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이슬 [690274] · MS 2016 · 쪽지

2017-04-06 16: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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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좋아했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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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https://youtu.be/hphzAIwwTm8


ㅋㅋ

이별노래모음 재생해놓고 써본다.

그래 알아. 내가 생각해도 오글거려 완전ㅎㅎ 나중에 내가 다시 읽게 되는 날엔 이불킥 할지도 몰라.

근데,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내 심정을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구나.


있잖아, 두가지 고백할 게 있어. 첫번째는 내가 두괄식으로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거야. 두번째. 나는 솔직히 내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아니, 좋아했어. 우리 작년부터 네 학원 휴가때마다 연락해서 만나고, 노래방 가는건 예삿일이었고 한번은 부산행 보러 영화관도 봤었지. 거의 항상 네가 먼저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고,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땐 안된다고 했다가도 며칠 뒤에 일부러 시간을 내줬지. 나 퇴사하기 전 마지막 회식자리에 갔다온 날, 술에 절어서(사실 이 회식자리에서 부장님이랑 계장님이 주신 술 마구 들이켰다는거, 솔직히 말하면 거절할 수도 있었어. 근데,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실컷 마실까 싶어서, 네가 자꾸 생각나서, 네가 나에게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의 나는 알기에, 또 지금의 나는 너를 좋아할 수 없기에, 그 사실이 나를 무력하고 비참하게 만들어서, 죽어라 마셨어.) 사실 이날, 취하고 싶었어. 근데 나 취하는게 뭔지 잘 몰라. 취해본 적이 있어야지. 근데 나, 쓸데없이 술은 잘 마시는 것 같더라. 스무잔이 넘게 마셨는데도 정신이 멀쩡했고, 그냥 포기했어. 술이 들어갈수록 네 생각이 또렷해져서, 말야. 집에 가는데 네게 전화가 와서 받았지. 나중에 보니까 새벽 3시반까지 줄창 6시간을 통화를 했더라. 난 취한 척 -어쩌면 아주 취했을지도- 하고 아무말이나 했는데, 난 내가 그때 취하지 않은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시간이 많이 지난 탓인지 아니면 그때 내가 취했던게 맞는지 지금으로선 내가 무슨말을 했는지 잘 기억도 안나. 다만 확실한 건 너 좋다는 이야기 만큼은 안 했어. 알지? 그리고, 그 누나 이야기 했잖아. 없어. 그냥 지나쳐간 인연일 뿐이야. 그냥 나도 상처받고싶지 않아서 허공에나마 내 마음을 분산시키고 싶었나봐. 몹쓸 자존심. 야 그날 기억나? 한번은 우리 신림동 갔었는데, 기억나? 노래방에서 문득 발 크기 비교하며 사진도 찍었었고 화음 맞춰서 노래도 불렀었지. 특이하게 넌 곱창을 좋아하더라. 그 자리에서 한참 먹다가, 넌 대뜸 네가 새로 찍은 증명사진을 꺼내 들이밀더니 가지겠냐고 물었었잖아. 그때 한번쯤 거절하고 나서 받았어야 했나? 지금은 사실 그런 생각도 웃기긴 한데 ㅎㅎ... 나, 이때 조금 확신을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했었거든. 보통 친구사이에 증명사진을 주고받고 그러나? 주변에 물어보니까 아니라던데. 넌 그냥 조금 친해지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가보다, 생각해버리려고. 며칠 뒤 또 만났을 때 건넨 내 증명사진을 조금 망설이다 받은 걸 보면, 그날도 나 혼자 설렜나보다. 그치? 지문 특이하게생겼다고 슬쩍 손을 만진다던가,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아서 괜히 쿡쿡 찌르고 장난치고 꼬집고 때린다던가... 있잖아, 나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장난을 칠 것 같지는 않거든. 너도 내게 어느정도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었어 나는... 아, 그리고, 좌식카페에 갔던날, 기억나? 얼마전에 신촌에서 말야. 미용실 원장님께서 데이트 하냐고 물어봤다면서, 근데 니가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정했다며, 그이야길 나한테 꼭 했어야 했어? 그거, 선 그으려고 한 말이었어? 그게, 그냥 장난이라구? 나 그거, 솔직히 많이 섭섭하고, 그 말이 진심이었다면 나는 그게 선을 긋는것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아. 너, 내가 더 다가가면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수 없을까봐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거지. 그렇지? 그럼, 집에 데려다 준다고 했을 때, 그땐 왜, 선 긋기는 커녕 오히려 좋아했었어? 내가 더 다가가길 원치 않았으면, 거기서 간접적으로 거절할 수도 있는 거였잖아. 정말, 모르겠다 정말, 힘들고, 괴롭구나...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게, 이렇게나 피곤한 일인줄을, 너를 좋아하면서 처음 알게 된 것 같아. 자, 한가지 확실한 것을 알려줄게. 나는, 어느 순간이었을까 상처난 방수페인트 사이로 콘크리트에 스며든 물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네게 마음을 줘버린것같다. 있지, 너 입학 하고 나서, 통학하느라 고생은 많이 했지만 그 덕에 우린 매일같이 너의 하교시간에 통화를 할 수 있었잖아. 즐거웠어. 주제는 네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네가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고민거리들을 나와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에게 있어서 내가 그렇게 의지가 되고 편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우리의 실존하는 유대감이 제법 깊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라고 생각했어. 너도 그랬잖아. 요즘 내 삶의 작은 낙은 나와 연락하는거라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즐겁기 때문이라고. 나도, 고민거리가 있으면 언제든 네게 이야기 해달라고... 그랬잖아. 근데, 왜 하필 나였어? 나 말고도 친구들 많잖아 너. 그냥, 네 이야기 잘 들어주고 호응 잘 해줘서, 네 이야기만 해도 잘 들어주는 그런 말동무가 필요했던거야? 음... 근데, 사실 그래도 상관 없었어. 그냥 나는 니가 다른남자들하고 대화하는걸 생각하면 왠지 기분이 나빴어. 이런거, 좋아하는거 맞지..? 아닌가? 아무튼! 매일같이 너의 하교버스에서, 나는 퇴근후 집에서... 그렇게 매일저녁부터 새벽까지 통화하며 지내기를 거의 한달이 지났고 통화 시간은 날이 갈수록 길어져갔어. 몇십분으로 시작했는데, 요새는 네가 할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1시간은 예삿일이고 금요일이나 토요일은 2시간, 3시간을 훌쩍 넘겨. 알긴 하니? 나는 이제 저녁이 되면 네 전화를 기다려. 언제부터였을까? 기억나지 않아. 한 달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너와의 통화는 어느새 내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아버렸어. 자정이 넘어갈 때까지 끝내 전화가 오지 않는 날은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져버릴 정도로 말야... 네가 내게 꼭 전화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너와의 대화로 인해 시시각각 기분이 달라지는걸까. 있잖아, 나는 내가 너에게 제법 특별한 존재일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내 착각이었나봐. 너에겐.. 그냥 내가 친구였나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넌 어떤 동생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 그 쯤인가부터 우리 대화방은 그친구 이야기로 가득채워져갔어. 너는 모르겠지. 솔직히 많이 섭섭했어... 너 그 친구와 하루에 오랜시간을 함께할 수 없어서 속상하다고 했지? 근데 난, 너와 고작 통화하고 카톡하는게 전부인걸... 이런 내 마음을 너는 알긴 할까? 이제 너 자취하면 그마저도 줄어들다 이내 거의 사라져 버릴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기에, 예측된 미래, 아니 불행을 알기에, 정말 많이 속상해. 이 심경을 형언할 수가 없어. 너와의 사이가 멀어져 버릴까봐, 네가 다른 남자를 만날까봐, 이러면 안되는거 알지만 -아니 사실 안될것도 없지만, 지금의 나는 지금 누군가를 마음에 둘 자격이 없다는걸 알아서.- 겁났어. 그리고 이건 아마도 현재 진행형이겠지? 그치. 나, 마음 정리하는게 맞겠지. 대답해줘. 그래, 정리해.라고. 이제 지칠때도 됐지 않냐고. 내가 이만큼 선을 그었으면 적당히 눈치채고 물러나라고, 이제 너와의 접점은 없고 나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겼으니 너는 시시해졌다고, 이제그만 내 삶에서 머물러 가달라고. 차라리 그렇게 말해줘. 힘들겠지만, 그래준다면 나 혼자 정리 하는것보다 빠르게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이게 전부야.

난 네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신경쓰지 않아. 

왜냐면, 내가 하고싶은 말을 솔직하게 다 했거든.

나중에 보고 조금 부끄럽긴 하겠지만

적어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아.


사실, 너에게 직접 말할 수도 있어. 그럴 용기도 있고.

근데, 난 친구로서의 너마저 잃고 싶지는 않아.

내가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고 네가 거절했을 때

우리가 완전히 남이 되어버리는거, 그건 정말 싫다.

이건 내가 마음을 정리하는것과는 다른 문제야.

이해해 줄 수 있지?


후련하네.


좋은사람 만나. 

진심으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래, 나도 알아. 쉽지 않겠지.


그치만 지금으로선 그게 우리 모두에게 옳은 것 같아.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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