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빛은역사 [813421] · MS 2018 · 쪽지

2019-09-20 02:36:45
조회수 229

6.25와 중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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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을 시작한 ‘조선족’ 병사들

  





69년 전, 6.25 전쟁이 발발했다.







'6.25''중국'

이 두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중공군’

  




  


그런데, 중국‘단지’ 중공군만을 파병했을까? 







놀랍게도, 중국은 전쟁 전부터 북한에 조선족 병사들을 보냈다. 


6.25 당일 남침에 앞장선 북한군의 절반 정도는 조선족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체 왜 조선족 병사들을 북한으로 보냈을까?

중국은 어느 정도까지 6.25에 개입했던 걸까?



  





1949년 5월 베이징.

북한의 간부 김일과 중국의 수뇌부의 회담

김일마오쩌둥에게

조선족 병사들 파병해달라고 부탁한다.

(파병 요구가 담긴 북조선노동당의 서한을 전달)








 그렇다면, 마오쩌둥은 김일에게 어떤 대답을 했을까?


"1950년 초, 국제정세가 유리하게 전개되면 남한을 침략할 수 있을 것"


"중국에 있는 2개의 조선인사단을 무장시켜 북한에 인도할 것"


"필요한 경우 우리는 중국군을 투입할 수 있을 것"


"어차피 중국군은 머리가 검기 때문에 북한군과 구별되지 않을 것"

 









  


우리의 착각: 중국은 6.25가 터지고 한참 뒤에야,

중공군을 개입시켰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현실: 중국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치밀하게 전쟁을 공동 모의하고 있었다.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1950년 5월: 마오쩌둥·김일성의 비밀 회담


비밀 회담이라서 하마터면 증거가 확보되지 못할 뻔 했는데....








증거 1

“스탈린 동무, 보고드립니다. 

김일성은 ‘3단계 공격계획’을 설명했고 마오쩌둥은 그 계획을 승인하였습니다.” 

(소련의 로시친이 중국의 주원래로부터 회담의 내용을 전해들은 뒤, 스탈린에게 보고한 내용)

(주원래의 얼굴)







 증거 2

“스탈린 동무, 보고드립니다. 마오쩌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일본의 개입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미군이 전투행동에 참가한다면,

우리 중국이 북조선에 군대를 보내 원조를 하겠다.


왜냐하면 소련은 미국과 38선에 대한 합의가 있기 때문에 참전이 적절치 않지만, 우리 중국은 그러한 약속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에 지원을 주는 것은 간단하다.

(하략)" 

(로시친이 박헌영으로부터 회담의 내용을 전해듣고 스탈린에게 보낸 전보)

(박헌영의 얼굴)


  







결국 중국마오쩌둥은 


(1) 북한의 남침계획을 사전에 미리 인지했고 


(2) 전쟁을 계획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며


(3) 6.25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중국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받은 적이 있을까?



다음 글의 주제: 노태우의 한중수교








참고문헌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깨끼", Torkunov 저, 구종서 옮김, 에디터

"조선의용군의 밀입북과 6.25 전쟁", 김중생 저, 명지출판사

"6.25 전쟁의 재인식", 오규열 외, 기파랑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저, 돌베게

"두 개의 중국과 실리외교", 홍덕화 저, 자작아카데미









※참고: 가독성을 위해 사료의 내용을 일부 윤문하거나, 표현 형식을 약간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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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무지하게 · 884653 · 09/20 07:17 · MS 201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럼 모택동이 파견시킨 중공군에는 항일 무장투쟁을 하였던 조선의용대 같은 부대도 파견한건가요?

  • 근무지하게 · 884653 · 09/20 07:19 · MS 2019

    아 그리고 주원래가 혹시 저우언라이를 말하는거면 주은래 아닌가용..?

  • 나의빛은역사 · 813421 · 09/28 21:14 · MS 2018

    네, 저우언라이를 말하려고 했던 게 맞습니다. 보통 주은래라고 하는데, 제가 필이 꽂혔던 글("6.25 전쟁의 재인식" 중에서 오규열 선생이 작성한 부분)에는 저우언라이가 주원래라고 표기돼있어서, 저도 그렇게 표기했습니다. ㅎㅎ

  • 나의빛은역사 · 813421 · 09/28 21:14 · MS 2018

    좋은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련된 글을 잘 써보겠습니다!

  • 나의빛은역사 · 813421 · 09/28 21:12 · MS 2018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조선의용대'(김원봉 등)로부터, 공산주의자들이 이탈하여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결성하게 됩니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중국 공산당의 지휘를 받아 각종 전투를 치뤘습니다.

    (2) 한편,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는 '화북 조선의용군'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됩니다. (이들의 규모는 1942년에 100여 명, 1945년에 800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3) 그리고 해방 이후, 중국 공산당은 조선의용군이 한반도로 귀국하지 못하게 하고, 대신 만주로 가서 확군 사업을 실시해서 병력을 충원하도록 명령했습니다.

    (4)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중공과 북한 간의 외교에 따라 조선족 병사들이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 75일의 전사 · 738098 · 09/20 07:30 · MS 2017

    회원에 의해 삭제된 글입니다.

  • Yeske · 696501 · 09/28 23:03 · MS 2016

    군에서 정훈 교육 하는거 보면 아주 예전부터, 중국 소련 북한 세 국가가 모의 작당 한거라고 강조하죠. 흐루시초프의 후일 회고록 그외 기타 문서들에서 스탈린은 회의적이었다는게 많이 알려졌지만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스탈린의 재가를 받은건 아무래도 신성모의 안일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군량미 부족으로 계엄령은 풀더라도 술파티 벌이고 한거는 이해가 안되네요. 초반 국군과 미군의 삽질 보면 맥아더 도박이 먹혀들어가지 않았으면.. 역시 인생은 한 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