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불분명한채 막연히 재수를 결심한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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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내용은 재수 기간 동안 서로의 학업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던 친구의 연락에 답장하고자 쓴 편지입니다. 편지 특성상 반말이 사용된 점 참조하시어 읽으시기 바랍니다.
...
잘 지냈어? 안 그래도 연락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연락줘서 고마워.
수시는 잘 안됐고, 정시는 배치표 보다가 여러 생각이 들어서 그만 뒀어.
주변에 대학 졸업한 형 누나들 보면, 대학나와도 취업안되서 사오년씩 놀고먹는 백수들이 파다한데 대학 간다고 뭔가 당장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학자금 대출 상환하랴 취업준비하랴 돈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잘 안되면 공무원이라도 해보겠다고 냄새나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몇년씩 썩어가는 청춘들이 엄청나게 많더라. 불행하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노력한다고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그 기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어. 그래서 물어봤어. 평범해지기 위해서래. 평범의 기준이 뭐냐고 묻자 그들이 꿈꾸는 평범은 더 이상 상식적인 평범의 범주를 벗어났더라. 평범해지면, 원치 않는대로 인생을 살아도 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어.
학원 그만두고 집에서 나름 독재하면서 혼자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지하게 생각해봤어. 그러다 깨달았는데, 내가 진심으로 하고싶은 전공이라던가 분야가 없더라. 그래서 지금 나한테 대학이 중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군대도 다녀오고 자격증도 따면서 다양한 경험을 좀 쌓다가 그런 시간들 중에 하고 싶은게 생기면 그때 대학을 가는게 주체적인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자기가 진정 하고싶은것도 없는데 남들이 다 대학간다고, 부모님이 재촉한다고, 친구들의 평가가 두렵다고, 그런 수동적인 마음가짐에 자기 의지는 없이 주변의 시선에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많더라. 근데 그렇게 살면, 대학을 가도, 사회생활을 해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고 자기자신을 계속 옭아매서 정작 자기 삶은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저 남들이 이미 살아간 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니까 나도 똑같이 해야한다는 강박,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과 배척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영원히 그렇게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버리는. 이거야 말로 불행한 인생이 아닐까. 우리가 무엇을 하든(예를 들어 대학을 가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과정의 일환이어야 하는데 말이야.
또 한가지는 미리 대학간 친구들을 보면서 깨달았는데, 사실 너무 당연한 거지만 대학에 가도 결국 하기 나름이라는 거야. 명문대를 가더라도 목표가 불분명하고 향락에 빠져 본래 목적을 소실한 사람은 그대로 침전하고.. 지방대를 가도 자기 꿈이 있고 목표가 명확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목적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봤어. 물론,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목표가 있는 사람의 공통점으로는 본인의 인생과, 그 안에서 행동의 방향성이 분명하다는거지.
그리고 애당초 위에 언급한 것들을 다 떠나서, 원래 대학의 존재목적이자 본질인 심층적인 학문의 연구, 전문적인 기술 교육과 인격 함양은 소위 헬조선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저 취업을 위한 관문이나 수단정도로 그 위상이 추락해있는 현실에서 '목표가 불분명하고 사회의 시선과 압박에 못 이긴' 대학진학은, 본래 목적에 비추어 봤을 때 큰 의미도 없고 그저 4년이라는 소중한 시간과 사천만원을 웃도는 큰 돈을 낭비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진 아닐까? 강조하지만 이건 '대학진학'에 '목표가 불분명한' 이라는 수식이 붙었을 때의 이야기야. 목표가 있다면 대학에 가는 것이 본래 취지를 살려서 본인의 진로를 향해 나아가는데에 응당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내가 취업하겠다고 말하니까 누군가는 그러더라. 그냥 니가 재수한 실적이 나빠서, 성적이 원하는 수준에 못 미쳐서 그냥 현실을 외면하고,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합리화하고, 명백한 실패를 미화하려는게 아니냐고. 현실을 직시하고 니 수준을 인정하라고... 근데 그렇지 않더라. 나는 간신히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입시중심적인 교육에 가로막힌 시야에서 벗어나서 이제서야 진로를 찾기 시작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일단 대학을 가려면 전공을 정해서 가야 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바뀐것 같아. 아직 하고싶은걸 못찾았으니까.
또 어떤 어른들은 일단 대학을 가서 하고싶은 일을 찾으라고 하더라? 근데 등록금이 한두푼도 아니고, 애초에 대학이라는것은 또하나의 사회생활인데 만약 대학을 가버리면 그 안에서 형성되어 버린 인간관계라던가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더라. 사실 주변을 보니 역시 그랬기도 하고. 반수하겠다 편입하겠다 선언하며 원치않는 대학에 간 친구들도, 결국은 그 집단에 동화되어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더라고. 물론 멋지게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이 말야.
하여튼, 그런 고민들 끝에 우선 사회경험을 쌓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어. (물론, 대학을 가서 사회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진학하고자 하는 분야가 없었으니까.) 평소에 좀 관심이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조사해보니 급여도 딱히 적지 않고 집 근처에 병원들이 꽤 많길래 그 길로 간호보조 기본교육 이수하고 취업했어. 물론 이대로 안주하겠다는건 아니야. 나는 하고싶은게 생기면 대학에 갈거고... 생기지 않는다면 안 갈수도 있고.
나중에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취업에서 나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 지금은 그래도 결국 현실과 타협하게 될거다... 이런 걱정하는사람들도 있던데, 글쎄, 그때 가봐야 알겠지? 지금 어차피 준비할수있는 부분도 아니니까. (외람된 이야기지만 덧붙이자면 난 결혼을 안 할거거든. 신혼도 1~2년이지 그 이후에는 애키우랴 빚갚으랴 삶이 곧 전쟁이 되는 형 누나들을 너무도 많이 봐서, 혼자 사는것이 더 행복할 것 같거든.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중이라고 우리나라의 현실이 크게 바뀔 거라고 믿지 않아.) 그렇게 대학을 내려놨어. 어쩌면 욕심이었을지도 몰라. 그냥 명문대 간판 걸고 남들에게 잘 보이겠다는... 나는 그런 결과를 거둘 만큼 열심히 살아오지는 않았는데 말야. 목표가 없었으니까. 지금 와서 보면 과분하다는 생각도 드네.
재미 없고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원래는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없었지만, 다 써놓고 보니 편지 같기도 하네 ㅋㅋㅋㅋㅋ 그간 이야기 못 나누던 사이에 내가 생각하고 고민한 내용들이니까... 너라면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리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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