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승천의부적 [979690]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5-12-08 21: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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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 실패자 고졸, 이제 수능과 작별하고 다른 출발선에 서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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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정선월이라고 합니다.

오르비에는 글을 처음 쓰는 것 같네요.

예전에 수험생활을 하면서 오르비에서 정보를 얻고는 했습니다.

벌써 5년이 넘었네요...



저는 세 번의 수능을 봤습니다.

즉, 삼수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험에서 실패했습니다.

고1 첫 중간고사, 지방 일반고 평균 4등급정도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가고싶었던 대학을 수시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곧바로 정시를 준비했습니다.



그저 도피 심리였습니다.

대학이라는 것이 너무도 화려해 보였고, 원하던 대학의 간판만 가지게 된다면 모든 것을 가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몰아갔습니다.



"이 시험만 잘 보면 너는 모든게 괜찮아질 거야."

"이 시험만 잘 보면 너는 누구에게나 존경받고, 자랑이 되는 사람이 될거야."

"이 시험만 잘 보면 너는..."

"이 시험만 잘 보면..."

"이 시험..."



그렇게 헛된 희망을 가지고 수능 공부를 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는 했지만 그저 앉아서 생각없이 강의를 보거나, 내가 정말로 지금 해야하는 공부를 하지 않고 의미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의고사를 보면 3등급이 나와도 반에서는 3등 정도였기에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게다가 높은 등수를 얻은 것도 수학이나 탐구 뿐이었습니다.

국어와 영어는 반에서도 10등을 초과했습니다.

정작 원하는 대학은 1등급을 맞아야 하는데도 저는 나태했습니다.

맞춰야할 기준은 정시인데도, 수시처럼 반 얘들과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정작 수시를 하는 친구들은 모의고사에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두려워졌습니다.

지금까지 부모님께 성적표를 숨기고 보여드리지 않았던 것이 두려움을 더 크게 했습니다.

이제 증명할 시간이 되었다.

증명, 증명, 증명.

그 단어가 제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모의고사를 보면 성적은 오르지 않아서 불안감은 계속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습니다.

"이 시험, 수능날의 시험만 잘 본다면 나는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첫 수능을 망쳤습니다.



뻔한 결과였습니다.

예상한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니다."

"재수는 대부분이 한다."

"이 시험, 다음 수능만 잘 본다면 나는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



그렇게 부모님과 싸우고 재수를 시작했습니다.

각오한답시고 머리를 밀고 공부를 했습니다.

아버지와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나의 다음 수능에서의 빛나는 성적표와 합격증을 보여드린다면 반드시 기뻐하실 것이다고 믿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이번 수능에서도 실패하면 어쩌지?"

하지만 다른 말이 앞섰습니다.

"아직 수능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또 나태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고 수능날이 왔고, 저는 당연하게 실패를 했습니다.



부모님께 성적표를 보여드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저는 삼수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이 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너무나도 큽니다.



삼수의 시작.

머릿속은 꽃밭이었습니다.

1월부터 수능을 준비했기에 저는 "가능성"을 믿고 의대를 갈까, 약대를 갈까.

이런 무의미한 망상의 시간을 항상 보냈습니다.

그리고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믿는다며 망상했습니다.

제 망상 속의 저와, 현실의 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채 말이죠.



그리고 또다시 수능날이 왔습니다.

국어를 푸는데 지문이 읽히지 않았습니다.

수학을 푸는데 계산이 자꾸 틀렸습니다.

영어를 푸는데 듣기부터 들리지 않았습니다.

탐구를 푸는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몰랐습니다.



공황이 왔던 것입니다.



결국 수능은 끝이 났고, 성적은 재수 때와 비슷했습니다.

정확히는 현역, 재수, 삼수 모두 성적이 비슷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계속 머리가 돌아갔습니다.



"나는 괜찮은, 괜찮은 사람..."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험을 한 번 더..."

"아니, 그러기에는 시간이..."

"그래도 이대로면 주변에 어떻게..."

"그러면 사수를..."

"하지만 다시 수능을 본다고 해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이번에는 정신과에 찾아갔습니다.



나중에 불리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해서 정신과를 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어졌습니다.

밤마다 꾸는 악몽.

항상 생각나는 죄책감.

불확실한 미래.

주어진 시간은 대학 입학 전까지였기에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우울증, 불안장애를 판정받았습니다.

타인들보다 심하다고 들었고, 약도 많이 받았습니다.

약을 먹자 정신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수능을 봐야했던걸까?"



그 생각이 들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였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나 답이 있었습니다.

저는 비주얼노벨을 좋아했었습니다.

흔히 미연시라고 부르는 게임을 말입니다.

비주얼노벨을 할 때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읽어보면서 생각을 해보는 것들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비주얼노벨을 제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주셨습니다.

정신과에 다니고 있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대화를 해봤더니 대학은 아무런 대학을 다녀도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러셨습니다.

제가 왜곡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화.

그렇게 부모님과 대화라는 것을 처음으로 제대로 했습니다.



약을 먹은지는 1년이 넘었습니다.

1인 개발이라서 아직 많이 부족한 작품입니다.

AI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격은 무료로 결정했습니다.



이 방향이 맞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

그것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출발선>에 서있습니다.

이 길이 험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원해서 선택한 <출발선>입니다.

다른 누구에게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을 선택한 <출발선>입니다.

그 누가 뭐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출발선>입니다.

그 시작을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게임의 이름은 <출발선>입니다.

게임의 이야기 내용에 저의 인생 스토리를 각색해서 담아냈습니다.

저같이 그저 타인이 원하는 삶에 따라서 가다가 막다른 길에 다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제작했습니다.

만약 그런 분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었다면 싶습니다.

수능에만 너무 얽매여있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솔직히 저의 지금까지 인생이 어땠는지를 누군가가 보고 괜찮았다고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점 링크를 올리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https://store.onstove.com/ko/games/103338

(스토브 상점 페이지 링크입니다.)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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