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청의미 [447559]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20-03-13 22: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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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막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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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막장 (1) : https://orbi.kr/00028506167


[나의 20대는, 모든 게 금방 다 이루어질 것 같은 어떤 기대감이, 어떤 희망이, 순식간에 잿빛같은 절망감.

살아야 되나 죽어야 되나, 즉 삶과 죽음의 문제로 다가왔죠.]


예상치도 못한 곳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맨 처음 고민했었던 것은

어떻게 학비를 벌고 먹고 살아야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집에서는 여러군데에서 빚을 내서 내 생활비와 기숙사비를 마련했었고

나는 일을 반드시 해야했었다. 그래서 과외를 구했었다.

전단지도 돌리고, 오르비에도 올리고.. 뭐 그랬었다.


첫 과외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의 과외였고 나는 소인수분해를 왜 해야하는지 설명을 잘 못했었다.

(물론 지금은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와 연결되어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약분과 통분에 연결됨을 설명할 수 있다.)

첫날 과외는 하루를 끝으로 짤렸다.


학교 입학 후 3월 30일정도에는 내 잔액이 2만원정도였고, 부모님께 손을 벌려도 줄 수 있는 용돈이 없다고 하셨다.

겨우 4월 초에 과외를 구해서 진행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여러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내 수업에 독학으로 쌓은 개념이라는 테마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금전적으로 여유로워지고, 나는 내 이야기를 수기로 쓰게 되었다.

공신을 비롯하여 수많은 포털에서 멘토로써 활동하게 되었다. 그때가 입학한 1학년때 겨울이었다.


2학년때 가을에는 우연히도 공신의 방송에 나가게되었다.

그 이후부터 뭐.. 대충 멘토로 활동하게 되었고, 여러가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이후로부터 내 직업은 대학생도, 과외선생도 아닌 멘토였다.


나는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나는 그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더 배우고 싶어서 공부했고, 더 배울 수 있는 곳에 입학한 것 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왜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으셨을까.

여러가지로 다 몰라서. 공부하고싶었다. 많은 것들을 알고싶었다. 

그래서 공부했지마는 과연 내가 이러한 의문들을 알아낼 수 있을까.


그렇게 공부하면, 왜 나의 가족이 종교와 가난으로 인해 큰 갈등을 겪어야했는지.

왜 나는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지.. 우리는 왜 이렇게 싸우고 폭언과 폭력을 서로 가하고 겪고

나는 가출을 했어야 했는지 알 수 있을까.. 사실 뭐. 이런 것에 대한 해답이 여기 있을리는 없었다.


사실.. 나는 멘토가 되기 이전에는 그저 게임폐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사람이다.

내 삶이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다른이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결국 4년간의 멘토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멘토링과 더불어, 책 만들고 강의만들고 그렇게 살았었다.

정책만들고 뭐 글쓰고 별거별거 다한거는 아마 지켜보셨을 것이다.


학생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디라고 해도 시간내서 자비로 다녔던 나다.

전주, 익산, 속초, 원주, 경기도, 뭐 기타등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적어도 멘토링 과정에서 이득을 취했던 적은 없었다.

누군가는 이득을 취한 적도 있었고,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나를 이용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멘토링을 했었다. 




이제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사람은 사기를 왜 당하는가?

내 생각에는, 이미 잃었던 본전 생각에, 믿고 싶은, 믿기 쉬운 거짓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도 분명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사람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2018년 2학기쯤. 내가 본과 2학년이 되어, 그때부터 과외나 멘토링을 줄여갈 수 밖에 없었었다.

내 몸이 허락하는만큼만 했었는데, 그조차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 형은 사업을 하고있었는데, 연락이 계속 왔었다.


[샀던 차가 저당에 잡혀있어서 필리핀 입국금지를 당했는데, 필리핀 여자친구의 아는 사람이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이다. 행정적으로 처리를 해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더라. 근데 그러려면 뒷돈이 좀 필요하다더라...]


뭐 이런식이었고, 돈을 계속 빌려주었다. 총합은 다음학년 학비인 천몇백정도였다.


물론, 어느정도 사기라고 생각이 들긴 했었다. 당연하다. 

그때의 형은 필리핀에서 연락하는 사람이 한명밖에 없었고, 그 사람만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과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내가 수험생활 때 여러가지 집안의 핑계, 가난핑계, 사회핑계를 댔던 것 처럼.

그 형도 핑계를 댈까 걱정되어 돈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는 내 생활과 앞으로의 지출이 보인다.

11월달 즈음에 천만원 이상되는 돈을 빌려준 내 금전적 상황은 난감했었다.

12월에 낼 집 연세는 그렇다치더라도 내 식비도 없을 상황이었다.

100만원이 내 통장에 남아있을 때, 나는 내가 먹을 식비도 없을 것 같다는 것을 몇번이고 얘기했었다.


수업시간이고 아니고, 낮이고 밤이고 관계없이 형은 내게 전화와 연락을 해댔다.

죽는다 죽는다 하여 또 돈 몇십만원을 부쳐주었다.

그 다음날도 필리핀에서 연락이 왔다더라. 또 돈이 필요하다고


이틀 걸러 몇백이 계속 필요하다고 하는 연락에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은 돈은 30만원 남짓이었고, 수입은 없었다. 나는 거의 고3/N수만 수업하기 때문에 11월쯤에는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 다가왔었고, 30만원 전부 빌려달라는 형의 말은 굶어 죽으라는 말로 들렸다.


화가 정말 많이 났었다. 연락을 차단했다. 부모님의 전화로 연락이 오기에, 연락이 오는 번호를 차단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형이 친척들에게 내 재료비 명목으로 돈을 2천정도 빌렸다더라.

화가 나서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그 돈 빌린 x끼 사람이냐고. 나는 도저히 모르겠고, 이거 빌린 사람 고소하겠다고.]


근데, 알고보니 형이 빌린게 아니라, 형의 부탁을 받고 어머니가 2천 빌려서 형에게 준거란다.

사람이냐고 물어본 대상도, 하여튼 그 대상이 내 어머니었고, 나는 입에 담지 않아야할 욕을 했었다.

배신감과 미안함, 뭐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 이후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출선언을 하고, 12월달 기말고사 준비하면서 급하게 과외를 구했다.

기말고사 성적은 좋지않았고, 1월부터의 마지막 방학때는 거의 하루종일 과외하면서 지냈다.

2달만에 빌려준 천몇백의 금액을 다시 벌었고, 겨우겨우 살아있게 되었다.


12월달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이 있다.


[그동안 여럿 학생들의 멘토링을 제대로 받았었지만
이제는 그만해야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본연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멘토링만을 할 수 없으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멘토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 형편도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구나 생각하고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기억정도만 해주십시오.
앞으로는 치과대학생으로 살겠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었기에 쓴 글이었던 것 같다.



또 내가 그쯤에 블로그에 쓴 글이 있다.


[돈은 어떠한 가치를 준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가치를 계속 소비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살게하는 것. 그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오늘도, 내일도 살 수 있다는 것의 보장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아. 내가 내일도 살 수 있다는 보장이 되지 않을때의 사람은 얼마나 나약한가..


살기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겠다.

그리고, 사는 것의 걱정을 안하는 것에 대하여 한심하게 생각하시는 어른들의 말을 알겠다.

이제, 돈보다는 가치 이런 말도 함부로 못하겠다. 지금 당장 죽겠는데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일단, 지금 당장은 가치가 돈보다 우선이지만, 내 목에 칼이 들이밀어진다 하더라도 유지할 자신은 없다.

원래 사람은 그런 것이다. 아마 짧은 생각으로 이해해본다면,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가치를 말해야할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나를 보는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사람은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해왔으니까 믿을만하겠지.


그러나, 내가 죽지 않을거라 보장이 될 때에만 날 믿어라. 애초에 사람이 궁해지면 변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뜻을 지키려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원래부터 강해야한다.

원래부터 잘 살아야한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나의 말에 내 자신도 나에게 한심하다.]


뭐 이런 글도 있었다.




[나와 같은 이는 침묵하고 나와 비슷한 이는 나를 치켜올린다.


그러나 나와 다른 이는 나를 잡아먹으려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무섭고 모든 것이 어그러지는걸

나는 겪어야하는데 이건 또 문제다.


정의 싫다.


내가 밥을 목구멍으로 넘겨야 정의라는 말이 나오는

실감을 한 상태에서 정의라는 말을 내뱉어야한다


미친 이게 말이되냐. 

그냥 생각해보자. 너라면 그럴때 뭐라말할건데.

말하면 성인군자인 것 같으나. 그래. 나는 그런 위대한 인간으로 날 포장할 생각도 없다.


나는 그러니까 성인군자 아닌 걸 몸으로 깨달았고

그 기간이 한달도 되지 않고서 내가 먹고는 살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정의라는 단어는 이제 염증나는 단어임을 알면

그렇다해도 내가 원하는 그 정의는 옳음을 알면

사람 미칠것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야하냐


난 그래서 이렇게밖에 못하겠다.


내 굶어 죽을때는 변하니 내 굶어죽지 않을때의 나만 믿으시요.


이런 인간임을 내가 25년 나이 쳐먹고서 모른다는게

보통은 아니라 생각했다. 자기혐오감


그냥 빠르게 내 일 끝내고싶다.

내가 굶어죽을 상황 더 오면 뭘 팔아야할지 나도 궁금해]


나는 그쯤 되니, 예전부터 나에게 있어왔던 자기혐오감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여러분께 미안했다. 그동안 멘토링에 집중했다던 이 인간은, 목구멍에 밥덩이 못들어간다 생각하니

돈 벌어야했다. 과외 하나 구해야했다. 그렇게 살았었다.


나는, 삶의 막장이라 해도 아주 지독한 막장을 경험해야 했었다.


삶의 막장 (끝)으로 이어집니다.

https://orbi.kr/0002851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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