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1-03-21 14: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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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할아버지는 이번 LH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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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께서는 이번에 약 70살이십니다. 얼마전 저희 할아버지는 허리에 큰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평생 열심히 일하시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오시던 분이라 허리와 다리, 관절이 매우 안좋습니다. 할아버지를 같이 거드시던 할머니는 두달 전에 동일한 정도의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현재 인천에 살고 계신데, 어릴 적에는 강화도에 살으셨습니다. 지금도 인천의 외진 곳에 가면 개발이 안된, 시골같은 곳이 많습니다. 그 옛날에 강화도에 무슨 시설이나 개발이 있었겠습니까. 저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초등학교도 나오시지 못하시고 열심히 일만 하셨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농사를 하십니다. 과거에는 먹고 살려고 과일장사부터 어부까지 안해보신 일이 없을 정도로 정말 노력하고 살으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근면성실을 발가락 만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사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인천 계양구의 작은 농지가 있으셨습니다. 그 땅을 무려 20년 동안 가지고 계시면서 직접 농사를 지으셔 왔습니다.

















 20년 동안 땅을 가지고 계셨으나, 땅값은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희 할아버지가 생각은 있으셨겠지요, 향후 개발될 것이라고 예상하시고 여태 농지를 직접 가꾸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2~3년 전, 값도 오르지 않고 팔리지도 않던 그 땅을 어느 부동산 중개업자가 직접 집까지 찾아와서 판매를 권하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부터 많이 의심스럽습니다. 땅 소유자의 주택 위치는 분명 개인정보인데, 어떻게 그걸 알고 집까지 직접 찾아왔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 부동산 중개업자는 아주 적극적으로 땅을 매입해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또한 20년이나 가지고 계셨지만 그다지 가격도 오르지 않는 농지에 희망이 없다 생각하고, 상당한 조건을 제시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업자에게 판매한 직후 그 땅의 가격은 폭등했고, 당시 이 문제를 가지고 부동산 업자가 와서 70이 되는 저희 할아버지와 작은 몸싸움을 하시고 저희 할아버지는 잠깐 입원을 하실 정도로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LH 사건이 터지는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땅을 LH 그놈들과 거기에 유착한 중개업자가 사전에 정보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구나. 현재 인천에서 계양구 쪽은 LH 투기 의혹으로 가장 시끄러운 동네 중에 하나입니다.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96915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는 지금은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집도 있으시고 땅도 조금 있으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비교적 풍족한게 사신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 아버지가 대학교를 다닐때만 하더라도, 저희 어머니와 데이트 중에 밤 12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과일장사를 하시는 곳에서 과일을 치우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죠. 할아버지는 그렇게 학비를 보태서 저희 아버지를 대학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제 대학 학비도 대셨죠. 설날이나 추석에 할아버지를 뵈러 가면 간간이 용돈도 주시고 학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저에게 주시기도 했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결코 투기꾼이 아닙니다. 60이 넘으시면서 귀도 잘 안들리시고 무릎과 다리도 아프셨지만, 자기 땅에 성실히 농사를 지으시고 개까지 키우셨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밭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그 모습을 오랫동안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땀으로 저희 아버지도 대학을 가셨고, 할아버지와 제 아버지의 땀으로 저도 대학을 갔습니다. 저는 제 가족의 땀으로 제가 이렇게나 편하게 생활하는 것을 한없이 감사하게 생각하며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정직하고 근면하게 사시던 할아버지의 재산을 강탈해간 LH사에 대해서 저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부양하시고 사랑하셨지만, 대학물먹고 소위 지식인 계층에 올라선 제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너무나 죄스럽고 억울해서 며칠 눈물을 흘렸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37035









 대한민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직접 농사를 하는 농부만 농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지가 개발이 되면 보상금이 크게 나옵니다. 그것 때문에 투기꾼들은 이번 사건에서 땅에다가 온갖 희귀한 나무를 심거나 농사를 짓는 '척' 하며 농지로 등록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 중 1/4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얼마나 바쁜데 상식적으로 농사를 직접 지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한국 농지법은 원칙이 있음에도 예외를 너무 많이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할아버지처럼 정직하게 농사를 지으시는 농부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농지의 가격이 올라서 오히려 실제 농사를 하시는 분들은 땅을 사질 못하십니다. 제가 직접 봐서 아는데 1년 농사해서 얼마 벌지도 못합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일을 해오셨습니다. 지금은 당장 큰 수술을 하셔서 병상에 누워 계시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부지런히 노동을 해 오셨습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regional/yeongnam/2021/03/08/FCYIOPZSAZD5LHZSTMUTQMDM7A/










 한국에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땅이나 건물을 가진 사람들은 안정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토지라는 것이 중요하고, 나라의 근간이자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서울의 집값이 왜 안 잡히고 출산율과 결혼율이 떨어지겠습니까. 큰 권력을 가진 고위 공직자, LH 같은 생각을 하는 놈들이 땅과 건물, 신도시 개발로 장난질을 하니까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 신도시 개발을 추진한 곳에서 이렇게 헤쳐먹었는데, 땅값이 안정되면 그게 비정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사나 고전 소설들을 보면 지주가 소작농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것을 쉽게 보아왔죠. 또는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 같이 소위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이 백성을 수탈했기에 동학 농민 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그런 일이 성행하면서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결국 다른 나라에게 주권까지 빼았겼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저는 크게 분노하였고 앞으로 저와 저희 가족, 그리고 넓게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아서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고, 부정하고 불공정한 일을 하는 놈들만 편안히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땅은 과거부터 국가의 근간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죠. 한국이 이념 전쟁 때문에 반토막이 나며서 우리 민족의 잠재력은 반토막이 아니라 1/10로 줄었습니다.




 미국이 강대국인 이유가 뭘까요? 그 나라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광대한 평야가 한중일의 평야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이 있습니다. 미국은 강과 바다를 통해 대도시가 발달해왔고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 제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 파쇼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군수 물자와 병기를 생산해냈습니다. 미국인이 특별히 천재라서 그런게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민란과 사회 혼란은 토지와 세금 문제로 발생해 왔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부동산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오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온갖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동학농민혁명.

https://namu.wiki/w/%EB%8F%99%ED%95%99%20%EB%86%8D%EB%AF%BC%20%ED%98%81%EB%AA%85?from=%EB%8F%99%ED%95%99%20%EB%86%8D%EB%AF%BC%20%EC%9A%B4%EB%8F%99)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자기가 살 만한 집 한채 못 구해서 전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5평짜리 쪽방에서 간신히 생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인간에게 자신의 집, 자신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존엄성과 인권에 직결됩니다.




 제가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일까요. 이번 부동산 투기 문제는 단순한 '부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국민을 상대로 착취행위를 한 중대한 횡령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자영업자와 청년, 노약자들이 아등바등 오늘 내일하는 동안 국가의 근본을 탈취하는 범죄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깊이 존경합니다. 그 분들은 어떤 요행으로도 재산을 불리지 않았고 근면성실하게 노동을 하며 재산을 모으셨고 전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혜택을 받고서도 이번 일에 대해서 무기력한 것에 대해서 한없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LH 사태의 피해자는 단순히 제 할아버지같은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분노해야할 사건이고, 이 사회에서 어려운 와중에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패배감을 준 심각한 대사기극입니다.




 여태 일평생 고생하면서 사신 저희 할아버지, 아버지께 깊은 존경을 느끼며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저는 비록 미약한 개인이지만 반드시 이번 사건이 해결되는 것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제 부끄러움과 감사함을 갚기로 약속합니다. 이 글을 읽으실 분들께도 참여와 관심을 깊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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