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쥬✨ [979083] · MS 2020 · 쪽지

2021-01-25 01: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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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글1, 달이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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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달빛은 설레게 밝을까, 아니면 어둡게 밝을까. 우울증에 걸린 직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지점이다.

이 지옥같은 현실과 연을 끊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득 찬 빛,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어두움으로 가득찬 빛. 게 중에서 무엇이 더 밝게 보일까. 나란 사람에게.


시도 때도 없이 요동치는 심장소리와, 불안증세. 그것이 위장에 전달이 되어 마침내 뛰어내려서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가 나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현대의학은 그 증세를 ‘공황장애’라 일컫는다.


나의 경우는, 우울증이 공황장애로 번진 것인데, 의학적인 원인은 뇌 속의 호르몬 분비장애 때문이라고 했다. 지속된 스트레스와 슬픔, 젊음이라면 겪게 되는, 아니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실존적 존립에 관한 물음들이 나를 먹여 삼켜서 오는 후유증이다. 


그 배경 속을 둥실둥실 떠 다니는 나란 사람에게 달은 무슨 빛으로 다가오고 있는가. 카마키타 켄상, 당신의 달과는 달리 내 달은 안쓰럽기 그지 없어요.  사랑하는 연인 덕에 그대의 어둠이 걷혔다면, 나는 아직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얼굴을 파묻고 있는 셈이니까.


나의 달은, 어둡고 부끄럽게 빛나고 있네요.


-어떻게, 헤엄쳐 나가야 해? 이 어두운 푸름 속에서...


볼펜을 봤어요. 그런데, 그걸 집어 삼키고 죽고 싶었어.

탁구공을 봤어요. 그런데, 그걸 또 집어 삼키고 싶었어.

아침에 번뜩 눈을 뜬 나를 봤어요. 살 엄두가 나지 않았어.

오늘도, 나는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달이 어두움을벗어던지고 나를 따스히 밝혀줄까. 달래줄까.


여름가을의 쟁쟁한 달빛, 그렇게 힘겨운 오후, 생명 연습을 마치고 나면, 그는 바람과 함께 나를 톡톡 건들이곤 했다. 그 때마다,나는 숲길을 산책하며 그와 얘기를 나누기를 즐겨했고.


-오늘도, 결국 이겨내어 살게 됐군요. 가능하다면, 이 숲의 숨결이 나를 치유해주었으면 해. 물론 이 나무들은, 그리고 당신이란빛은, 나의 아픔 따위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을 테지요. 그야, 내가 나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짊어지게 된 짐이니까. 이건.


-그런데도, 난 당신이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죽기엔, 너무도 무서운 것들이 많아서요. 아직, 어려서 그런가요? 죽음이라는 녀석하고 맞서 싸울 용기는 더 없는 것 같아. 아직은 삶에 대해 그럭저럭 버텨볼 만 한 것 같기도. 


그 때마다 달은 치욕스레 밝았다. 나의 부탁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미 들은 것 같았다.








우울증을 이겨낸 지금, 나는 어떻게 그 어두움을 헤쳐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의학적으로는 운동이 나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나의 감정선에 대한 연속적인 변화의과정은, 딱 하나의 원인을 꼬집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판단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얼떨결로 말하게 된다.


-다시,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라고.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살아왔고, 또 살아왔다는 걸.

그리고, 그 속에서 분명 무엇인가를 변화시켰다는 걸. 그리고 그변화가 달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걸.


겨울 새벽 달밤이 나를 비추는 지금, 나는 쓴다.

달이 아름다워.


2020.1.15, 연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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