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이슬 [690274] · MS 2016 · 쪽지

2016-11-05 09: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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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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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경부터 알수없는이유로 게임을 다시 잡았다. 왜였을까? 지금으로서는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게임만했다. 온갖 교묘한 술수를 다 써가며 최대한 시간을 확보했다. 그러나 나는  게임 조차도 집중하지 못했고, 효율적이지도 못했던것같다. 물론 나름대로의 즐기는 방법이었고, 나에게는 힐링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본질을 잊은채 가상세계를 떠돌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본래 하고자하였던 의지와 목표는 아주 먼곳에 먼지가 쌓여 간다는 것을. 잊은 채로 말이다. 사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적극적인 노력보다는 통계적인 효율을, 합리적인 과정을 빙자한 게으름을, 그리고 끼워맞추기식 차선책을 택해왔던 것. 그리고 본능적 욕구와 유혹들을 뿌리치지 못해 매번 쉽게 무너져 더 이상 그것을 의지라 부르기가 부끄러운 의지를 가졌음을. 마지막에 닥쳐서야 후다닥 몰아해치우는 태만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채 또다시 낯선 세계로 도망쳐온 것이다. 아니. 사실은 익숙한 세계다. 많이 바뀌었고,오랫동안 떠나있었던 것 뿐... 잠시 설명하자면 2007년부터 근사 6년을 몸담아온 게임이었으나 중국 해커의 영향으로 많은 것을 잃고 협곡으로 도망쳐 갔다, 잠실동 대치동 서교동 방이동으로 도망쳐 갔다, 마지막으로 화양동의 그 신문지 조각 날리는 빌딩숲 컴컴한 미러볼 아래 지난 4년에 걸친 여행의 고독함과, 케묵고 무뎌진 흉터 아래로 선홍빛 액체가 샘솟을 무렵 고향의 향수를 느껴 회귀한 것이라고 해야 옳겠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도망쳐오며 살았다. 이 사실 하나만큼은 어찌되었든 변하지 않는다... 다 때려부수고 새사람이 된다고? 거의 불가능하다.(사실 불가능하다고 말하고싶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딘가에는 성공한 사람이 있을 것이긴 할테고 다만 그들의 성공은 존중받아 마땅함을 인정하기에 내키지 않지만 거의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럴 때만 옹졸한 스스로에게 또 한번 실망한다.) 목숨을 걸었다면 모를까. 적어도 나는 목숨이 아까웠나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주변인들을 속이고 욕되게 하고. 그리고도 모자라서 반성보다는 또다른 도피지를 물색하는 몹쓸 습관이 골수에 배어버린 탓에. 아니. 그래 이것 역시 핑계다. 얼마든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안다. 다만 그러한 의지를 표방하거나, 결심하는것과는 별개로... 즉 결단력과는 별개로 의지를 지속시켜나가는, 아니, 꼭 의지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분노든, 갈망이든, 집착이든... 하, 유일하게 내가 지속시켜왔던 감정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연민이라는 녀석이다. 그것도 자기 연민 말이다. 참으로 처량하지않은가. 모든 감정이 동일하게 신경계에서, 심리상태에서 작용하지는 않겠지만 이 연민이라는 녀석은 내가 천성적 의지박약이라며 현실도피하는것 자체를 모순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조하며, 분노하고, 또 번번히 같지만 동시에 새로운 다짐을 해왔기에. 결국 이 모든 상황의 책임을 묻는 일 자체가 의미 없다. 왜냐하면 모든것이 내적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위선자다. 돌아가기엔 너무도 뒤틀린 길을 걸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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