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갓수생 [682437] · MS 2016 · 쪽지

2016-08-23 21: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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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대한한의사협회에서 저를 고소했습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8999486

필력 좋으신 의사분께서 쓰신 글입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pluripotency/posts/121371792869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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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의학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한의학에 대해서만 비판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검증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의심을 지속하기란 확신보다 어렵다"라는 표어를 블로그에 걸어놨겠습니까? 제가 한의학을 대표로 언급하는 것은, 제가 의사이기에 관련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제가 생물학자였으면 창조과학을, 천문학자였으면 점성술사를 주로 비판했겠죠.
 

제가 비판을 하면서 스스로 정한 원칙은, 인신공격과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저급하고 유치한 인신공격을 하더라도 똑같이 되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알고 있는 한의사 지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했습니다. 학문적 비판은 사람에 대한 비판과 분리되어야 하니까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격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방무당' '한방술사' '주술사' '껌정물' 등의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싫어하기도 합니다. 그 대신 최대한 논리와 사실 위주로 비판했습니다. 물론 비유와 sarcasm은 포기할 수 없었지만요.
 

저의 한의학 비판에 제대로 답변을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논박당할만큼 빈틈있는 글은 쓰지도 않습니다. 대신 블로그 글은 강제 삭제 요청(네이버는 일단 블라인드 요청을 받으면 귀찮아서 무조건 해줍니다) 등이나, 무차별적인 고소 남발로 입 자체를 틀어막으려 하더군요. 전에 한의사협회에서 초음파기기 시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분이 그 시연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비하의 단어 하나 없이 건조하게 항목별로 자세히 비판한 글을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반론이 불가능한 명백한 오류였기에 한의사협회는 글 삭제와 명예훼손 고소로밖에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사형당할 것이 명백한 죄수는 재판 출석 대신 재판장 자체를 폭파해버리는 테러를 택할 수밖에 없겠지요. 고소를 당한 의사는 많으나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드뭅니다. 물론 그 고소 사례 중에는 처벌받을 만한 수준의 원색적인 비난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실상은, 한의학에 대해 부정적인 글들은 일단 고소하고, 무혐의면 말고 식입니다. 고소의 남발을 제한하고 무고죄가 무거운 양법학 체계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한법학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저의 죄가 실제로 있건 없건, 그들이 저를 고소하는 것 자체는 자유입니다. 무혐의가 되더라도 아무런 배상도 없이 굉장히 피곤해집니다. 안 그래도 인생이 피곤합니다. 과장이 아니고 정말 경찰서에 갈 시간이 없습니다. 퇴근하고 오면 되지 않느냐는 형사님께, 저의 주당 근무시간이 100시간이 넘어간다고 말씀드리니 어이없어하면서 웃으시더군요. 결국 저는 일주일에 한두번 될까 말까 하는, 저녁을 밖에서 먹을 기회를 경찰서 피고인 조사에 허비해야 합니다. 그런 글 안써도 됐는데, 양심을 속이고 편안하게 사는 방법이 있는데 귀찮고 짜증나서 앞으로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종교, 미신, 거기에 더해 한의학 논쟁에 발 들이고 싶지가 않네요.
 
  
그런데 의사가 왜 한의학에 그렇게 비판적일까요? 의사의 양심에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양심을 외면한 행위죠. 예를 들어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약들의 용량은 밀리그램, 심지어 나노그램으로 맞춰질 만큼 용량-반응 관계가 정밀합니다. 용량에 따라서 효과가 정반대로 되는 약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처방들이 전산화되어 의사의 처방을 간호사가, 약사가, 전산검증체계가 확인합니다. 문제가 된다면 심지어 1심,2심,3심 판사까지 확인하겠죠. 설령 교과서에서 최선의 치료라고 인정한 처방일지라도 한국 보험 예산에서 허용하지 않는 처방이라면 의사는 범죄자가 되어 자살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야 할 처방을 하지 않아도 의료사고고, 하지 말아야 할 처방을 해도 의료사고입니다. 수술장에서 의사들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환부에 떨어지면 전체 소독을 다시 합니다. 의사들이 신경질적이어서가 아니라, 한 끝 차이가 명백한 결과의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의 주장은 절대로 같은 의사라서 옹호하고, 직군이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밀리그램 단위를 따지는 현장에서 약 제대로 줬는지 용량을 확인하는데 "그냥 대충 한움큼 집어서 줬는데, 주사기로 적당량 줬는데. 그게 뭔지는 내 비법이라 안 알려준다. 그리고 저건 부작용이 아니라 치료되는 과정이다. "라고 했다간 같은 의사라도 미친놈 소리 듣습니다. 그 전에 환자가 바로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같은 의료인이라면서 용량은 커녕 처방 자체가 비방이라고 하고, 부작용은 존재하지 않으며 명현현상일 뿐이라고 하는 현상을 어떻게 용납하겠느냐고요.
 

현대의학은 날카로운 칼입니다. 환부를 도려내려면 그 정도로 날카로운 도구가 필요하겠죠. 물론 실수로 혈관을 찢어서 환자가 죽을 수도, 미친 의사가 그것을 흉기로 휘두를 수도 있습니다. 날카로움이 효과적인 만큼 그에 따른 위험도 커집니다. 물론 미래에는 칼보다 대단한 총이, 플라즈마 건이 사용된다면 지금 쓰는 칼을 미개하게 생각하겠죠. 하지만 칼은 적어도 몽둥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정밀하게 도려내야 할 부분을 몽둥이로도 충분히 해볼만하다며 내리쳐서 돌이킬 수 없도록 으깨놓은 것을 보면 화가 나는 겁니다. 단적으로, 병동에 있는 약을 의도대로 사용하면 환자를 5분 안에 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극약'을 병동에서 치우지 않는 것은 적당량 사용하면 약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원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죄인을 죽이는 목적으로 제작된 '사약'은 당사자가 몇 사발을 먹고도 죽지 않아서 구들장을 때서 죽이거나, 할 수 없이 결국 목을 졸라 죽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의 확인이 명백한 '사형'에서도 이런 사례가 많았는데, 효과 판정 자체가 애매한 '자양강장'의 경우는 오죽하겠습니까? 효과가 없다고 증명이나 가능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한의사라는 '사람'과 제 지인들께는 지금도 절대로 악감정이 없습니다. 고소를 일삼는 단체와 개인은 싫지만요. 앞으로도 한방술사니 한무당이니 껌정물이니 하는 말은 안 쓸 겁니다. 그래도 섭섭해하시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냥 학문적으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친구라고 해서 틀린 것을 옳다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의사들의, 아니 자연과학의 학회가 얼마나 엄격한 검증을 거치는지 비과학자들은 잘 모릅니다. 논문에 대한 공격을 인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검증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그것에 대한 반박을 '명예훼손'으로 대응하는 행위는, 검증이 아닙니다. 학회가 아닙니다. 학문도 아닙니다.
 
  
저는 결과가 어찌됐든 그들의 의도대로 한발 빠지겠습니다. 정말 실제 생활이 위협받을 정도라면 사과도 할 수 있겠죠. 아무런 실체 없는 자존심과 양심을 지키느라 멋부리기에는, 제 삶이 너무 팍팍한가 봅니다. '악마의 대변인'처럼 꼭 필요하더라도 미움만 사고 본인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악역보다는, 좋은 소리만 하고 사는게 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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