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 [905463] · MS 2019 · 쪽지

2021-01-18 17:03:22
조회수 2,241

재밌는거 찾았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5325982

고삼은 자취방(自炊房)에 살았다. 곧장 도서관 밑에 닿으면, 사거리 위에 갓 들어선 CU가 서 있고, 편의점을 향하여 자동문이 열렸는데, 단칸 원룸방은 그 고독함을 더했다. 그러나 고삼은 왜국에서 들여온 애니메이션만 좋아하고, 그의 모(母)가 남의 식당일을 하여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모가 자식의 앞날을 안타까이 여겨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집안의 독자가 평생 수능(大學修學能力試驗)공부를 하지 않으니 애니메이션은 보아 어디에 쓰느냐?"


고삼은 웃으며 대답했다.


"소자 아직 충분히 청춘을 즐기지 못했나이다."


"그럼 차라리 실업계 고등학교로 전학가는 건 어떠하냐?"


"공돌이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찌 하겠습니까?"


"그럼 9급 공무원 준비라도 하는건 어떠하냐?"


"공부는 베이스가 없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애니만 보더니 기껏 '도시요?' 소리만 배웠단 말이냐? 공돌이 일도 못 한다. 편돌이도 못 한다면, 상하차는 못하겠느냐?"


고삼은 보던 애니메이션을 일시정지하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애니메이션 감상으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삼 년인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고삼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대학 게시판(大學揭示板)으로 가서 상주하고 있는 게시판 이용자를 붙들고 물었다.


"누가 한국에서 제일가는 강사요?"


이투수(李投數)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고삼이 곧 이투수의 본가를 찾아갔다. 고삼은 이투수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공부는 도무지 밑천이 없어 그러니 귀사의 프리-패스를 하나 뀌어주기 바랍니다."


이투수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전 과목 프리-패스와 이투수 패드, 교재 따위를 내주었다. 고삼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이투수의 강사와 연구원들이 고삼을 보니 노베이스였다. 국어 지문은 절반도 못 읽고 뒷페이지를 일렬로 찍기 일쑤고, 근의 공식도 몰라 중학수학조차 쩔쩔매며, 할 줄 아는 대화는 하우두유두와 아임파인땡큐뿐이고, 탐구는 아예 지식이 전무했다. 고삼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프리-패스를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이투수 사장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의지와 포부를 대단히 선전하고, 노력을 자랑하면서도 밤새 드라마를 본 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학생은 지식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학식이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공부가 보통것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프리-패스를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고삼은 프리-패스를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은 중고등학생, 대학생은 물론이요 사시생과 공시생들이 모여 면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자리를 잡고 커피한잔을 뽑아 마시며 국수영 공부를 시작했다. 밥도 갈아먹으며 하루 순공 17시간을 찍어 고승덕 공부법을 실천하니, 그 모습이 마치 속세에 유람을 나온 신선을 보는 것 같다 하여 도서관 객들의 간에 소문이자자했다.


금새 시간이 지나 6월 모의평가가 다가왔는데, 여태껏 공부한 재주를 발휘할 기회라 하여 고삼이 시험에 임했다. 국어와 영어, 수학은 일등급이었으나 생명과학-투와 화학-원에서 대거 점수를 잃어 3등급에 들었다.


"여섯달만에 국수영이 일등급에 들었으니,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프리-패스와 패드를 가지고 인터넷 강의를 시청하며 말했다.


"앞으로 다섯달이면 과학탐구 또한 일등급을 받을 수 있으리라.."


고삼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11월이 되었다.

그 또한 고삼의 신분으로 수험장에 들어서니 그 위용이 마치 화웅을 베러 나가는 관운장이라. 당해 수능은 역대급(歷代級) 헬파이어(Hell Fire) 불수능이었으나, 고삼이 여유로이 마킹을 마치고 가채점을 해보니 국어, 수학, 영어를 비롯한 전 과목에서 만점이더라.


고삼은 입시전문가를 만나 말을 물었다.


"한국에 수능 만점자가 갈 마땅한 대학이 있는가?"


"있습지요. 최고의 국립대학인 서울대학, 카이스트나 명문 사립인 연세대학, 고려대학 등이옵니다. 의과대학 또한 추천드리옵나이다. 이들 대학은 학생이 되면 친척 일가의 모임에서 탭댄스를 추고 대학의 교문을 박살낼 수 있다 하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입시전문가가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원서를 내고 수석으로 서울대학 수리과학부에 합격하니, 관악의 풍경이 여태까지와 사뭇 다르게 보이고 들리더라.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학습 전문지 기자 여러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공부를 할 때는 교과서와 EBS뿐이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그대들이 말하는 올바른 교육일 것이다. 지금부터 학습의 비결을 읊을 터이니 잘 받아적어 후대에 널리 알리라."


하고는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을 것, 교과서 위주로 예복습을 할 것 따위의 내용을 일러주니 이에 기자들이 '수능 만점자의 공부법'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어 인터넷 뉴스에 올리더라.


그리고 나자 고삼은 서울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두어달정도 여유가 생기었다. 고삼은 수능 성적표를 꺼내


"이건 이투수에게 갚을 것이다."


고삼이 가서 이투수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이투수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올해 수능을 실패 보지 않았소?"


고삼이 웃으며,


"성적에 의해서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은 당신들 말이오. 수능이 어찌 오덕(五悳)를 행복하게 하겠소?"


하고, 성적표를 이투수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애니메이션 감상을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프리-패스를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변찮은 것이나 메인 페이지에라도 띄워 홍보에 쓰시오."


이투수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장학금을 지급할테니 고삼의 사진을 찍어 홍보에 사용하고 싶다 하였다. 고삼이 잔뜩 역저을 내어,


"나는 히키코모리라 그런것은 할 수가 없소."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이투수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고삼이 원룸촌으로 가서 조그만 자취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편돌이가 CU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원룸이 누구의 집이오?"


"고삼의 집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애니메이션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1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모친이 무척 상심하여 망연자실해 있지요."


이투수는 비로소 그가 현역이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이투수는 고삼에게 CF를 제안했으나, 고삼은 얼굴이 팔린다며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의과대학을 버리고 수리과학부에 갔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과외나 하나씩 잡아주고 연구원 일자리나 하나 주시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이투수는 고삼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투수는 그 때부터 고삼의 과외가 끊겨 더이상 피규어를 사 모을 수 없게 되면 새로운 학생을 소개해주고는 했다. 고삼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학원 강사나 CF등을 제안하면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신작 블루레이를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밤새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이투수가 1년 동안에 어떻게 수능을 만점을 받았는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고삼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수능이란 문제를 풀어 답을 맞추는 것이고, 강의에서는 풀어 답을 맞추는 것을 가르치지 않소. 강의를 보고 따라하면 그만이지요."


"처음에 내가 선뜻 프리-패스를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고삼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학원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만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프리-패스를 빌린 다음에는 그의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하여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게을리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이투수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혹시 다른 이에게 그 풀어 답을 맞추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수는 있을런지요?


이투수는 본래 박 아무개 국회의원(國會議員)과 잘 아는 사이였다. 아무개가 당시 이투수에게 딸아이의 과외를 맡길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이투수가 고삼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박 의원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상종해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딸의 대학을 맡기고 싶군."


밤에 아무개 의원은 운전기사도 다 물리치고 이투수와 딸만을 고삼에게 보냈다. 이투수는 박소저를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고삼을 보고 박소저가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고삼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들고 온 블루레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신작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이투수는 박소저를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고삼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박소저가 방에 들어와도 고삼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박소저가 몸둘 곳을 몰라하며 어진 스승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고삼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등급에 있느냐?"


"국수영사가 56545이옵니다."


"그렇다면 너는 여지것 공부를 한 적이 없다는 말이로구나. 내가 적당한 인강 강사를 골라줄 터이니 페이스북과 오버워치를 계정삭제하고 카카오톡을 지우며 하루도 쉬지않고 완벽하게 커리큘럼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


소저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고삼은 외면하다가, 박소저의 간청을 못 이겨 말을 이었다.


"요즈음에 들어서는 '수시'라는 것 또한 각광받고 있다. 그러면 적어도 중간 기말 시험기간동안 하루에 17시간씩 공부하여 내신만이라도 잘 받을 수 있겠느냐?"


박소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명문 사학이라 불리는 대학들은 지방에 여러 캠퍼스를 두는 법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조금 눈을 낮춰 분캠에 진학하는 것은 어떠하냐?"


박소저가 힘없이 말했다.


"대학생들이 모두 본캠과 분캠을 차별하는데 어느 분캠학생이 떳떳이 본캠 행세를 하고 다니겠습니까?"


고삼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학생이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공부도 안하며 자칭 인문계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사회생활을 페이스북으로 하니 허구한 날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고, 자율학습을 째고 피시방이나 놀러다니니, 대체 무엇을 가지고 학생이라 한단 말인가?

고승덕은 하루 17시간을 공부하기 위해 식사시간을 버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노무현은 고졸의 신분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이제 명문대에 들어가겠다 하면서, 그까짓 페이스북 계정하나를 아끼고 카카오톡을 지우지 못하는가?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명문대에 가고싶은 학생이라 하겠는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라는게 이 모양이란 말이냐. 아무래도 너는 재수를 해야겠구나."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팩트를 찾아서 폭격을 가하려 했다. 박소저는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