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5개한번에먹기 [248171] · MS 2008 · 쪽지

2010-12-26 06: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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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해피엔딩 - 3. 박한이는 정신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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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2009년과 2010년을 통틀어
단 한번도 일어난 적 없던 시간에 일어났다.
그날 아침은 몹시 추워서
아침을 대충 먹고 나온 내 귓가에 내 입김이 돌았다.

아빠와 함께 조대부고로 가는 택시 안
그 곳은 고사장 이상의 정적이 맴돌았다

대략 30분이 걸려 도착한 고사장
5분을 걸어걸어 도착한 고사장 문앞에서


나는 운신의 폭을 다하고 오겠노라 말했다.
웃으면서.








3. 박한이는 정신병자
* 위의 말은 김응용 사장이 박한이가 본헤드 플레이를 하고 온 날 언론 인터뷰에서 직격탄을 날린 말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야구 명언으로 떠도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절대 박한이의 안티팬이 아니며, 저는 일전에 디시인사이드 LG트윈스 갤러리에 '박한이를 영입해야 한다' 라는 장문의 글을 남긴 적이 있음을 밝힙니다.








추락이라는 단어는 상승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에 생길 수 있는 개념이고,
나에겐 상승이 먼저 존재했기에 남는 것은 추락 뿐이였다.

그 뿐이였다. 몇 번 본 모의고사가 전부 망해버린 지점 수능 D-5 지점.

어딜 가서든 울고 싶지만 참으며 이규환 선생님이 알려주신 D-5,4,3,2,1 을 지푸라기 잡는듯 실천했다.

한 번 더 풀어본 모의고사라 점수는 490점대에 육박했다. 하지만 마음의 위안은 조금조차 되지 않았다. 문제를 읽기도 전에 답이 나와버렸다. 오히려 이렇게 적응된 시험지들을 가지고 500을 맞지 못하는 나를 끊임없이 자책했다.

긴장이 되지 않았다.
간담이 미칠듯히 서늘해 덜덜 떤다면 오히려 내가 걱정한다는 반증이라도 나오는거지.
나는 그런 것 조차 없었다. 심연 한가운데에 아직도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던 것이다.

수능 이틀 전, 나는 집에서 슬러거를 했다. 다섯 판 정도를 하고 나서 게임을 끄려는 찰나에 -

나는 그제서야 ‘등골이 시렵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너가 이러고도 인간인가. 무엇에 의지하기에 이리도 당당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사실’ 의 선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2010수능을 망칠 것이 자명한 인간이였다.
평가원은 망했지, 사설도 망했지, 그런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그 순간 나는 엄청난 비현실주의자였다. 마음에 모르핀을 꽂은 것처럼 행동했다.
다 잘될거야, 썩어도 준치라고- 설마 그래도 기본은 치겠지

그렇게 푸념했다. 손으로는 5일간 끊임없이 평가원을 풀었지만 머리에는 이러한 생각만 맴돌았다.




그렇게 허무한 시간은 흘렀다. 수능 전 날이 온것이다.

친척분들이 집에 들렸다 가시고, 몇몇 군데에서 전화가 왔다. 일일이 다 받았다.

어짜피 그 순간에 공부해봐야 오를건 별로 없을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순간까지 긴장하지 않았다. 편했다. 다 잘될 거라는 믿음뿐.

밤 10시, 우리집은 평소에는 상상할수 없던 이 시간에 소등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열여덟인생 평생 어느 순간에 그토록 정신이 말똥했을까.

어두운 천장이 스크린이 되었다.
어릴적 내가 가진 나의 첫 번째 기억부터 차례대로 상영되었다.

겨우 수능 전날에 무슨 호들갑을 떠는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기억의 흐름 중간에 잠을 잤다. 마지막으로 그날 생각해 보았던 기억은

중3 그날이였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날.


날이 밝았다.
내가 보기로 한 고사장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밥은 가볍게 먹었다. 맵게 풀어낸 된장국에 밥. 아침을 대충 먹고 도시락 챙기고, 옷 입고 가방 메고, 신발 신고 집 밖으로 나왔다.

아빠랑 함께 걸어갔다.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해서 그런지, 10분동안 별 얘기는 하지 않았다.

후배들과 선생님들이 나와 있었다. 적당히 인사하고, 후배들이 준 초콜렛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그때 쓴 글이 더욱더 진솔할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수능날이 됬다.

우리 학교에서 이과생은 모두 한 학교에서 시험을 봤기 때문에,

난 30명 정도 되는 교실에서 20명은 내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편했다.

1교시 언어

너무 쉬웠다. 내가 개인적으로 즐겨쓰는 '왼손으로 풀어도 100점!' 드립이 나올 정도였다. 현역때 부터 98점 위로는 맞아 본 적이 없었는데, 무슨 근자감인지 100점이라고 확신하고 기분좋게 넘겼다.

2교시 수리

...악몽. 하나도 안풀렸다. 이 정신병자 자식. 10분이 남고 8문제가 남았는데 천하 태평으로 시험 끝나고 나가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결국 2분 남기고 6문제를 찍어 버렸다.

풀면서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옆자리 친구에게 난이도를 물어보았다
( 그 친구는 성대 반도체에 들어간 친구로, 역시 공부를 잘 하던 친구였다)

난 그 친구가 왼손드립을 칠 줄은 몰랐다.( 걔는 96점을 맞았다.)

불안해졌다. 수리 까지 나를 지배하던 근거없던 자신감이 사라졌다.

3교시부터는 제대로 하지 않다가는, 생각도 하기 싫던 재수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 그 뒤로는 별 기억이 없다. 정말로, 정말로 치열하게 문제를 풀었다. 풀면 풀수록 좀 전의 내가 한심해졌다.

생2를 다 풀고 3분 후쯤엔가 종이 울렸다.
난 그 순간 무슨 자신감인지 ‘나의 입시는 끝이다’ 라는 생각을 품었다.




정신병자였다.



이제 남은건, 메가스터디 성적입력

손으로 가채점표를 응시하며 숫자를 눌렀다
언어오십수리삼십외국어오십과탐이백글자 도합삼백삼십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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