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ist [620760]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6-12-16 12:11:48
조회수 10,588

나는 패배자가 아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0133106

저는 쌩으로 4수를 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본인이 지나친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만,

저는 제가 패배자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수능을 4년째 보고도 원하는 결과를 받아내지 못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정신의학 교수가 되겠다는

제 꿈만큼은 포기한 적이 없기에,

전 여전히 패배자가 아닙니다.


매번 모의고사에서는 무리없이 의대를 갈 만한 성적을

거머쥐고도 수능만 치면 한 없이 무너졌기에

그 누구보다 수미잡이라는 말을 속깊이 이해하고

수능이라는 시험에 대한 두려움도 날이 갈수록 커져가지만


실패를 할 때마다 다시금 성장하고,

상처를 받는 만큼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눈물과 분노로 새벽을 칠하던 나날이 수십일 수백일이 넘어가도,

하늘이 무너지길 간절히 바라던 수많은 저녁 속에도

죽음을 통해 저의 존엄을 지키고 싶을 정도의 고통 속에도


또다시 그런 나날들이 찾아오고 있음에도


끝없이 노력하고, 끝없이 고통받고, 좌절하다보면

언젠간 찾아올 저만의 성공의 순간이

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되새기게끔 해줄 것을 믿기에


전 여전히 패배자가 아니더군요.


나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보면,

타인에 대한 이해의 속 또한 깊어집니다.


쿠도라는 분께서

성대와 고대를 붙었지만 서울대를 떨어졌으므로

본인이 패배자라는 말을 할 때

당사자는 얼마나 가슴 깊이 서울대를 바라보았을까

마음 한 켠이 찡했습니다.


꿈을 좇다보면,

자신의 꿈이 그것이 아니라는 연유로

본의 아니게 타인의 꿈과 소망을 무시해버릴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의대에 대한 동경때문에

공대를 무시한다 느껴질 법한 발언을 본의아니게 뱉은 적이 있었구요.


그건 어쩌면 본인이 가진 꿈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뱉어낸 작은 실수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과녁이란게 있다면, 누구든 그

과녁의 정중앙만을 바라볼 테니까요.


그런 실수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하든

당사자에게 정중한 비판을 가하든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든

그건 받아들이는 자의 자유지만,


진실로 치열했던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돌아보듯

타인의 노력과 꿈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서울대가 꿈이었던 사람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셈이니

그에 대한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는 거죠.


역으로 당사자의 실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에 대한 진실된 사과 역시 필요할테구요.



아무튼

지금 이 시기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은 어쩌면

모두가 다 치열했고, 멋진 순간들을 보내왔음을

인정해주고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 아닐까

그런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합격자분들께는 진심의 축하를

아쉬운 탈락자분들께도 역시 리스펙ㅡ의 손길을 보냅니다.


술처먹고 새벽에 뻗어

지금 일어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글을 썼습니다.

어쩌면 여전히 꿈을 이루지 못한 제가 위로를 받고자 이런 뻘글을 쓰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주제도 없이 두서없는 글 읽어주신 분들은 진심으로 감사드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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