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ochan [813612] · MS 2018 · 쪽지

2019-09-18 11:24:50
조회수 272

전짓불의 공포 : 치명적 선택에 정답이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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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까 내가 위험한 질문이라고 한 말의 뜻을 아직 잘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좀더 설명을 하겠다……

아마 기자의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부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박준은 이야기를 꽤 길게 계속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겪은 일이지만 난 아주 기분 나쁜 기억을 한 가지 가지고 있다. 6.25가 터지고 나서 우리 고향에는 한동안 우리 경찰대와 지방 공비가 뒤죽박죽으로 마을을 찾아드는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경찰인지 공빈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또 마을을 찾아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우리 집까지 찾아 들어와 어머니하고 내가 잠들고 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얼굴에다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지독한 복수를 당할 것이 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상대방이 어느 쪽인지 정체를 모른 채 대답을 해야 할 사정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절망적인 순간의 기억을,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가려 버린 전짓불에 대한 공포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나의 소설 작업중에도 가끔 그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곤 한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 마치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짓불 앞에서 일방적으로 나의 진술만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문학행위란 어떻게 보면 한 작가의 가장 성실한 자기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떤 전짓불 아래서 나의 진술을 행하고 있는지 때때로 엄청난 공포감을 느낄 때가 많다. 지금 당신 같은 질문을 받게 될 때가 바로 그렇다…… 


-소문의 벽,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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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며 읽게 되는 많은 문학 지문과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가끔 분석의 대상을 넘어 공감적 감상의 대상이 될 때가 많다.


이 소설을 읽고, 또 읽고 되새김질하면서,


비단, 이것이 전쟁 상황에서만의 이야기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상당히 많은 '전짓불'에 노출된다.


대답이 잘못 나간다던가 해서는 관계가 꼬여버리는, 그런 전짓불의 상황이 있다.


현실에서 대화를 잘 안 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자 메세지라면 이상적인 답을 얼마든지 생각하고 검토하고 내뱉어도 큰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데, 가끔 현장에서든 랜선에서든 도무지 피하기 어려운 전짓불이 다가올 때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감정을 과하게 신경쓰는 내 성격에는, 


그것은 하루종일 내 속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 전짓불을 회피하기란 어렵다. 그것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고심하고 전짓불을 마주한대도 그것은,


종종 실패하고서는, 나의 관심과 정신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만다.


그렇게 흰머리가 또 늘어 간다.




차라리 어리고 생각이 없어서 이런 것을 검토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아직 책임의 영향권 밖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부럽게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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