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 [537476] · MS 2014 · 쪽지

2016-09-26 23:22:57
조회수 8,561

52일 남은 수험생 분들께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9241149

1.
감기 걸려서 계속 약 먹고 누워 있습니다.
몸살이 심하게 왔네요.
이 고통도 제가 선 곳이 자갈밭과 돌층계의 어디쯤이라는 증거겠지요.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여러분들도 많이 달려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파른 돌층계를, 거친 자갈밭을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걸어왔고, 걷고 있고, 앞으로도 걸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커다란 슬픔도 맞이할 것이고 그보다 큰 기쁨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겪으실 큰 기쁨을 미리 축하드리겠습니다.


2.
세계는 부조리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고통, 질투, 방종...
이러한 부조리들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순식간에 불행해집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부조리의 인식의 끝이 불행으로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방법으로 우리는 온갖 부조리에 맞서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부조리들에 굴종하며 살아간다면 평생 부조리의 불안에 떨며 살게 되겠지요.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불행해 질 것이며 병으로 나타나기도 할 것입니다.

카뮈가 말했듯이, '반항적 인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았듯이,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살지도 모르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토록 개인의 감정은 온갖 불확정성에 싸여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타인을 이해하기도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는 외줄을 타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만날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만나지 않고 서로 멀리 떨어진 외줄 위에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줄 위에서도 누군가와는 소리가 닿을 것이며 손이 스칠 것이며 입김이 닿을 것입니다.
그 소리를 느끼는 것과 손과 입김이 닿은 감각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항상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사랑받고 있고, 아니라면 사랑받을 것이고, 사랑할 것입니다.
주체적으로 깨닫는 것이 우리의 삶이겠지요.

4.
 여러분들도 공부를 하며 많은 외로움과 싸우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주체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살펴볼 시간을 가지시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사랑받고 있지 않고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누구에게 사랑받을 것이며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먼저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부조리에 맞설 때,
신 앞에 당당한 개인으로 맞설 때
그 때 우리는 인간성을 회복합니다.

시험이 주는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과 좌절에 굴복하지 마세요.
자신이 직접 길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가파른 돌층계를 오른다면 끝없이 위쪽으로. 거친 자갈밭을 걷는다면 끝없이 앞으로.
힘내세요. 조금만 더 걸으세요.

약 먹고 쓰느라 두서없고 길어졌네요.

2016.09.26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