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966253] · MS 2020 (수정됨) · 쪽지

2020-11-25 01: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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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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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프다

원체 몸이 튼튼한 편은 아니시긴했지만

내가 어릴 때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셔서 몇년 째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아빠는 원래 금수저였다

부산에서 건설업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작은 동네 하나를

자기가 다 직접 지을만큼 돈도 많았고 회사도 컸다


유학을 준비하고 떠나기 전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때 할아버지는 망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


그때부터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과 친척들의 불행이 시작됐다


엄마와는 이혼하게 되고

나는 할머니집에 아빠랑 같이 살았다

내 옆집에는 승민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 까먹은듯)

혹시 이곳에 그 친구가 있다면 인사라도 한번 하고싶다


내 완전 어린시절 기억은 딱 두개다

하나는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자며 엄마가 캐리어를 잡고

아빠랑 말싸움을 하고

나는 그런 엄마아빠를 문 밖에서 울면서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왕할머니는 아빠편이었나보다

그렇게 엄마랑 떨어져 살았고


또 하나의 기억은 엄마를 만나고나서 아빠랑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창문 밖이 빨갛게 석양이 드리워져 있었고

창문에 기대서 가로등이 날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울면서 바라봤다


이게 내 유년시절 기억의 전부다


다시 우리 가족 얘기로 돌아오자면

언젠진 모르겠지만 엄마와 재결합을 했고

엄마와 아빠와 같이 살던 기억은 없다


다시 아빠로 돌아와서

아빠는 유학을 포기하고 트럭으로 물건도 팔아보고

류 라는 일식 술집? 도 해보고 보험회사도 다녀보고

대리운전도 해보고 별의 별 일을 다 했었다

내가 태어난 달에는 우수 영업사원까지 먹었었다

자랑스러운 우리 아빠


하지만 아빠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다

여기저기 돈을 빌려야만 했고

어떻게든 버티면서 살았어야 했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밤 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기도

다른 취객과 시비가 붙기도 했었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너무 함들어했고

그때부터 시댁 스트레스와 아빠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내가 6살 쯤 되던 시기에

우리 엄마아빠는 강원도로 떠났다

난 할머니집에서 날 불러주길 기다렸고

엄마아빠는 농사일같은 것도 찾아보면서

먼저 강원도로 떠난 보험회사 입사동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엄마아빠가 처음 강원도로가서 수중에 30만원으로

밥 먹을 돈도 없고 배추 뽑는 일은 너무 힘들고

배는 고파서 사먹은게 에이스다


그 목 맥히는걸 음료수도 없이 둘이서 먹었다고 했다

난 눈물 젖은 에이스라는 그 이야기를 중학교 땐가 들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

말을 못하시는 양복점 할아버지였다

우린 그 가족에게 도움을 받아서 창고급으로 낡은 단칸방에서

지낼 수 있게 됐고 그때 나도 강원도로 올라갔다


아빠는 그때부터 연탄 배달을 시작했다

엄마는 정확히는 몰라도 그때부터 아팠던 것 같다 


오늘은 졸리니까 내일 마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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