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귤러 [655993] · MS 2016 · 쪽지

2017-02-06 00:27:42
조회수 769

친구의 커밍아웃과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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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심야영화를 보고 가는 길에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길래 떠봤는데

분위기 잡고 뭔가 말하려길래 버거킹 데려가서 나눈 얘기입니다.

아래 글은, 그날 친구와 한 이야기들이 너무 소중해서 잊고싶지 않아

인터넷 한 귀퉁이에 잠시 보관해놓은 글인데

여기 가져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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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헤테로섹슈얼이 아니라고 말하기에 앞서 밝혔습니다.)


식성이란 걸 느껴본 적은 없다. 일반 사람들이 연애 감정을 느끼듯이 느낌, 때론 분위기 등으로 끌린다.

지금까지 호감을 가져본 상대에게 공통점을 느껴본 적은 별로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본인의 경우)

자신의 지향에 대해서 바꿔볼 시도를 한 적이 있으며 자괴감 또한 느껴본 적이 많다.

선천적인 부분이 대부분이라고 느끼며 유아기때 본인의 지향이 사회적 통념과 다르다는 자각이 있었다.


부모님은 내 지향성에 대해 모르신다. 정말 주변관리 철저히 하고 입단속만 잘하면 평생 숨기고 갈 수도 있겠지만 결혼 단계에서는 많이 힘들 것 같다.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는 내 지향성에 대해 말하고 판단을 기다릴 생각이다.


섹스는 연애 대상과의 교감중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보며 연애 대상 = 섹스 상대 라는 인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은 굉장히 무례한 생각이라고 본다.


게이 퍼레이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불교 신자들에게 억지로 4복음서 들이대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고. 마찬가지 아닌가?

내 지향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조금 슬프지만, 그것도 존중한다.

가급적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다.

이반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호감이 있던 사람이 포비아였다. 어느날 같이 밥을 먹고 있는데 이반들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의 말들을

한 적이 있었다. 

굉장히.. 마음 아팠고 슬펐다. 그 사람에게 악감정은 품지 않았지만 마음은 그 뒤로 빨리 정리되었다.


지금은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지향성에 대한 고찰을 회피하고 있다. 수험을 보내느라 멘탈에 회복이 필요하기도 하고 너무 복잡하게 꼬인 문제이면서도 실생활에 문제가 있기도 하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젠간 이 문제를 대면할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그 때가 되면 도망치지 않겠다.


지금 이렇게 말하면서도 굉장히 두렵다.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말할까봐. 하지만 이 생각들을 혼자 가지고 있는 것도 그만큼 힘들다. 이 이야기들을 다 듣고도 도망치지 않아줘서 정말 고맙다.


내 신상을 전혀 밝히지 않는 선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웹도 상관은 없다. 크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반들에 대한 오해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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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커밍아웃이라고 나중에 알려줬습니다.

살면서 친구가 그런 표정 짓는 것도 처음 봤고,

(물론 추운 날씨였긴 했지만) 정말 심하게 몸을 떨면서 말을 하길래 걱정 되기도 했습니다.

'자기도 왜 이렇게 몸이 떨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다음날 아침 '말한게 후회된다으아ㅏㅏㅏㅏㅏㅏ' 의 내용을 담은 전화가 친구에게 온게 기억나네요.

지금은 상호 합의간에 드립 치면서 잘 놀고 있습니다.


문제될 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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