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고 조경민 [875628] · MS 2019 · 쪽지

2019-11-23 12:49:05
조회수 846

재업,칼럼)수능 문학이 요구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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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최승호 시인이 수능 국어를 못하는 이유


장문입니다. 읽기에 따라 국어 공부에 유용할 수도...





저번 주, 또 한 번의 수능이 끝났다. 수능 전이나 수능 후나 매년 같은 기사들이 나온다.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과목은 아마 국어가 아닌가 싶다. 작년에는 불수능이라고, 특히 31번의 비문학 문제가 가진 괴랄한 비주얼을 내세워 여기저기서 보도했고, 올해는 상대적으로 쉬운 난이도였음에도 늘 그렇듯 ‘이렇게 어려운걸 왜 풀어야 하냐’는 수능 무용론이 제기된다.


수능 국어(또는 언어) 얘기를 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10여년 전 중앙일보가 최승호 시인에게 본인의 시가 나온 문제를 풀게끔 요청한 것이다. 그는 본인의 시에서 총 세 문제를 틀렸고, 이에 ‘시인도 자기 의도를 못 맞추는 시험이 어딨냐’는 식의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오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능 문학은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문학이라는 것은 주관의 영역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수능 문학은 ‘객관’에서 정답 선지가 도출되도록 출제해야한다.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보도록 하자.






24.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가)와 (나)에는 우울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② (가)와 (다)는 대립적 가치를 통해 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③ (나)와 (다)는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선명한 인상

을 준다.

④ (가)~(다) 모두 부정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 있다.

⑤ (가)~(다) 모두 배경 묘사를 통해서 화자의 정서를 암시

하고 있다.


우선, 1번 문제, 시험지 기준으로 24번 문제를 보자.


1번 선지의 우울한 분위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가)는 정약용의 ‘구우’인데, 물론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가 깔려 있지만, 수능 국어는 그런 ‘느낌’만으로 문제를 내지 않는다. ‘궁벽’, ‘낡은’, ‘비’ 등의 단어도 물론 우울한 느낌을 주지만, 그것은 ‘충분히 객관적이지 않다.’ 답은 ‘수심’, ‘괴로워’, ‘탄식’등에서 찾아야 할 것이고, 이것은 ‘충분히 주관이 배제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 전반에 우울한 분위기를 왠만하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낼 수 없다. ‘비애’라는 단어. 이는 충분히 ‘객관적으로 우울하다’. AI가 조금 더 발전한다면 1번선지는 옳은 선지로 금방 분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최 시인이 고른 오답은 4번 선지이고, 정답은 2번 선지다.


오답인 4번 선지를 보자. ‘부정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 있지 않다고 시인은 판단한 것이다. 아마 교육청에게 있어 정답의 근거가 될 문장은 “아마존 강은 여기서 아득히 멀어/열대어들은 수족관 속에서 목마르다.”

는 구절일 것이다. 맞다. 이것은 ‘충분히 객관적이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옳은 선지로 분류해내야 하는 것인가? 물론 문학적 감각이 있다면 시 전반의 내용을 ‘부정적 현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객관에 기대어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선지를 “부정적 현실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그런 판단이 ‘제일 주관적인‘ 것이다. 굳이 첨언하자면 잘못된 방향으로 주관이 강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수능 국어의 법칙 하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주관적인 선지일수록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맞다고 하기도, 틀렸다고 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문학 선지라면 그것은 정답으로 출제할 수 없다. 그랬다가 어떤 사단이 나려고. 그것은 자칫 주관을 강요하고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선지라면 넘어가야 한다. 마닳, 피램, 이원준 등의 강사/문제집들도 대부분 이런 느낌으로 해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6번 문제는 더욱 확실한 정답이 있다. 정약용은 (가) 지문 ’구우‘에서 ’글 짓는 일로써 수심을 달래‘보지만, ’낡 맑아도 또 혼자서 탄식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시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1번 선지는 객관적인 정답이다. 한편 시인이 오답으로 고른 “황폐한 삶 속에서도 정신적인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주관적이기에‘ 정답이 아닌 것이다. 물론 시에 드러난 열대어들이 황폐한 삶을 은유하는 것은 맞다. 시가 정신적인 가치를 회복하려는 시도임도 맞다. 그러나 정약용이 과연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나? 아니다. 정약용은 글 짓는 일로 수심을 달래려 시도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시에서 말하고 있고, 그것을 ’정신적인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로 독해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오독‘이다.




선지 하나하나 설명할 수도 있으나 이쯤하면 수능 문학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많이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최승호 시인은 ’그런데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思潮)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 시험이다,‘라고 말했는데, 과연 수능 문제를 제대로 읽긴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수능 역사상 그런 문제는 출제된 적이 없다. 시인의 ’주관‘을 물어보는 형태의 시험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현대의 학문이 세 번의 사형 선고로 인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니체의 ’신은 죽었다‘와 에드워드 카의 ’역사는 죽었다‘, 롤랑 바르트의 ’저자는 죽었다‘가 그것이다. 만약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선고하지 않았다면 시인의 말대로 시의 사조나 시인의 출신을 묻는 문제가 수능에 출제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제 정답을 제시하는 절대적 주체로서의 작가는 죽었고, 모든 것은 해석의 몫이다. 그리고 수능 국어는 그중 가장 ’객관적인 해석‘만을 묻는다. 그렇기에 공정하다. 뛰어난 시인을 가려내는 시험이나, 시 덕후를 판별하는 시험이 아니라, 그저 문장을 읽고 그중 객관적인 정보만을 저장 및 처리하는 능력을 묻는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외우는 능력은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만 한정되어 필요하다. 교수 및 수능 출제진들도 이를 알고 문제를 낸다. 그런데 뉴스 기사들에 수능이 아직도 암기시험이라고 믿으며 수능 무용론을 펼치는 이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정보처리능력이다. 쏟아지는 정보를 짧은 시간동안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는 유의미하다. 수능 국어에서 ’이해‘와 ’응용‘은 딱 한 걸음만 나아가기를 요구한다. 리트처럼 막 엄청 고민해서 뛰어난 ’발상‘을 도출할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공부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과목인 것이다. 핀트만 맞추면 수능 국어는 잘 볼 수 밖에 없다. 가령 공부를 해야 하는 포인트는 인강 강사의 고전문학 해설집이 아니라 문학의 출제 메커니즘이다. 문제를 풀 때의 포인트는 어디까지가 객관이고 어디부터가 주관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국어의 양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수능 국어를 많이 공부하고도 성적이 안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핀트가 많이 어긋나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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