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노예자랑 · 956435 · 20/11/24 01:36 · MS 2020

    1. 지성적 덕은 교육으로 갖출 수 있는 것
    2. 지성적 덕에는 철학적 지혜와 실천적 지혜가 있음
    3. 철학적 지혜 : 최상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음
    실천적 지혜 : 중용을 인식
    4. 품성적 덕은 습관화로 갖출 수 있는 것
    5. 실천적 지혜를 통해 인식한 중용을 반복적으로 실천
    6. 짜잔 품성적 덕 형성

  • 이별길 · 974109 · 20/11/24 01:36 · MS 2020

    감사합니다! 덕코 넣어드릴게요!

  • 전국노예자랑 · 956435 · 20/11/24 01:37 · MS 2020

    냠냠 ㅎㅎㅎㅎ

  • 이별길 · 974109 · 20/11/24 01:40 · MS 2020

    2천덕 넣었어요!!

  • 전국노예자랑 · 956435 · 20/11/24 01:42 · MS 2020

    늘 행복하세요

  • 문제깎는선변 · 892689 · 20/11/24 01:41 · MS 2019

    어따 윗분이 깔쌈하게 정리 잘 하셨네

  • SyHfD5kEN80CQM · 753526 · 20/11/24 02:05 · MS 2017 (수정됨)

    모든 행동에 중용이 있는 게 아니며 절제는 그 자체로 선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왜?
    이성의 안내를 받아야하기 때문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스승들과 달리 현실적인 인간이어서 안다고 모든 인간이 바로 행동한다 보지 않았다
    그는 아마 엔팁이었을지도
    이데아를 부정하고 이데아계를 부정했다
    지 스승이 말한 선의 이데아 또한 추락시켰으며 대신 최고선을 얘기했는데 바로 행복이다

    현대로 와서 덕윤리에선 최고선이 환경과 맥락에 따라 바뀐다지만 아리는그냥 행복이 짱이다
    이는 국가 안에서만 이뤄지는 선이고 따라서 국가는 최고의 공동체며 최고선이다
    또 국가를 벗어난 존재는 기대할 수 없기에 국가는 자족적 공동체이며 따라서 본성에 의해 존재하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누가 만든 게 아닌 존재가 된다

    다시 돌아가 일원론의 얘기를 하자면
    아리는 의지와 감정을 중요시했다 이는 당연하게 보이는데 이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려는 마음이 없음 안하는 게 인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중용은 행동과 감정에 관련된 덕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성의 조정을 받아야하는 바
    스승이 덕이라고 명시한 절제 또한 악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말했고 이는 칸트와 비교되어 출제된다
    칸트 또한 수 많은 덕성과 자질이 그 자체로 선하지 않다 보았는데 살인마의 침착함과 거짓말쟁이의 유창함 등이 그예시다

    따라서 칸트는 그 자체로 선한 건 모든 걸 선으로 방향시킬 수 있는 선의지 뿐이라 한 것이다

  • SyHfD5kEN80CQM · 753526 · 20/11/24 02:07 · MS 2017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물려받았는데 종교적 덕과 도덕적 덕을 얘기한다
    품덕과 지덕은 그 자체로 충분하지 못하고 종교적 덕의 예비단계라고 야기한다
    얘도 엔팁임이 틀림없다

    이성을 중시하나 신앙이 역시 그 위다
    이해할 수 없는 계시더라도 따라야하지만 신은 증명될 수 있기에 이성의 역할 또한 크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