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고 조경민 [875628]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0-09-19 15: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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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 만흥 38번 해설 - '관념적'은 출제 가능할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32237314

들어가기에 앞서, '관념적'이 수능 국어/언어에 몇 번 나왔는지 봅시다.


'고정 관념'의 관념이라든가, '관념'이 단순한 '생각'을 칭하는 경우는 제외했습니다.




18 6월 '관념적 덕목' (틀린 선지, '관념적 덕목'은 맞았음)

17 수능 '관념적으로 서술' (틀린 선지)

16 9월 A형 '[가]는 관념적인 문제를,[나]는 실제적인 문제를' (틀린 선지)

14 9월 B형 '현실에 대한 관념적 인식' (정답 선지)

14 9월 A형 '공감각적 심상을 통해 관념적인 대상을 묘사' (틀린 선지)

12 수능(비문학) '논리철학논고'는 기존의 철학자들이 다루었던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해 관념적으로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틀린 선지)

09 수능 '㉠은 사실의 기술이, ㉡은 관념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틀린 선지)




맞는 선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또, '공간'에 대해 관념적이라고 칭한 적도 없죠.


9평 38번에 '경험적 성격과 연결된 공간', '관념적 성격과 연결된 공간'이라는 선지가 맞게 나온 것이


여러모로 이례적이긴 하죠.


다만 제 생각을 밝히자면


'관념적'은 충분히 선지로 나올만 하다.


그러나, 수능에 나온다면 아마 정답 선지로는 안 나올 것 같다.


요 정도가 되겠네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이 글에서는 위에 나온 사례 몇 개만 가지고 '관념적'의 의미를 잡아보고, 38번 해설하겠습니다.


글이 길지만 어렵진 않습니다. 집중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16 9월 A형 



정답 : 5번


봐야할 것은 4번 선지입니다. 틀렸죠, 왜 틀렸을까요?


[가]는 동편의 이웃에게 쟁기를 빌리고, 서편에서 호미를 빌리고 씨앗 마련하고...


굉장히 구체적인, 또 현실적인 행동이 드러납니다.


이외에도 봄날이라는 시간적 배경도 주었고, '춥고 주린 식구'라는 매우 현실적인 소재가 나옵니다.


모로 봐도 '관념적'이진 않습니다. 관념적이라 함은 구체성이 낮고, 포괄성이 높아야 합니다.


또, 현실의 명확한 요소보다는 다소 추상적인 소재여야 합니다.


이 문제에서 한 가지 더 눈여겨 볼 점은, 2번 선지에 '추상적 소재'라는 부분입니다.


이번 2021 9평 1번에 경험적, 관념적이 나오고 2번 선지에는 뭐가 나왔죠?


구체성, 추상성이 나왔습니다. '관념'에 대해 판단하려면 '추상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평가원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관념적'이 맞으려면 어떤 서술이 있어야 할까요?


14 9월 B형입니다.




최인훈의 광장이죠.


주어진 부분에서 뭔가 구체적이고, 삶과 관련된 강한 경험성이 드러나나요?


전혀 아니죠. 표현도 시적이고, '죽음'에 대한 얘기라든지, 추상성이 강합니다.


이때 이번 9평과 같이 이례적으로 



2번 선지가 맞는 선지로 나왔습니다.


인물의 의식과 내면과 결부될수록 관념성은 커지고, 경험과 객관적 사실에 의존할수록 관념성은 떨어집니다.






비문학에서도, 그리고 수능에서도 이런 '관념성'은 문제로 나왔습니다.


12 수능입니다.





정답은 4번이었습니다. '관념적'은 5번에서 틀린 선지로 나왔습니다. 



지문도 해설할 가지가 있는 것이지만 내용 몇 개만 보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계 속에 실재하는 대상을 얘기하자고 했는데,


<보기>에서 그는 자신의 책도 '말할 수 없는 것'='의미 없는 말'이라고 말했죠.


왜냐? 그는 '논리적 그림'을 말했는데,


논리적 그림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이 될 수 있는 '논리적 가능성'이고,


이는 경험적 세계와 언어의 '추상적' 관계를 드러낸 것이죠.


(제가 관심있는 분야라 TMI 길게 풀 수 있지만... 말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그의 설명은 기존의 철학이 가지고 있던 추상성, '관념'을 비판한 것이기에


5번 선지는 맞을 수 없고,


그럼에도 그의 서술 역시 '논리'라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사용하기에


다소의 관념성을 지닌 것이죠.


이해가 덜 된 채로 이 문제를 푼다면 3번과 4번, 5번이 같은 얘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만흥'을 볼까요?



'산수 간' '바위 아래'에 '띠집'을 짓는답니다.


<제 1수>의 '산수 간'은 바위, 띠집과의 공간적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상당한 구체성이 드러납니다.


다만 <제 6수>의 '강산'은 어떤가요?


앞서 나온 '산수 간', '바위', '띠집', '먼 뫼' 등의 장소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여기서의 강산은 '자연 일반' 또는 '국가, 사회'를 뜻하는 것인데,


이렇게 범위가 커질수록 추상성은 강화되고,


애초에 '님군 은혜' 덕분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실제적인 얘기랑은 많이 동떨어져 있잖아요.


맥락을 통해 '강산'을 파악하자면 '임금님 은혜 덕분에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아닌 추상적인 범위로 파악하는 것이 맞습니다.





'관념적'이 사설틱하다는 얘기도 이해는 갑니다만


그렇게 판단하시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실 만한 부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ps.1 이항대립에 대해 잠깐 얘기하겠습니다. 관념은 흔히 경험적, 구체적, 실재와 구분됩니다.


이런 '관념'은, 아까 '강산'이 '바위'나 띠집'을 포함했듯


구체적인 대상, 관념적이지 않은 것들을 묶어서 이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항대립을 외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가령 저는 거시독해 칼럼에서(https://orbi.kr/00031467438)


11수능을 예로 들며 예술의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을 대비했고,


이것이 이번 9평에도 출제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미학에서 형식과 내용을 구분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관념'이 '경험'과 이항대립쌍이라는 점은 알면 좋지만


이것 역시도 지문 안에서 주어진 내용에 따라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항대립은 지문 안에서, 문장 안에서만 판단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제 해설을 보시면 알 수 있듯 '만흥' 38번 문제는 지문 안에서 이항대립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관념vs실재라는 느낌을 알아야 한다고 가정한 문제들도 기출에 있었죠.


거시 독해 능력과, 문학 비문학에 대한 누적된 경험 모두가 필요해 보입니다.





ps.2 저는 이번 문학 문제 퀄리티 만족스러웠습니다.


비문학 행정입법 지문 해설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해설, 배워갈 부분이 많은 해설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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