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황T(국어의기술) [27444] · MS 2003 (수정됨) · 쪽지

2020-04-27 18: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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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평가 독서 출제오류(복수정답) 발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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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글을 읽기 귀찮다면 위 강의영상(전기추1 47강)을 봐도 됩니다!






모의평가 독서 출제오류(복수정답)
- 2007학년도 6월 모의평가 33번



1. 들어가는 말

안녕하세요. 이해황입니다. 참고서 저자로 12년 간 지내다가, 작년에 오르비 대표님 제안으로 오르비클래스에 데뷔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나 지났네요.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돌이켜보니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몰랐는데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강의를 시작한 덕분에, 기출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며 새로운 시야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출제오류도 몇 개 새롭게 발견했고요.


[정답없음] 2006년 입법고시 PSAT 언어논리 32번

[지문오류] 2006년 견습직원선발 PSAT 언어논리 18번

[복수정답] 2009년 PSAT 언어논리 19번

[복수정답] 2009학년도 MEET 언어추론 21번 

[지문오류] 2017학년도 수능 국어영역 16~20번 ‘콰인 총체주의’

[출제오류] 2018학년도 LEET 추리논증 33번

[복수정답] 2019학년도 수능국어 42번 탐구


그리고 저번 주, 전기추1(전개년 기출분석의 추월차선1) 강의를 찍고 편집하다가 200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중 출제오류 문항을 발견했습니다. 출제기관에서 이의제기에 대한 답변자료까지 제공했던 터라, 오류가 있을 거라 의심해보지 못했던 문항인데... 의문이 남지 않는 강의를 하기 위해 낯선 시각으로 살펴보니, 논리적 비약이 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국논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신 교수님께 검토를 부탁드렸고, 아래와 같은 취지로 답변을 받았습니다. 




배우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가르치시는 분들에게도 의미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전기추1에 올리는 것과 더불어, 전체공개로 공유하려고 합니다.


※ 이 문항뿐만 아니라, 위 출제오류 링크들도 전부 논리학 전공 교수님들께 검토를 받은 내용입니다. 고등학생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썼으니 읽어보면 그 자체로 좋은 공부가 될 겁니다. :)








2. 출제오류 문항과 평가원 답변


[지문]

  어느 공장에서 길이가 7미터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하자. 이때 가장 이상적인 제품의 길이는 7미터이다. 하지만 아무리 공정이 안정되고 설비가 우수하다 하더라도 생산된 모든 제품의 길이가 하나같이 7미터가 되게 하는 것은 어렵고, 7미터를 중심으로 약간씩 오차를 갖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제품의 품질 특성값은 평균을 중심으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특성값이 평균에서 멀리 떨어진 제품일수록 생산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든다. 여기서 품질 특성값들이 그 평균에서 떨어져 흩어져 있는 정도를 산포도라고 하며, 산포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표준 편차를 이용한다. 시그마(σ)는 표준 편차를 나타내는 기호로 그 값이 작다는 것은 평균을 중심으로 품질 특성값이 덜 흩어져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생산된 제품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균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제품에는 나름대로의 규격이 있는데 이 규격은 일반적으로 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으로 주어진다. 규격을 벗어나는 제품은 모두 불량품이 된다. 왼편의 그림처럼 두 공정 A, B에서 생산된 제품들의 품질 특성값 평균이 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의 중간인 목표값에 모두 일치하였다고 가정하자. A공정에서 생산된 제품은 산포도가 작아서 규격을 벗어나는 것이 거의 없으나, B공정에서 생산된 제품은 산포도가 커서 규격을 벗어나는 불량품이 발생하고 있다. 평균에서 규격 하한 혹은 규격 상한까지의 거리를 시그마의 배수로 표현할 때, A공정은 시그마가 작아 그 배수가 큰 반면, B공정은 시그마가 커서 A공정에 비해 그 배수는 작다. 이와 같이 평균에서 규격 하한 혹은 규격 상한까지의 거리가 시그마의 몇 배가 되느냐에 따라 불량률이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한 회사가 천명한 6시그마 품질 향상 계획은 기본적으로 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이 제품의 규격 평균으로부터 각각 6시그마의 거리에 위치하도록 공정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수준은 10억 개 중에서 2개만이 불량인 것으로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기계나 원자재의 특성, 작업 환경 등의 원인에 의하여 품질 특성값의 평균이 목표값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고 대략 ±1.5시그마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6시그마 수준이 성취되면 불량률은 100만 개 중에서 3.4개 이하로 관리될 수 있게 된다. 이 수치도 충분히 작은 값이기 때문에 6시그마 수준은 새로운 품질 기준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통계적 개념인 6시그마를 조직이 도달해야 하는 품질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최근에 널리 보급되고 있는 6시그마 경영의 출발점이다. 6시그마는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6시그마 경영은 아주 적은 불량에 대해서도 그것의 발생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활동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특정한 공정을 바꾸는 것처럼 부분적인 처방보다는 주로 시스템 자체를 개선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데, 필요하다면 6시그마 수준을 달성하는 데 적합하도록 아예 시스템 전체를 새로 설계하기도 한다. 6시그마를 도입한 세계적인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품질 문제로 야기되는 비용이 감소하였으며,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개선되었고, 고객 만족도가 향상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문제]

33. 위 글의 내용으로 알 수 없는 것은?

②공정의 목표값과 품질 특성값의 평균은 서로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⑤평균에서 규격 상한까지의 거리가 표준 편차의 6배이면 공정은 6시그마 상태에 있다.



[출제기관 공식 답변]

⑤: 시그마 수준의 개념과 원리에 대한 설명은 두 번째 문단에 있습니다. “평균에서 규격 하한 혹은 규격 상한까지의 거리를 시그마의 배수로 표현할 때”, “평균에서 규격 하한 혹은 규격 상한까지의 거리가 시그마의 몇 배가 되느냐”라고 하여 ‘규격 하한 혹은 규격 상한’을 두 차례나 언급하면서 시그마 수준의 개념이 규격의 어느 한 편과 관련이 있음을 밝혔기 때문에(즉 AND의 개념이 아니라 OR의 개념임을 밝혔기 때문에) 답지 ⑤의 진술이 타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3. ⑤가 복수정답인 이유

당시 ②만 정답으로 발표되었으나, ⑤도 적절하지 않으므로 복수정답으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두 가지 포인트를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 and와 or

A or B로부터 A and B를 추론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예를 들어,  “짜장면이 맛있거나(or) 탕수육이 맛있다”가 참이라고 해도, “짜장면이 맛있고(and) 탕수육이 맛있다”를 추론할 수는 없습니다. 짜장면만 맛있고, 탕수육은 맛없을 수 있으니까요.


반면, A and B로부터 A or B를 추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합니다. “짜장면이 맛있고(and) 탕수육이 맛있다”가 참이라면, 이로부터 “짜장면이 맛있거나(or) 탕수육이 맛있다”가 참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2) 조건문

“A이면 B이다”로부터 (A가 참인지 확인하지 않고서) B가 참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예를 들어, “이해황이 로또 1등 당첨되면, 이해황은 1억을 기부한다”로부터 무작정 “이해황은 1억을 기부한다”를 추론하면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전에 국어실력 상/중/하 테스트!에서도 자세히 소개한 적 있습니다.)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⑤가 적절하지 않음을 논증해보겠습니다. 


먼저, 조건문 ⑤의 뒷부분 ‘공정은 6시그마 상태에 있다.’는 3문단의 “6시그마 품질 향상 계획은 기본적으로 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이 제품의 규격 평균으로부터 각각 6시그마의 거리에 위치하도록 공정을 관리하겠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규격 하한이 제품의 규격 평균으로부터 각각 6시그마의 거리에 위치한다’를 하한으로, ‘규격 상한이 제품의 규격 평균으로부터 6시그마의 거리에 위치한다’를 상한으로 기호화하면, ⑤는 다음과 같이 기호화됩니다.


상한 → ( 상한 and 하한 )


이때 ⑤의 역 “공정이 6시그마 상태에 있다면, 평균에서 규격 상한까지의 거리가 표준 편차의 6배이다.”는 참이지만, ⑤는 반드시 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출제기관에 제시한 정답의 근거는, “제품들의 품질 특성값 평균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의 중간목표값에 모두 일치하였다고 가정”했을 때 성립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평균=목표값이 성립하고 동시에 상한이라면, (이때 평균은 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하한도 자동으로 성립합니다. 이를 조건문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평균=목표값 and 상한 ) → ( 상한 and 하한 )


그런데 ‘A이고 B이면, C이다’는 ‘A일 때, B이면 C이다’와 논리적으로 동등하므로, 위 조건문은 아래 조건문과 논리적으로 동등합니다. 


평균=목표값 → ( 상한 → ( 상한 and 하한 ) )


이러한 조건문 변환은 일상어 감각으로도 쉽게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수능을 잘 치고 원서접수를 잘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다’는 ‘수능을 잘 쳤을 때, 원서접수를 잘한다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다’와 같은 말입니다.


이때 평균=목표값에 대한 언급 없다면, ⑤ 상한 → ( 상한 and 하한 )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이해황이 로또 1등 당첨되면, 이해황은 1억을 기부한다”로부터 “이해황은 1억을 기부한다”를 단정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C공정이 아주 조악해서, 평균이 목표값으로부터 한참 떨어져있지만, 우연히도 평균에서 규격 상한까지의 거리가 표준 편차의 6배라고 해봅시다.



이때 C 공정이 6시그마 상태에 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⑤는 옳지 않은 추론입니다.


덧: 지문에 “품질 특성값의 평균이 목표값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고 대략 ±1.5시그마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를 근거로, C공정과 같은 사례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이 제품의 규격 평균으로부터 각각 6시그마의 거리에 위치하도록 공정을 관리”할 때 그럴 수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⑤에는 그런 전제가 없습니다.








4. 출제기관 답변자료에 대한 비판

출제기관에 제시한 정답의 근거는, “제품들의 품질 특성값 평균규격 하한과 규격 상한의 중간목표값에 모두 일치하였다고 가정”했을 때 성립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평균=목표값이 성립하고 동시에 상한이라면, 하한도 자동으로 성립합니다. 이런 이유로 지문의 필자는 ‘규격 상한 혹은(or) 규격 하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A and B로부터 A or B를 추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니까요.


그런데 출제기관은 엉뚱하게도, A or B로부터 거꾸로 A and B를 정당화하는 셈이므로, 즉 ( 상한 or  하한 ) → ( 상한 and 하한 )을 주장하므로 논리적 비약입니다.








5. 나오는 말

정답 찾기는 쉬운 문제였습니다. ⑤번에 의문을 가졌다 하더라도, 당시 시험장에서 쉽게들 ②를 골랐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 실력향상을 위해 /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수험생 여러분은, 보다 치밀하게 고민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정답에 끼워맞추는 식으로 '대충' 공부하면, 자칫 판단기준오염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배워야 할 것은 ‘평가원이 틀린적 있으니 믿지 말아야지!’라는 불신이 아니라, (평가원조차도 따를 수밖에 없는) 논리(학)적 사고입니다. 이 문항은 “A이면 B이다”로부터 B가 참이라고 추론하는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오류를 적절하지 않은 추론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항은 수능/PSAT/LEET에 꾸준히 있어왔으므로(예: 2014년 PSAT 언어논리 35번 등), 수험생이라면 잘 정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덧붙여서 이 문항을 분석하며 저 스스로도 많이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책에서 다룬 적 있고, 당시 출제기관 해설을 복붙했었습니다. 출제기관 해설이 틀릴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타성에 젖은 태도였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해설만 하자는 제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롭게 다짐해봅니다. 앞으로 강의하거나 책을 쓸 때, 온전히 제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만을 제공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수강생 분들이 공부 후에 찝찝한 의문이 남지 않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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