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맥주 [1088100]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2-01-04 15:24:58
조회수 6,753

면접 이야기: 불리한 조건을 어떻게 뒤집을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42667372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정말정말정말 오랜만에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ㅋㅋㅋㅋ


바로 13년 전 풋풋하지만 독한 아이였던 

저의 면접 이야기를 해보려고해요!

(아닌가 별로 도움 안되려나...?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요새는 

정시에서 면접을 보는 대학들이 몇 곳 없네요^^;;)


일단 제가 제 면접썰을 자신있게 풀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바로 지역균형에서 불리했던 내신을 

면접으로 뒤집고 들어간 케이스이기 때문이죠!



바쁜 분들을 위해서 선 3줄요약 해 볼게요.


불리한 조건을 면접에서 뒤집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 우선, 냉정한 표본 분석을 통해 

  내가 면접에서 '뒤집어야' 하는지, '굳혀야' 하는지 파악하자.

   - 뒤집어야 하는데 인성면접 대비하고 있으면 큰일납니다...

   - 반대로, 굳히기만 하면 되는데 괜히 긴장해서 아는 내용도 대답 못 하면 억울하겠죠..!

      굳히기만 하면 되는 사람은 예쁘고 단정한 옷 입고, 시험 장소만 잘 체크하고, 1시간 전에 도착만 하시면 됩니당


2. 주어진 문제와 관련해서 본인이 심화 학습한 내용이 있다면 충분히 어필하자.

   - 특히, 학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내용(대수학, 해석학, 각종 수학 상식들과 난제들[라마누잔 합, 리만 가설, P-NP 문제, 푸앵카레 추측 등...])에 대한 본인의 배경 지식을 드러낼 기회를 노려보자.

   - 위의 예시는 수학만 들었는데, 과학이나 철학 분야에서도 다양한 심화 주제가 있을 거에요


3. 주어진 질문 자체에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자. 

   - 답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해당 문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보여 주자

   - 모르겠으면 한번 힌트라도 달라고 해 보자. 밑져야 본전인데 뭐 어때서?



우선 그 당시 설의 지역균형선발의 상황은 

20명 정원에 1차 서류전형에서 1.5배수(30명) 선발, 

그리고 면접에서 10명을 컷하는 방식이었는데


오르비 표본분석에 따르면 23-25명 정도가 내신 1.00 

(그러니까 1학년 1학기~3학년 1학기까지 10차례의 내신시험에서 

전과목 1등급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뜻이죠... 

도대체 이 괴물들은 다 어디서 온 거지??)


그리고 1단위(기술가정 같은 과목이겠죠?) 2등급을 맞은 사람은 없었고,

2단위를 1번 2등급 맞은 사람이 3명, 

3단위를 1번 2등급 맞은 사람이 2-4명 정도 해서

3단위 2등급까지가 1차를 통과하는 것으로 나왔어요


하지만 내신 만점자만으로도 20명 정원을 다 채울 수 있다는 게 문제였는데,

하필 제가 바로 2단위를 한 번 2등급을 맞은 적이 있었던 학생이었걸랑요.

(물리1... 꼭 죽일거야... 진짜 얼마나 쫄렸는데...)




그래서 저는 면접장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예상되는 장면을 딱 머릿속에 그려보았어요.

- 나는 내신점수만으로 따지면 탈락권이다. 뒤집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 나한테는 아마 안락사, 장기기증, 무슨 의사 될래? 같은 인성면접 질문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한테 인성면접을 물어본다면, 그건 아마 그냥 떨어뜨리겠다는 뜻일 거다.

- 만약 나한테 수학이나 과학 관련 추가질문이 계속 들어온다면, 

  그건 교수님들이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뜻일 거다. 

  1문제 정도는 불안하고, 2~3문제 정도 더 맞추면 합격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주어지는 추가질문에도 정말 잘 대답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면접에 임했지요.


면접날 서울대는 정말 추웠어요. 

그리고 산자락에 자리잡은 학교는 정말 신기했어요!

산발치에는 눈이 녹았는데, 자연과학대학 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눈이 쌓여있더라고요.


당시에 수시 수리면접의 방식은

수학문제 2개를 주고(각 문제에는 소문항 2-3개가 딸려있어요)

문 밖에서 10분? 15분? 정도 생각을 하고 들어간 다음,

교수님 두 분 앞에서 10분 동안 답안을 구술하는 방식이었어요.


시간이 부족한 대신 문제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답니다. 

(상대가 여러분들이 그렇게 무시하는 수시충이니까요...!!ㅠㅠ 이제 만족하시나요)


그런데 아직도 2번 문제가 기억에 남아요. 저를 구해 준 운명의 2번...



이 문제의 빨간색 네모 친 조건, 혹시 익숙하신가요?


조금 더 유려하게 표현한다면

"단조증가하면서 위로 유계인 

(또는 단조감소하면서 아래로 유계인) 실수로 구성된 수열은 

최소상계 (또는 최소하계)를 갖는다."는 것인데, 

단조 수렴 정리라고 하고, 

실수의 완비성 공리(completeness axiom)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립하는 정리에요.


제가 이 정리를 알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선생님의 조언으로 해석학을 독학하면서 우연히 접한적이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때 정수의 이산성, 유리수의 조밀성 그리고 

실수의 연속성에 대해서 배웠는데

정수의 이산성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유리수의 조밀성은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지만

실수가 연속이라는 것은 바로 이해가 되질 않는 거에요.

어떤 집합이 "끊어져 있지 않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겠어요...?


그래서 계속 고민하다가, 

나중에 중학교 올라가서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수학 선생님인데, 글씨도 예쁘고 엄청 인기 많으신 중년의 남자쌤이었어요. 

저는 중1, 중3 때 두 번 다 담임선생님이 이 분이 걸렸어요. 행운이었죠.) 

두꺼운 해석학 책을 빌려주시면서, 

특별히 자세히 살펴봐야 할 부분을 친절하게 알려 주셨어요.


물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 보다가 포기하고

또 보다가 포기하고 했지만,

나중에 고등학교에서 극한의 개념을 알고 나자

저 위에 나온 단조 수렴 정리라든가, 엡실론-델타 논법 등

해석학의 몇몇 내용들은 어렴풋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죠!


이 조건을 보는 순간, 제 불리한 내신을 뒤집을 한 줄기 빛이 보였어요.

교수님들 앞에 앉아서 2번 문제를 구술할 때, 

일부러 지나가듯이 '단조 수렴 정리가 문제에 주어져 있네요...'하고 슬쩍 언급을 했었지요.


아니나다를까 교수님 두 분이 눈을 빛내시면서

- 단조 수렴 정리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을 텐데? 라고 물어보셨고

이때닷! 하고 얼른 어설픈 해석학 지식을 주워섬겼지요.


어렸을 때 실수의 연속성을 배웠는데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중학교 때 선생님의 조언으로 해석학을 공부했고... 

연속성이라는 말은 함수에서 쓰는 말이지 집합에서 쓰는 말은 아니니까, 완비성이라는 말을 쓴다면, 

실수 집합 자체가 '완비적이 되도록' 정의한 수 체계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데데킨트 절단을 이용해서 구성적으로 정의한다면 

완비성 공리는 '공리'가 아니라 '정리'가 되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실수 집합은 완비적이다. 

따라서 실수로 구성되고, 단조증가/감소하며, 위로 또는 아래로 유계인 수열은 

엡실론-델타 논법을 적용하면 그 수열의 최소상/하계를 향하여 수렴함을 알 수 있다...고 이해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대학에 오면 교양으로 해석학을 꼭 들어보고 싶다...

(그러니까 대충 붙여달라고 구걸하는 소리 -> 물론 대학 가서는 놀았어요^^)


그랬더니 교수님들께서 웃으시면서

학생의 강의는 나중에 또 듣기로 하고, 우선 추가질문을 좀 내볼게

하시면서 이 수열이 수렴할까? 를 물어보셨어요. 



당연히 이 수열은 단조증가하고, 

rough하게 잡아서 n번째 항이 2을 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n+1번째 항 sqrt (1+a{n}) 도 2를 넘을 수가 없기 때문에 위로 유계이므로 

단조 수렴 정리에 의하여 수렴하는 수열이며

수렴값은, 그 값을 X로 놓으면 X=sqrt (1+X)로부터 간단하게 구할 수 있다. 

이렇게 답변을 드렸지요.


그랬더니 씩 웃으시면서 그럼 이 수열은 수렴할까? 하고 

두 번째 추가질문을 주셨어요.



단조증가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위로 유계임을 보여야 하는지 (즉, 넘을 수 없는 상한선이 존재하는지?) 감이 안 잡히더라구요.

시간은 1분밖에 남지 않았고... 머릿속은 하얘지고...

그런데 그때, 열아홉 살의 제 입에서 지금 생각해도 기특한 대답이 튀어나왔어요.


- 교수님, 저 떨어져도 괜찮으니까 혹시 이 문제 힌트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이런 문제를 못 풀면 잠이 안 와서요... 집에 가면서라도 풀어 보게요... 

(사실 마음속으로는 힌트를 주시면 얼른 풀어버리고 

풀었어요! 이제 붙여주세요! 하고 뻔뻔하게 도망갈 생각이었어요 ㅋㅋㅋ)


그랬더니 교수님이 웃으시면서 

'아마 집에 가면서 생각이 날 거야'라고 대답하셨고

그때 10분이 다 됐다는 종이 울려서, 꾸벅 인사를 하고 퇴실했어요.


그리고... 정말 집으로 가면서 생각이 났어요!

그냥 저 두번째 근호 앞에 2만 끌어내면 되는 거였는데 ㅠㅠㅠ 

어찌나 분하던지요 ㅠㅠㅠ


집에 와서 같이 지역균형을 지원한 친구들이랑 전화를 해 봤는데


내신 1.00인 친구들은 역시나 인성면접이었다고 하고

저랑 똑같이 2단위 2등급을 받았던 저희 남편(그때는 그냥 친구였죠)은 

저처럼 정신없이 추가문제 연타를 맞았다고 했어요

저랑 차이점이 있다면 저 마지막 문제를 풀었다는거...??

그래서 뭐야 넌 어떻게 풀었어?! 했더니 

예전에 그냥 저 수열의 수렴값이 있나 궁금해서 컴퓨터로 돌려봤어 ㅎㅎㅎ 이러더라구요

진짜 특이한 사람이야...



아무튼 그러고 나서 대학을 붙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추가질문을 대답하고 못 하고가 중요했던 게 아니라

면접의 성패를 가르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는 생각을 해요


1.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심화학습을 한 경험을 어필한 것.

2. 대답을 하지 못하더라도, 

문제 자체에 순수하게 호기심을 보이고 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것...? 

(는 아닌것같고 그냥 교수님들 앞에서 당당히 힌트를 구걸하는 용기)


3. 그 외에, 저는 대학 하나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생각을 해요.

  여러 대학의 입시를 동시에 준비하고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내가 이 학교 자소서에 어떤 내용을 썼지? 이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이 뭐였지? 

  이런 내용들이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


쓰다 보니 글이 두서없이 길어졌는데요...


사실 개인의 경험에 의존한 글이다 보니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정시면접을 앞두고 떨리는 수험생분들을 위해서

참고용으로만 적어 본 개인의 경험담이니까

어디까지나, 이렇게 당돌하게 면접을 본 사람도 있구나-정도로만 생각하시고


실제로 면접을 앞둔 수험생분들께서는

더 다양한 합격수기나, 또는

공신력 있는 면접 대비반 선생님들의 조언을 꼭 귀담아들으시길 부탁드려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모두들 원하는 결과 얻으시길 바랄게요~^^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