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에바참치 [871815]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19-11-17 14: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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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노력이 부정당한 느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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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죽을만큼 열심히 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만큼은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6월 전에는 성적이 어느정도 나와 좀 풀어진 감이 있었지만, 그 후에는 부단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1년동안 친구들과 피시방 3~4번 간 것 말고는 컴퓨터도 끊었었다. 그랬으면 안됐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내 기준에선 엄청 자제한 결과였다. 하지만 노력만 있어서는 안되었나보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성적은 올랐었고, 작년에는 풀리지 않던 문제도 풀리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분명 처음의 성적은 좋았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결국 수능에서는 수학이 작년과 같은 등급을 띄우면서 결과적으로는 1년 간 쌓아온 실력이 없는 셈 되버렸다.


남들도 나보고 열심히 했다고 한다. 현장조교분들도 종강날까지 격려해주시며 분명 잘 될 거라고 해주셨다. 물론 전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수능이 끝나고 2등급이 나온 생명을 못하겠다며 모두가 만류했지만 물리로 바꾸고, 3월 성적 12121을 보고 더 열심히 하면 서울대도 가능하겠다며 확정 1등급이 나오던 지구과학1을 버리고 지구과학2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난 열심히만 하면 어떻게든 될거라고 생각했다. 작년 3월달 백분위 50이었던 점수를 수능때 백분위 70대를 찍으며 담임선생님께서 넌 재수해도 괜찮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확신했었다. 난 될거라고.


35321 => 15323 으로, 결국 국어와 지구과학의 등급이 바뀌어 백분위가 조금 올라간 것 말고는 바뀐 게 없었다. 국어는 작년이 너무 망해서 그렇지 문학만 제외하면 원래 1이 나올 것 같았고, 물리는 찍은게 맞아 선방했으며, 지2는 생각보다 망해 원하던 등급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영어는 불만이 있었다. 듣기 2번에서 누가 화이트를 떨어뜨려서 듣지 못하고 그 문제를 찍은 후부터 멘탈이 흔들렸다. 갑자기 감독관은 타 학생이 화이트를 요청하니 갑자기 내 화이트를 가져가서 빌려주고, 근처에서 학생들에게 감독관 싸인을 하며 엄청 속닥속닥거리고, 내 뒤와 옆이었던 결시자 책상에서 본인들 앉겠다고 의자를 가져갈때 들어서 가져가면 될걸 굳이 끌어서 가져가 끼이이익 소리가 났을 때, 이미 한번에 풀어야 할 주제/제목에서 5번은 넘게 읽으며 멘탈이 산산조각 난 후였다. 그렇게 원래 사설도 다 풀면 시간이 남았지만 5문제를 찍고 잘하면 1, 못해도 2가 뜰 거라 예상한 영어는 73이란 점수를 맞았다. 


그럼에도 영어는 별로 원통하지 않다. 그저 1년동안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며, 가장 시간 투자를 많이 한 수학이 이번에는 3, 적어도 4는 뜰 줄 알았던 수학이, 다시 한번 5가 떴다는 사실은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해주었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는 싫었다. 작년에 국어 3등급을 받고 울었던것 같은 원통함이 찾아오진 않았다. 그저 너무 허탈했다.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점수가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수학이 3, 못해도 4가 나왔으면 미련없이 입시판을 떴을 것이다. 입시판을 떠도, 내 성적에 용납하지 못해 애초에 고등수학 공부를 대학교 가서도 하려고, 1등급이 나올때까지 수능에 도전해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건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여기서 삼수를 한다고 해도 수학이 오를까라는 불신이 생겼다. 결국, 난 안될거라는 생각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63점이라는 수학 점수는 1년간의 나의 노력을, 내 시간을, 내 재능을,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이란 타이틀을, 그리고 모두가 문과로 가라고 해도 꼭 이과로 가고 싶었던, 정보보안전문가를 꿈꾸던 내 희망을 통째로 부정해버렸다고.. 난 안될 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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