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門不出 [975577] · MS 2020 · 쪽지

2020-10-31 22: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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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자극을 위한 발상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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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세 줄 요약

1. 공부를 안 했을 때 생기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적는다. 

2. 시나리오를 잘 보이는 곳에 써서 붙여놓는다.

3.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려 하면 내가 쓴 것을 읽으면서 '아 이러다가는 진짜 j되겠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고 공부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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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라면 생활과 윤리 시간에 요나스의 '공포의 발견술'을 배운다. '공포의 발견술'이란 과학 기술에 의해 초래되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여 이 예견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공부에 있어서도 이러한 태도는 굉장히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주로 R=VD, 희망, 가능성 등을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사에 비관적이라면 그 사람은 벌써 자신의 미래가 실패라고 단정짓고 들어가버린 사람이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수험생들은 단순히 꿈만 꾼다. SKY 의치한을 외치면서 너무 낙관적인 나머지 공부를 안 하고도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또 어떤 수험생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나태함에 찌들고 타성에 젖어 굉장히 효율이 낮은 공부를 하게 된다. 특히 수능이 막바지가 되면 거짓말같이 하나 둘 풀어지고 공부를 놓게 된다. 그리고 늦은 밤에 자신이 오늘 하루를 망쳤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큰 자책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변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 불안감이 막연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 j됐다'라고만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j됐는지 그들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써볼까 한다. 본인이 현역 수시충이므로 현역 수시충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았다.


1. 수시 6장이 설마 다 떨어지겠냐는 생각과 함께 정시 공부를 아예 손에서 놓았고, 수능 점수로는 인서울이 힘들게 나온다. 


2. 수시 1차에서 내 내신점수면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몇몇 대학에서 불합격한다. (실제 작년 우리 학교 사례 기반)


3. 수능 후 면접을 보는 대학교 두 곳이 1차에 합격한다. 수능도 망쳤기 때문에 이번 면접에서 떨어진다면 인서울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한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면접장에서 말이 완전히 꼬여버린다.


4. 면접 불합격이 확정되는 날, 우리 집은 정말 조용하다. 부모님은 믿고 있던 아들의 처참한 결과에 당장이라도 죽고 싶을만큼 속상하고 분통해하신다. 물론 그래도 날 사랑하시겠지만, 가장 큰 자랑거리였던 아들을 이제는 남들 앞에서 언급하기도 창피하실 것이다. 한동안 집은 비참할 정도로 조용하고 우울하다.


5. 친척들을 만나는게 쪽팔린다. 그들 중 일부는 나의 이런 불행을 기뻐할 것이다. 


6. 학교 친구들은 나를 정말 크게 비웃는다. 2년반동안 높은 내신을 유지하면서 으스대더니 꼴 좋다며 뒤에서 조롱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과는 연이 아예 끊길 것이다. 졸업식에도 창피해서 못 간다.


7. sns에서 나보다 낮은 내신이었는데 나보다 높은 대학교를 합격하고 졸업사진과 대학교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비참함을 다시금 느낀다.


8. 자존감이 떨어진 채 폐인과 같은 삶을 산다.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다'라는 생각이 뿌리박힌 채 살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어떤 삶을 살든지 도전을 꺼리게 되고 이로 인해 인생의 좋은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 세계적인 대부호가 되겠다는 꿈이나 빈민층을 기아로부터 구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경제학자가 되겠다는 등의 원대한 꿈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저 중소기업의 월급쟁이로서 살아갈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9. 재수를 한다. 반백년을 넘게 사신 부모님은 나 때문에 고생을 정말 많이 하신다. 


10. 코로나가 터져서 재수학원 등원이 어려워진다면 독재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내 의지력을 고려했을 때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망할 것이다. 3수 4수 5수.. 쌓여갈 수록 나는 피폐해지고 부모님과의 갈등은 깊어진다. 


11. 결국 포기하고 겨우 인서울에서 합격한 대학의 하위과에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한다. 조별 과제는 내가 떠맡게 되고, 인맥은 커녕 제대로 된 친구도 만들지 못한다.


12. 지금 맘에 드는 이성과 연애를 하지 못한다. 아예 인연이 끊어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연애가 힘들어진다. 그렇게 점점 고립된 인생을 살게 된다.


13. 인간관계도, 공부도, 인생도 답이 안 보인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한 때는 고등학교에서 전교1등도 하고 당연히 서울대 갈 학생이라고 촉망받던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자살한다.


물론 과장된 시나리오이다. 재수를 하더라도 나 자신을 믿고 극복해내서 떳떳한 결과를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 동아리 두 개에서 모두 떨어진 경험을 기억한다. 그 때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내가 느꼈던 굴욕을 기억한다. 아직까지도 3년 내내 나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불과 몇 달전만 해도 날 떨어트린 선배라는 작자들을 저주했다. 아직까지도 3년 전의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 


기껏 동아리 합격 여부가지고도 3년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데,


과연 내가 대학교에서 떨어졌을 때 의연하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 대학교로 인생이 거의 결정되다시피 하는데?




처음엔 가볍게 쓰자고 시작한 것이 좀 많이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모두 이번 해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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