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토), 강대에서 귀가 - 하얀색,이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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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쳤다. 어제와 비슷한 하루이다. 엊그제나 저번주에도 비슷했을 것이다. 집에서 아침을 보고, 서울에서 오후를 보내다 지하철에서 밤을 맞는다. 학원 6층에 있는 하얀 자습실이 내 공간이다. 지정받은 자리에 앉아, 책상시계를 세워뒀다. 그 시계엔 스톱워치와 타이머 기능도 있다. 두 달 전부터, 그 시계 타이머를 30분씩 계속 맞춰놓곤 한다. 그렇게 해 놔야 비로소 여기서도 시간이 흐른다.
오늘도 수학을 많이 했고, 역시 막히는 문제를 만났다. 2월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게 뭘까? 세 문제 가량이 연속으로 막혔다. 뒷면 해설지를 봤는데, 너무 빽빽해서 보기 역했다. 그래서 문제를 치우고, 잠깐 고개를 젖혀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주말이라 평일보다는 사람이 덜 앉아있었다.
그때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공간이 지나치게 하얀색인 것 같았다. 자습실 벽지나 책상이 흰색인 것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하얀색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느껴지니 둘러싼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연필 끄적이는 소리만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사방이 하얗게 산란하고 있다. 책상도, 조명도, 천장도 빠짐없이 다 하얗다.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질감이 든다.
그것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은 이렇다. 건조하고 단단한, 그리고 건너편을 뿌옇게만 보여주는 무기질의 막이 생활을 감싸고 있다. 그 막은 세상의 중심부를 가로막고, 지나치게 근시적인 것들 또는 너무 멀리 떨어진 흐릿한 것들만을 보게 한다. 나는 나와 같은 시간을 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져서,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들을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론 무감각해지고 있다. 오늘 오후 3시에 세상에 존재했던 건 내 앞의 수학 문제와 하얀 책상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만 가지고 막 건너편의 먼 앞날을 띄엄띄엄 생각한다. 수능, 지위, 자격, 평판 같은 것들. 그 중간중간 끼여있을 모든 시간대는 이 흐릿한 예상들 속에서 축약되어, 20살의 단편 뒤엔 바로 25살의 단편이 - 또 그 뒤엔 사이의 5년이 뭉뚱그려진 30살이 그려진다. 그렇다, 이 하얀 책상을 토대로 뿌옇게만 보이는 막의 건너편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 펼쳐질 삶이란 그저 짤막한 뼈대 위 군데군데 붙여진 살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앞으로 생각할 만한 모든 시간대의 세계를 이어붙여봤자 그 면적은 어렸을 때 경험한 놀이동산의 크기만큼도 안 될 것 같다는 말이다.
하얗다는 것, 어떤 색도 아직 칠해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라 여기곤 한다. 그러나 다르게 본다면 채색 하나 없는 꽤 공허한 색깔로도 보인다. 그렇다, 어쩌면 오늘 느꼈던 순백의 공간은, 요즈음의 건조하고 메마른 상상들이 뿌연 막에 부딪혀 난반사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정갈한 하얀색에서 느껴진 이질감의 정체이지 않을까.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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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쓰시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