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G [978175] · MS 2020 · 쪽지

2020-09-27 09: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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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71에서 중앙대까지의 기록-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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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수기는 매주 일요일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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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이 끝나고 학교 계단을 내려오자, 몸이 바람 빠진 풍선마냥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6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의 반동을 수반하는 법이다. 머리는 카페인을 마신 것처럼 졸리지는 않고 멀쩡하게 돌아가고, 대신에 몸은 완전히 진이 빠져 술에 취한 것처럼 행동이 느려진다. 어차피 별로 할 것도 없었고, 바로 집에 갈 생각도 없었기에 교문 앞에 서서 제2외국어를 보는 친구들을 기다렸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바로 앞에는 방송용 카메라로 교문에서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을 촬영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혹시 내가 지금 뉴스에 나오는건가...‘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한 40분쯤 서서 기다리자, 본격적으로 수능을 본 수험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간도 남아돌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줄이 꽉꽉 들어차, 친구들과 그냥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친구들과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은 그것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이다. 수능이 끝난 날 시간이 남아돈다면 한 번 해보는 것을 추천할 정도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산하게 머리카락을 지나가고, 춥기는커녕 정신이 맑아지면서 시원한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1년 동안의 일련의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생각난다. 수능을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건, 버스를 타건 지하철을 타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 것이다. 아쉬운 생각, 후련한 생각, 앞으로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 등,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 적어도 후회만은 하지 말자. 그럼 적어도 당신의 지난 1년이 실패한 것은 아닐 테니.


 수능이 끝났으니 이제 스토브리그를 준비해야 할 시기다. 주변의 많은 것이 변화한다. 돌아간 고등학교는 선생님들이 상담하느라 바쁘고, 수시로 이미 붙은 친구들 두세 명 정도는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도 오지 않은 채 그대로 증발한다. 슬슬 논술학원을 끊으며 논술을 준비하고, 인터넷 모의신청을 돌려보며, 돈을 주고 모의 대학 상담을 받기도 한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성적표가 나왔다. 등급은 31314(국영수사탐순). 6평 9평때보다는 조금 오른 성적이었는데,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정시로 각각 한양대 에리카, 경희대 국제캠퍼스, 숭실대를 썼고, 전부 떨어졌다. 논술도 광탈의 연속이었고, 고대 논술은 늦잠 자서 시험도 못 보러 갔다. 모의 신청 결과 한양대 에리카는 안정, 경희대 국캠은 적정, 숭실대는 위험 등급이었는데 에리카까지 싸그리 떨어졌다는 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수해봤자 성공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냥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대학 하나만 붙으면 바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갈 대학이 하나도 없었으니 남은 길은 재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3 시절이 끝났습니다. 돌아본 고3 시절은 정말 실패의 연속이었죠. 제대로 된 공부 방법도 없었고, 제대로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니 성적을 잘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가 자존심 하나는 원래부터 낮은 인간이라 좀 신랄하고 길게 적힌 고3 시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재수 시절로, 2016년으로 넘어갑니다. 이런 인생역전 수기들을 보면 고3때 밑바닥을 기던 학생이 재수 시절에 사람이 바뀌어서 어찌저찌했다더라 뭐 이런 내용들이 많으니 이제 재수 시절부터 어떻게 제가 바뀌어 나가는지를 기대하실 수도 있는데요, 참고로 제목에 있는 전설의 53471등급은 제가 재수시절에 받았던 점수였습니다. 재수 시절에도 처참했던 때가 훨씬 많았죠. 재수 시절은 고3때보다 훨씬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글이 좀 더 자세해지고 본격적으로 제가 어떻게 성적을 올렸는지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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