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맥주 [1088100]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5-11-12 0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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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아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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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 시간에 잠 못 들고 오르비를 들락거리는 것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릴 길이 없어 들어온 애기수험생들이거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응원하러 온 대학생 선배들이거나


아니면 추워지는 가을날 밤, 애기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센티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쳐다보는 엄마게이겠지요(?)




그냥 응원해 주고 싶어서 들렀어요. 등 한번 토닥여 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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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지만, 벌써 서른다섯 해를 살았네요


수능을 치른 게 열여덟 살이었으니


이제는 정말 제 인생의 한가운데에 수능시험이 있었던 셈이네요




아직도 제 마음은, 어제까지 교정을 거닐던 대학생 같고


수능시험은 고작 몇 년도 지나지 않은, 힘들었지만 찬란한 기억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가 되었고


수능이라는 것은, 제 인생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먼지에 덮여 빛 바랜 훈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가을 바람이 차가워 가는 이맘때면,


눈을 감고 마음으로 훈장에 덮인 먼지를 닦으며


그때, 수십만 명이 하나의 결승선만 보고 달리던 그 치열한 마라톤에서


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것,


그러니 제 인생에서 다른 어떤 괴로움이 찾아올지라도


그 때처럼 이를 악물고 또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것-


그것만은 제 가슴속에 또렷이 떠오른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 건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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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머니는 종종 말씀하셨지요


자식이 생겨 봐야 그제사 남의 자식 귀한 줄을 안다고요


이제서야 그 말뜻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답니다.




전에는 언니(or누나)가 동생을 대하듯, 오지랖 넓은 선배가 후배를 대하듯


가르쳐 주는 느낌으로 쪼꼬미 수험생들을 대했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아침 출근길에 보이는


무거운 가방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우리 아가들의 미래의 모습이겠거니 생각하면


문득 짠하고, 안쓰럽고 또 사랑스럽고...




아가들을 하루하루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이 힘겨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가들을 바라보며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을 건강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오며


수능시험장 문턱을 밟는 여러분의 모습이


그 자체로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뒤에서 지켜봐 주신 부모님들의 헌신은


또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모두들 지금은 바쁘겠지만, 시험 끝나고 정신이 돌아오면


각자 부모님들 한번씩 꼬옥 안아드리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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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더 길어질수록 부끄러움만 더 커질 것 같네요


제가 뭐라고, 제 응원이 여러분께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하지만 이 말을 해 주고 싶었어요, 저 역시 이 떨리는 순간을 지나가 보았고


또 뭐 하나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아가들을 키우는 중인 엄마로서


이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은 여러분들,


평범한 것 같지만, 사실 자랑스러운 아가들이라고...


제 아가들에게 이 순간이 오면, 그저 꼭 안아주고 잘 다녀오라고 해 줄 텐데


일일이 그렇게 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




불과 삼 년 전 요맘때쯤에 쪼꼬미들한테 응원글을 남겼을 때는 


결과가 중요하다, 그러니 좋은 결과 있으라는 말만 엄청 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제 마음도 우리 아가들처럼 조금 자랐나 봐요




물론,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행운이 있기를 빌지만


그리고 꼭 그렇게 되겠지만-


혹여 만에 하나, 마음에 차지 않는 결과를 받아들게 될지라도


여러분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혹시나 내일 아침 이 글이 지워져 있다면


저 엄마가 너무 부끄러웠나 보다 - 생각해주셔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우리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쪼꼬미들! 시험 잘 보고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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