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ㅅㅋㅌ [1056455] · MS 2021 · 쪽지

2021-06-12 01: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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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읽고 - 분석심리학적으로 바라본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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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틀림없이 하나의 신을 함께 섬기고 있지. 하지만 그 신은 전체 세계의 반쪽에 불과해. (중략) 그런데 인간에게 주어진 세계는 결코 반쪽이 아니거든. 그렇다면 우리는 ‘밝은 세계’와 함께 ‘어두운 세계’에 대해서도 경배할 수 있어야 해."
- 막스 데미안


평범한 부잣집 도련님 에밀 싱클레어는 어느 날 친구들에게 으스대고자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국 ‘프란츠 크로머’라는 아이에게 약점을 잡혀 휘둘리면서 처음 어두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구해주고, 그 둘은 친구가 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늘상 성경에서 보던 이야기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해석을 던지기도 하고, 훗날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아브락사스’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이런 신비로운 데미안의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데미안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데미안은 누구일까? '데미안(Demian)'이라는 이름은 흡사 '악마'를 뜻하는 독일어 '데몬(Demon)'처럼 보인다. 마침 그의 말 역시 참으로 악마의 꾀임처럼 들리기 쉽다. 하느님 뿐 아니라 악마를 섬겨야 한다니, 이 얼마나 이단적인가? 하지만 그 속을 훑어보면, 이는 오히려 악마의 꾀임이라기 보다는 수호천사의 조언처럼 보인다. 왜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저자 헤르만 헤세가 많은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융의 분석심리학은 '페르소나'와 '그림자'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그 규범이나 행동 양식을 따르고, 자신의 내면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마주하는 역할을 하도록 돕는 반면, 그림자는 자신의 피하고 싶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또 다른 일면이다. 이러한 그림자는 모든 이에게 존재하며, 없애서도 안 되고, 없앨 수도 없으며, 오직 그림자를 인정하고 화해해야만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이는 니체 철학에서 ‘몰락하는 인간’과 ‘위버멘쉬’의 개념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내면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춘기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융이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페르소나와 자아, 그림자 사이에 갈등을 겪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그림자를 억제하지 못해 쉽게 충동적이게 되기도 하고,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과 내면의 사이에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싱클레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으로 어둠의 세계라는 그림자를 접하고, 그 자신을 가두고 있는 세계인 '알'에 갇혀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마치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해 준다. 그가 그림자에 먹히지 않도록 붙잡아줌과 동시에, 기존에 싱클레어가 가진 관념에 의문을 던지며 갇혀 있던 ‘알’에 자그마한 틈을 새겨준다. 덕분에 싱클레어는 자신을 가두었던 알을 깨부수고 빛과 어둠 모두의 신 아브락사스를 향해 비상할 수 있게 되고, 데미안은 항상 싱클레어와 함께할 것이라며 사라진다.


이러한 데미안의 행적은 놀라우리만치 사춘기 청소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발전 과정과 닮아있다. 즉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자아가 만들어낸 페르소나이자 그림자인 것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떠나기 전 그의 야전침대 옆에서 이러한 말을 한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곧 떠나야만 해. 너는 언젠가 내가 다시 필요해질지도 몰라. (중략) 그럴 때 너는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후략)"


데미안은 다시 싱클레어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데미안은 죽은 것이 아니다. 싱클레어의 기나긴 방황은 어느덧 제자리로 돌아왔으며, 그는 방황 끝에 어떤 거울을 손에 쥐었다. 언제든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거울을.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알을 깨고 나아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데미안은 홀연히 나타나 틈을 새기고 우리를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곤 말할 것이다.


"네 마음속에 귀 기울여야 해.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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