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타임즈 [1136344] · MS 2022 · 쪽지

2025-11-11 21: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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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1컷 47점이 시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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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탐구 47점과 세계지리 47점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부터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47'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현상을 단순하게 재단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과학탐구의 고난도 문항과 세계지리의 고난도 문항은 그 태생부터가 다르다. 평가원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험 형식 자체가 세계지리라는 과목의 진정한 변별력을 담아내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고 봐야 한다.


과탐의 킬러 문항은 왜 무서운가? 그건 대체로 지식 이상의 '능력'을 요구하는 파워 테스트임과 동시에, 정확한 논리와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합답형 구성 상 ㄱ, ㄴ, ㄷ 선지 세 개를 모두 정확히 꿰뚫지 못하면 한순간에 오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나만 알아서는 어림도 없고, 두 개를 알아도 마지막 하나에서 미끄러지면 끝장이다. 여기에는 '어설픈 앎'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데 세계지리는? 자연지리에서 원리적인 부분을 끌어올 수 없는 이상 현실은 이미 '유의미한' 지식적 차원의 변별력 확보라는 게임이 끝나버렸고, 발전할 만큼 발전한 나머지 더 이상 현재의 선지 구성과 출제 원리로는 학생들을 날카롭게 가려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컷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또한, 오지선다, 혹은 ㄱㄴㄷㄹ 합답형이라는 형식은 응시자에게 너무나도 관대한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모르면 패스는, 암살자가 아니라, 다섯 명의 용의자 중 진짜 범인 한 명을 고르라는 것과 같다. 내가 범인이 누군지 정확히 몰라도, 알리바이가 확실한 용의자만 제쳐도 정답에 도달할 수 있다. 평가원이 아무리 지엽적인 개념을 선지에 하나 끼워 넣는다 한들, 나머지 네 선지가 평이하다면 그 문항은 변별력을 잃는다. 응시자는 그 생소한 개념을 몰라도, 아는 것을 바탕으로 오답을 지워나가 정답을 '맞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험은 '지리 지식의 깊이'가 아니라 '오답 소거의 기술'을 겨루는 장이 되어버렸다.


사실 세계지리의 위기라고 하지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세계지리라는 학문을 평가하는 '시험 형식의 위기'이고, 깊이 공부한 학생들의 '노력의 가치 하락'이며, 최상위권 변별이라는 '시험의 목적 상실'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평가원과 출제자들이 이 시험 형식을 인질로 삼고 그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든 1컷이 50점을 찍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작년 12번 단 한 문제처럼 1컷만 낮추고 모두가 역변별 당하는 악의적인 문제를 설계하는 데 골몰한다. 이것이 과연 학생들의 지리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등급컷이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질문을 해보자. 유능한 탐정이란 무엇인가? 정의할 수 있나? 어린 조수가 "선배님, 유능한 탐정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음... 사건의 단서들을 귀납적, 연역적으로 추리하여... 범인을 특정하는 능력을 가진 자..."라고 답해 줄 건가? 아니다. 수많은 사건 현장을 함께 누비며 "저 단서를 봐. 저게 바로 범인이 남긴 결정적 실수야"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 조수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진짜 단서'를 알아보는 눈을 몸에 체화하게 된다. 정의를 내릴 순 없어도, 무엇이 결정적 증거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계지리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이와 비슷하다. '왜 이 지역에서는 커피가 재배되고 저 지역에서는 밀이 재배되는가?', '왜 이 도시는 쇠퇴하고 저 도시는 번성하는가?'에 대해 단순무식하게 줄임말로 암기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진짜 실력은 원인과 결과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즉 몸에 체화된 '지리적 내공'에서 나온다.


문제는 상당수 세계지리 응시자들이 이런 내공을 쌓기보다, 포로가 되기를 자처한다는 점이다. 그저 "이 나오지도 않을 지엽을 외우면 1등급을 받을 수 있겠지", "나는 이렇게 지엽적인 것도 아는 고수다"라며 골방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것으로 수험생활을 보낸다. 이러니 지리 지식을 현실에 응용할 줄 모르는 ‘줄임말 암기왕'을 왜 뽑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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