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고 조경민 [875628]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0-07-16 06:45:58
조회수 2,039

좋아서 쓰는 시 해설 - 15 수능 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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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해설은 저의 순수한 뇌피셜이며

수능 대비보다는 그냥 문학 자체에 대해 탐구한 글로서

수험생들은 이렇게 해석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냥 아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하면서

재미로만 보십쇼

이건 이렇게 읽는게 맞을거같은데요? 류의 댓글들 환영합니다.






정지용은 1914년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지만,


한국의 수많은 시인들이 그렇듯 '삼월 삼짇날', '구성동' 등의 시에서 불교적 심상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 자연과 시적 자아의 관계 역시, 불교적 자연관에 비추어 볼 수 있다.


시를 혼자 쭉 읽어 본 후, 한 연씩 떼어 읽어보자.




해ㅅ살 피여

이윽한 후,




4-5연을 보고 시적 감각이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았겠지만,


시의 공간은 전날 비가 와서, 처마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날 비가 몰아쳤음에도, 어느새 아침이 되어 해가 하늘에 비추는 모습.




머흘 머흘

골을 옮기는 구름.




비가 언제 왔냐는 듯, 구름은 유유히 흘러간다.




길경 꽃봉오리

흔들려 씻기우고,




꽃봉오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전날 자신의 위에 내리앉은 빗방울은 빛을 발한다.




차돌부리

촉 촉 죽순 돋듯,


물 소리에

이가 시리다.




귀에 들리는 것은 차돌에 떨어지는 물 소리뿐.


떨어지는 물방울은 죽순이 돋는 상승의 이미지로 순환을 이룬다.





앉음새 갈히여

양지 쪽에 쪼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가운데, 화자의 모습은 6연에서 처음으로 드러난다.


'쪼그린다'는 단어는 어떤 상황에 쓰는 것일까?


주어진 자리가 없을 때, 자신이 부끄러운 상황에서 쪼그리는 것 아닌가?


전날 몰아친 비에도 평온한 자연의 모습,


그 안에 화자의 자리는 없다.


마지막 두 연에서 인간과 자연은 확연히 대비된다.




서러운 새 되어

흰 밥알을 쫏다.



결국 화자는 '서러운 새'이다.


아침을 먹으며, 창 밖에 보이는 구름, 고요히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를 들으며


한낱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자각하는 모습,


'밥알', 생계를 쫓으며 세상의 온갖 번뇌를 짊어져야하는,


앞서 표현된 무심하고도 초월적인 자연과는 대비되는 서러운 존재의 모습이다.


글에서 처음 밝혔듯이, 불교에서 바라보는 자연-인간의 대립구도 없이는


이 시를 해석하기 힘들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시는 아무나 쓰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어 몇 개로 시의 공간과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능력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철학과 감정을 언어 그 자체보다 더 잘 전달하는 것.







여담으로, 나의 해석이 문학계 주류의 것은 아니지만


15 수능 당시 <보기>에서 자연을 초월과 은둔의 함축으로 본 것은


아마 출제자가 나와 비슷하게 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다시금 말하지만


현재 수능 현대시는 심상과 은유에 대해 제대로 물어보지 않으므로


절대 이러한 해설을 지향하여 공부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재미로 종종 시 해설 써서 올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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