들의 목표는 수능 만점이 아닙니다. 어차피 모든 문제를 다 맞히는 것을 기대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라도 문제를 틀리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해서 긴장한 탓에 평소 같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긴장하고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두 문제 정도는 틀려도 상관이 없다는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만 다 맞출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 운이 진짜 좋아서 한두 문제 찍어서 맞추면 대박인거지’라는 생각을 갖고 시험에 임하면 되는 겁니다.



8. 인터넷 강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강은 참 달콤합니다. 인강 스타 강사 선생님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나 풀기 힘든 문제들을 정말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주고 멋지게 풀어주시죠. 같은 내용도 정말 재미있게  강의해 주십니다. 웃긴 이야기도 수업 중간 중간 섞어주시고, 수험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이야기들도 많이 하시죠. 말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선생님, 매력적인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미남미녀 선생님들이 진행하시는 강의를 보는 것 자체가 즐거울 수도 있습니다.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으면 정말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학습이 정말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인터넷 강의는 게다가 현장 강의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학습도구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으면 정말 공부가 잘 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재수 시절 학원 수업이 끝나면 자율학습 시간에 보통 3편, 많은 날에는 5편 정도의 인강을 들었습니다. 자율학습 시간의 대부분을 인강을 듣는 것에 투자한 것이죠. 어느 날은 자율학습 시간 전체를 인강으로 채운 날도 있었습니다. 종합반 학원 수업과 인강으로 하루를 정말 온전히 강의로만 채웠던 겁니다. 문득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인강을 계속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냥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기에 관성적으로 끊임없이 강의만 듣고 있었던 겁니다. 마치 게임 중독과 마찬가지로 ‘인강 중독’에 걸린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문제를 풀게 되면 이상하게도 풀리지가 않았습니다. 숙지를 하고 충분한 체득을 하는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면 또 문제풀이 ‘강의’를 찾아서 듣곤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공부였던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인강은 매우 수동적인 학습 방법입니다. 강사 선생님이 알기 쉽게, 풀기 쉽게 정리한 내용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듣고만 있으면 습득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일수록 그렇습니다. 인강은 특히 강의목록이 한 페이지에 뜨기 때문에 하나 하나 들을 때마다 성취감이 생겨서 몇 편을 생각 없이 연속적으로 보기가 쉽습니다. 이 때 공부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뿐, 과연 내가 이 내용을 얼마나 습득하고 체화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됩니다.


아이를 키울 때 젖을 떼면 이유식을 먹입니다. 이유식이 다른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가 먹는 밥을 죽처럼 쑤어서 소화하기 쉽도록 만든 것이죠. 이유식은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어린 아이들이 음식물을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젖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자라나면 이유식도 그만 먹이고 밥을 먹여야 합니다. 스스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죠. 언제까지나 이유식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강의의 내용도 이유식과 마찬가지입니다. 소화하기 쉽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더 걸리고 노력이 더 들어가더라도 혼자 소화한 내용이 훨씬 더 탄탄한 지식이 됩니다. 인터넷 강의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학습 방법인 동시에, 내용이 쉽게 잊히는 학습 방법이기도 합니다.


 쉽고 편한 공부가 절대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수능에서는 적극적인 공부 방법으로 체화된 지식, 문제풀이 능력이 가장 중요한 무기입니다. 강의를 듣는 시간을 줄이고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시기 바랍니다.


 


9.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사실 아무리 마음을 담대하게 먹는다고 해도 수험생은 적지 않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반복되는 생활 패턴에 권태를 느낄 때도 있고, 간혹 가다가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위로해준다고 찾아올 때면 부러움에 질투를 느낄 때도 있고, 길을 걷다가 다정한 커플들을 보면서 울컥하기도 하죠.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좁아터진 교실에 앉아있으면 갑갑증을 느끼기도 하고, 떨어진 모의고사-특히 평가원 모의고사-성적표를 확인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우울하죠.


이 때 쉽게 하는 실수는 부모님께 화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닌 경우가 훨씬 많겠지만, 간혹 부모님께 철없이 구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님만큼 재수하는 학생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걱정해주시는 분도 없습니다. 한없이 이해해주시는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기도 함은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수험생에게도 이롭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긍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선생님을 신뢰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수험생활에 이롭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0.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자기 자신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노력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스스로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클 것이고, 반대인 경우는 그 믿음이 적을 테죠. 그런데 결과가 나왔을 때 그 믿음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수험생의 경우에는 그 결과가 모의고사로 나오게 되는데, 그 모의고사 결과가 본인에 대한 믿음과는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한 것 같은데,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는 것이죠. 이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을 하게 됩니다. 특히 재수생은 이미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기에, 몇 번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지 않게 될 경우, 큰 실망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결과를 근거로 본인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만큼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학원마다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재수학원에서는 매달 모의고사를 보면 그 결과를 순위를 매겨 우수 성적 명단을 공개하곤 합니다. 매일 같은 일상의 단조로운 반복인 재수학원 생활의 월례행사이죠. 어느 반에 누가 그 명단에 몇 순위에 올랐는지 알 수 있어서 반끼리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1등을 한 학생은 학교에서 전교1등 못지않은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워낙 훌륭한 학생들이 많아서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저는 한 번도 일명 ‘빌보드’라고 불리는 그 우수 학생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기에 그 상실감과 박탈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죠. 특히 가장 중요한 9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는 심지어 1,2,3학년 고등학교 때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300점대 성적(500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이유를 대도 그 성적 하락을 정당화될 수는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꺾어버릴 수밖에 없는 아주 객관적인 증거가 나오게 된 셈이었죠.


하지만 망연자실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저는 그때 받은 성적표를 포함한 모든 성적표를 찢어버렸습니다. 속상하거나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 성적표가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성적표에 연연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의심을 품고 믿지 못하는 것은 큰 정신적 에너지 낭비라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담담하게 다가오는 시험을 준비했고, 수능 당일 저는 이전의 어느 모의고사 때에도 받아보지 못한 고득점을 받았습니다. 제가 만일 지난 모의고사 성적에 연연하고 걱정하는데 시간을 썼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죠. 물론 하나님의 도움으로 찍었던 여러 문제가 맞아서 그랬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재수시절, 저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공부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공부는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이번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해도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자체가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 심정이겠지요.


하지만 어떤 말로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도, 그 사실로 힘들어하는 여러분을 위로할 수도 없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무덤덤한 자세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수영사상 최초로 단일대회 5개의 세계기록을 세운 수영황제 마이클 팰프스. 엄청난 집중력으로 수영 훈련을 하는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힘든 훈련을 견뎌내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고 합니다.


"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몰라요. 날짜도 모르고요. 전 그냥 수영만 해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공부만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합니다만,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들어 힘들어 하고 있다면 이 말을 한번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재수 십계명>
1. 수능에 최적화된 상태로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2. 300일간 꾸준한 건강관리를 해야 합니다.
3. 자신의 모든 신경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4. 생각을 단순화시키십시오.
5. 선생님을 믿으십시오.
6. 말을 줄이십시오.
7. 담대하고도 무덤덤한 자세로 임하십시오.
8. 인터넷 강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9.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10.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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