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오노스 [904605] · MS 2019 · 쪽지

2022-11-27 16:04:42
조회수 9,194

정말로 믿었던 그 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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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제 글들을 봐오셨던 분들은 누군지 아실 겁니다.

그 친구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더 이성 욕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마음이 더 진정될까 싶어

여기에라도 글을 써 봅니다.

우울한 상태로 쓴 글이니 그런 거 싫어하시면

읽지 마시길 바랍니다.


OO아. 형이다.

난 너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수학4, 사탐3,4 받고도 니가 목표하는 대학 올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지. 

그리고 그 대학에서 니 목표를 이루기 힘들다고도 말했어.

너는 공부하기가 싫지? 나도 고3 때 그랬어.

다른 친구들은 24시간 엄청 열심히 사는 외고에서

내가 가장 열심히 놀았을거야.

몰래 PC방도 가고, 교실 맨 뒤에 서서 공부하는 자리에서 몰래 웹툰도 보고...

그땐 스스로에게 쾌락을 주입하며 나를 철저히 

속였기에 내가 우울하다는 생각은 잘 안했어.

조퇴해서 링거도 맞아보고,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매일 배에서 가스 소리 나고, 배탈 나서 힘 빠지고,

에어컨 바람 좀 쐬면 몸이 추워서 한여름에도 두꺼운 옷 입고 벌벌 떨고...

그게 다 우울해서 그랬다는 걸 몰랐던 바보였지.

내가 왜 우울했을까? 매일 우울한 음악을 들어서?

외고생인데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단순히 자존감이 낮아서?

아마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우울했을거야.

지금도 우울증이니, 몸에 힘이 없으니 하는 핑계로 

최선은 커녕 중학교 때보다 공부를 적게 하니 

우울한거야.


너는 말했지, 월 3백은 벌고 싶다고.

좋아. 좋은 목표야. 돈 버는 거 좋지.

근데 조금만 생각해도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지 않니? 

너가 노래를 가수처럼 부를 수 있니?

너가 운동을 국가대표급으로 할 수 있어?

유튜브 소재는 있어?

그림을 잘 그려?

소설은 잘 쓰니?

몸 쓰는 일은 잘 해?

이런 거 다 제치고 정말 돈 되는 재주가 있어?

너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되는 능력이 없는데 돈 벌려면 

공부라도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범죄 집단에 들어가기라도 하게?

너를 받아줄 범죄 집단은 없어.

너는 뭘하든지 흔적을 남기니.


공부를 해야하는 건 아는데, 공부가 어렵지?

성적이 아직 잘 안나오잖아. 그러면 어떡할거야?

이대로 포기? 지금 공부량 유지?

답은 뭘까? 할 줄 아는 건 공부가 다인데

목표는 낮출 생각 없고, 지금 성적이 낮으면

나는 너가 공부를 더 해야한다고 생각해.

아..평일에 3시간 반, 토요일 9시간, 일요일 6시간 공부하고 있는 것도 넘치게 하고 있다?

아 그 공부량이 감당이 안돼서 몰래 폰하고,

게임하고 그렇게 해서 밸런스 조절하는 거야?

니 생활 밸런스 잡다가 무너진 성적 밸런스는?

니 성적과 목표의 괴리는 어떻게 메꾸려고?


내가 예전에 수험생 커뮤에 도와달라는 글을 썼지.

그때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

지금 본인이 열심히 사는 것 같고,

매일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고 싶은 것도 

적당히 하면서 살고 있는 게 영원히 

지속될 것 같으니 그렇게 살고 있는 거라고.

말로는 무슨 대학 가겠다고 하지만, 

그건 진짜 목표가 아니라고.

진짜 목표가 대학 가서 취직해서 돈 많이 버는 건데

이대로 살려고 하면 정신과 상담 보내야한다고.


그분 말씀이 맞는 것 같아.

사실 후회가 많이 돼...

그냥 부산에 눌러앉아 있을 걸.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든 할머니 곁이나 지킬 걸

왜 괜히 다시 여기 올라와서 폰 중독에 빠진 널 구해보려고 기를 썼을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부정해보고 싶었나봐.

그 말을 부정하려면 최선을 다하지 못해 

매일이 우울한 나부터 바꾸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이끌어냈어야 했는데...

어제 너에게 화내고 너가 집을 나가 있는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모르지. 어쩌면 너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친구들은 너에게 말하겠지. 

너 정도면 공부 잘한다고.

너네 형이 사이코 아니냐고.

진지하게 잘 생각해봐.

그 친구들처럼 놀면서 대학 가고, 취직하면

월급은 얼마나 받을까?

음..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니 인생이 망할 것 같지는 않지?

그래...그래서 나는 관두고 싶다.

너의 꿈을 짓밟은 내가 죄인이야.

고2 모의고사 성적으로도 목표 대학 못가는데

너 말처럼 수능 때는 컨디션도 좋을 거고

계산 실수도 없겠지.

기적처럼? 아니 너 말대로라면 당연히

국어영어1 나오고 탐구 11 나오고

수학은 한 4 정도 나와서 

당당하게 대학 가야지 그래...


난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

재수해도 된다고.

나도 했고, 첫째 형도 했는데

왜 너만 안 되냐고 엄마한테 따졌지.

재수하기 싫으면 성적 맞춰서 

대학 가고 그 대학에서 맘대로 공부해서

취직을 하든, 알바를 다니든 맘대로 살면

되지 않냐고 그랬어.

그런 내게 엄마는 내 아들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그 쪽으로 기울은 것 같네.


너 역사 좋아하지?

나라가 망하기 전에 충신의 말을 듣지 않는 왕들을 보면 기분이 어때?

암 걸린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너가 몰래 밤과 새벽에 컴퓨터, 화장실에서 폰,

책 펼쳐놓고 폰, 인강 틀어놓고 딴 짓을 하는 걸 목격할 때마다 그 심정이었어.


더 하면 너도 힘들겠지만,

내가 더 힘들 것 같다.

너가 정말 진심으로 내 코칭을 끝까지 받고 싶다면

이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

난 지금 진짜 한계야.

우울증 약도 다시 하루 3번으로 늘였고,

교회 봉사도 더 못해.


OO아, 니가 앞으로 뭘 하든 명심해라.

사람 고쳐쓰려고 노력을 하는 건 좋은데,

그 사람을 믿지는 마. 니 모든 걸 주지마.

그렇게 하면 결국 너가 제일 힘들어진다.


어릴 땐 나를 엄마아빠보다 좋아했던 너인데,

계속 되는 마찰 속에서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되었네.

어릴 땐 정말 잘 사라져서 경찰도 몇 번 불렀었지..

이제는 몸은 사라지지 않지만 정신이 사라지는 것 처럼 보인다..

공부가 싫다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서, 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길 바래.

앞으로의 길을 응원한다. 

그리고 부족한 내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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