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과 [590251] · MS 2017 (수정됨) · 쪽지

2017-02-10 21: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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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등록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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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한해서는 생애 첫 합격이었다. 이미 등록 포기를 결정한 상태였지만,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빠와 재수학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더 공허해졌다. 카톡을 켰다. 재수학원 친구들의 프로필을 봤다.


사람들은 내 점수로 삼수한다고 하면 매우 억울할 거라고 한다. 실제로 억울하다. 아주 많이. 지망과 네 개중에 세 개를 갈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넣은 곳이 입결이 제일 높았다. 결과는 예비 5번. 예비 3번과는 환산점수 0.5점 차이였다. 4차 추합까지 결과가 나온 지금, 2명이 빠졌다. 대충 점공 등수로 예상했을 때 예비 2번과 나는 1점 정도의 차이가 났을 것이다. 통한의 1점. 통한의 44445444.

왜 하필이면 짝수형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교육학과였을까. 왜 하필이면 1점일까. 왜 하필이면, 하필이면... 이런 생각에 잠을 못 이뤄 뒤척인 게 원서 넣고 열흘 남짓이었다.

정말 내가 보냈던 그 어떤 열흘보다 더 우울한 열흘이었다. 고대 생각만 나면 눈물이 났다. 원서 넣는 것을 거의 결정하다시피 한 아빠에 대한 원망도 심했다. 매일 점공을 확인하며 마음을 졸였다. 안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j사에서 발표하는 예상 합격구간을 매일 확인했다. 등수가 하나 밀려날 때마다 감정은 더 복잡해져갔다.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열흘 동안은 정말,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안했다. 하기가 싫었고, 할 자신이 없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났지만, 상처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열흘 쯤 뒤에 친구한테 연락 할 일이 생겨 카톡 친구목록을 보게 되었다. 목록에는 재수기간 내내 나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보다 잘 본 친구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가 많았다. 스크롤을 아래에서 위로 넘기면서 본 그 친구들은, 잘 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내가 짝사랑하던 애의 프로필이 맨 마지막 쯤 나왔다. 얜 정말 열심히 했는데, 성적은 작년보다 훨씬 떨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연락조차 잘 못하지만, 재수할 때에는 얘랑 대화하면서 행복했고, 의지도 얻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참 사람답고 멋진 아이였다, 걔는.

나보다 더 억울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노력의 대가를 거의 받지 못하지 않았나. 그래, 나는 적어도 수능 성적표가 나오고 원서를 접수하기까지의 기간에는 달콤한 행복감을 맛보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나는 억울해할 처지도 되지 않았다. 

친구들의 카톡 프로필을 보기 전에는, 상지대 등록하고 반 년 다닐까, 반 년만 다녀보고 결정할까 하는 마음이 없지도 않았다. 1년이란 시간을 공부에 더 투자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그런데 보고 난 후에는, 그런 마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라. 나보다 더 억울해야 할 애들은 막상 잘 살고 있잖아. 나는 뭐지? 왜 이렇게 억울해하고 망설이고 있는 걸까.

좋아하던 애의 환하게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을 떠올리며, 마음을 정리했다.


다시 한번 상지대에서 전화가 왔다. 등록 포기의 의사를 밝히고 끊었다. 그래도 걔한테 연락할 거리가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심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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