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토벌대 [849734]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20-02-24 04:23:10
조회수 517

학창시절 전 성직자가 되고 싶었어요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7921117

그래서 나름 착실히 신을 믿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신을 사랑했었거든요

그 분의 넘치는 자비로 모두를 용서하고 사랑할줄 알았죠

그 때 전 자타공인 아싸 은따였어요 순진했었죠


사회에 재수생 신분으로 발 들인 뒤부터,

좀 나중에 가선 신을 원망했어요

갈수록 인생이 좆같아지고 

늘 실패하고

몸은 아파 2주에 한번 병원 가서 

배때기에 주사를 받고 지내는 지경이고 

전 갈수록 무능한 사람으로 자리를 잡고 

모두가 절 고정된 시선으로 비웃거나 질타하거나 동정하더군요


결국 모든게 집착인걸 알았어요

그래서 신을 잊기로 했어요

사람들은 못난 제가 신앙으로 고민하고 자기위안할 시간에 

남들을 최대한 무시하거나 깔아뭉개면서, 아부하고 질투하면서,

저 같은 건 급 낮은 버러지 등따리 또라이로 보면서, 잘만 살더라고요 


신을 계속 잊다 보니까 이제 남은 건 저 자신 뿐이었는데 더이상 살 자신이 없는 거에요 


이런 일들로 한두해는 잘 버텼어요 특히 신앙보다도 제 의지로 다 버텼어요 근데 이게 수년이 되어 제 청춘을 다 써버렸어요

저도 제 쪼만한 의지에 매달린 삐적 마른 괴물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느끼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괴로움 외로움 다 부둥켜안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겠더라고요


고흐처럼 튜링처럼

죽어서 그들만큼 칭송 추모는 못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그 때 그 순간의 심정처럼...


죽어야 겠다!


그렇게 해서 동네 호수로 가 당당하게 몸을 날리고

다리가 굳어지고 안경이 날라가고

그 때 깨달은 건 


신은 내가 만든 마음 속 괴물이었고

단지 내 필요를 위해 존재해야만 했던 상상속의 존재

죽은 뒤엔 아무것도 없고

죽음만이 살아있는 현실이라는 것


살려는 의지라기 보단

일종의 본능의  잔재 같은 거였는데

그냥 살려달라고 외쳐봤어요


한 젊은 커플이 와서 구해줬어요


지금은 원룸에서 혼자 살아요

그 때 일 생각하면 심장이 검정색이 되는 기분이에요


그냥 주어진 일상이라 사는건데,

이것도 답 같진 않아요


마음 속 신과 함께 했던 모질고 한심한  20여년이 그러했듯

순수하고 달콤한 암흑으로 다가온 죽음의 찰나가 그러했듯


모든게 피차일반이더라고요


이 세상에 정답은 정말 안 보여요

선이 악일 수도 있고 악이 선일 수도 있어요


근데 딱 한 가지!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은,


누가 됐든

여러분이 옆에 있거나 있었던 또다른 존재를,

지켜야 할 상황에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 존재의 정신이나 육체가 무너지기 전에

진심으로 사랑해주셔야 해요


풀도 물 안 주면 죽고 햇빛 안 받으면 죽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저를 꼭 위로해달란게 아니에요

저에게 애정 가진 분들은 따로 계시니깐...

주변 사람을 지키고 싶으면 사랑해주셔야 되요


일종의 생명에너지 같은 거에요

그 급여가 떨어지면 대단하다는 사람도 알아서 무너져요


또 불씨같은 거에요

불씨가 꺼지면 모든 건 끝이에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장작을 늘 제공해야 되요

그게 꺼지면 그 사람은 진짜 죽고 말거나 

살더라도 좀비같은 여생을 보낼거에요


이런 말을 하는 저는 제 개인의 삶이라는 또다른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어요

전 이런 고상한 이야기를 할 상황도 안되고 처지 주제도 안되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전할 메세지가 여기까진거 같네요

두서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만큼은 희망과 도전 가득한 내일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도 내일을 어떻게든 살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