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나누나 [682570]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9-06-29 19: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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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행복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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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쓰네요. 이제 곧있으면 군대 입대를 하다보니 아마 이 아이디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을거고 제대하면 입시일에도 손 땔 것 같아 이 아이디로 쓰는 거의 마지막 글이 아닐까 싶네요.


글쓰는 이유는 제목 그대롭니다. 그냥 여러분에게 가장 쉬울것 같지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거죠. 여러분은 언제 자신이 가장 행복한지 아는지? 무엇이 당신의 행복인지? 그런거요. 단순히 "성적 잘나오는거요, 서울대 or 의대 가는거요." 라는 대답을 듣고싶어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물론 이게 궁극적인 행복이고 근원적인 행복인 사람도 있겠죠. 근데 이 질문에 제가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가 원하는 대답은 훨씬 심오하고 원초적인 것일 겁니다. 


저는 원래 춤추고 노래하고 남 앞에 나서는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중학생때 예고나 공연예고를 가고싶어했죠. 그러나 의도치 않게 쓴 외고가 붙어버리는 바람에 외고에 진학하게 되었죠. 당연히 성적은 첨에 바닥을 쳤고 저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10대 후반~20대 초반의 학생이 가장 성공하였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거니까요. 그리고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모든사람이 좋아하는 모두가 해피할 수 있는 건 사실 공부를 잘하는게 맞으니까요. 그렇게 어찌어찌 고2 11월 모의고사 때 전교 3등을 찍은 이후부터 모두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수능은 만족할만큼 결과가 잘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수하자는 생각으로 나름 좋은 대학에 진학했었죠. 


사실 1학년 1학기는 기억도 잘 안나요. 반수한답시고 별 생각없이 살았죠. 과 cc도 하고 나름 인싸처럼 살기도하고 그냥 여느 평범한 1학년 1학기 학생들 처럼 산 것 같아요. 그러고 막상 반수를 하고 성적은 올랐지만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바람에 f도 많고 학점도 1점대인 상태로 복학을 했습니다. 근데 복학을 하고 보니 들어올땐 나랑 비슷한 상태의 동기들이 다 본인이 잘하는 분야를 가지고 있더라구요. 누구는 프로그래밍을 잘하고 누구는 해킹을 잘하고 누구는 포렌식쪽을 잘하고.... 근데 나는 아직 c도 제대로 못하고 f도 있는 학점  1점대니 미치겠더라구요. 뭔가 저는 여태 공부도 잘했었고 남한테 인정도 많이 받았었는데 여기오니 제가 그냥 한마리의 벌레가 된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때 결심했죠.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겠다고.


그래서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학점도 거의 4까지 복구하고 자격증도 따고 2학년 1학기땐 특히 시험기간이 아니더라도 맨날 저녁 10시나 11시까지 과실에서 공부하다 간 것 같아요. 근데 최근에 정말 인생에 현타가 심하게 오는 일이 있어서 제 스스로를 거의 처음으로 돌아보았습니다. 근데 그러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난 언제 가장 행복하지?? 난 무엇을 하는걸 좋아하지?? 아주 쉽고 나에 대한 질문인데 저도 이 질문에 대답을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만큼 전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을만큼 여유가 없이 살았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니 대학생활 2년 반동안 여행을 간 적도 딱 한번밖에 없었고 맨날 놀거나 공부를 안할때도 '이러면 뭔가 남한테 뒤쳐지지 않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제 맘속에 여유가 없었어요. 뭔가 사실 고등학교 때도 주말에 하루이틀 정도는 놀수도 있는데 특별히 그랬던 기억도 없었고 대학생때도 사실 수업 한두번 째거나 c+ 하나 받는다고 인생에 지장이 있는것도 아닌데 친구들이 수업째고 여행가자고 해도 한번도 간적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왜 난 나의 행복조차 모르는 바보가 되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니 결론적으로 든 생각이 이거더라구요. '내가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남의 평판을 의식하면서 살았던것 같다.' 고등학교때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부터 세상에 대한 시야는 넓어졌지만 저에 대한 시야는 좁아진 것 같아요. 저 스스로는 원래 자신감은 높았지만 자존감은 굉장히 낮은 편이었든데 뭔가 공부를 잘 하게된 시점부터 남들이 인정해주고 주변 친구들도 다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더 인정받는 기분이 들다보니 오히려 그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저의 생각은 '내가 이걸 할때 행복하고 이걸 하면 좋을 것 같다'가 아니라 '내가 이걸 하니 남들이 인정해주네?? 근데 인정받으니 기분이 좋다. 그러니 이걸 하면 남들이 인정해주겠다' 라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반수를 한 것도 내 스스로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그 아쉬움이 '내가 여길가면 내 꿈을 더 잘 펼치고 행복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보단 그냥 전 남한테 인정받는 서울대생이 되고싶어서가 더 강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한테 꿈을 물을때 제가 교수나 국회의원을 이야기한것도 저에게 물론 학문적 열정과 정치적 신념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보단 그냥 남에게 좀 더 대단해 보이고 명예롭게 보이고 싶어서 저런 직업을 원했던 것 같더라구요. 


오르비는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대학도 잘나온 극 상위권 친구들도 많겠지만 저같이 앞만보고 걸어오고 딱히 인생에서 큰 실패를 겪어본 적이 많이 없는 친구가 많을거에요. 그런데 그런 친구들 중에 한번 뒤를 돌아본 친구가 있나요?? 사실 전 많이는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도 사실 주변의 친구들이 다 공부를 하는 애들이였고 저의 시야 또한 그쪽으로 한정되어 있었거든요. 저는 공부를 하면서 제 시야가 넓어지고 더 똑똑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군대가기 전에 혼자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니 저의 시야가 오히려 그쪽으로만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넓은 세상을 보고 있고 나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보고 있는 시야도 예전 강남 하이퍼 시절 옥상에서 보는 강남땅 그리고 학교나 학원벽에 붙어있는 누구의 대학입학 그리고 그 성공한 누구의 향후 미래가 전부였고 스스로의 발전보다 남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의 발전을 위해 살고 있다고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원래는 좋은 대학원을 진학해서 전문연을 거치고 교수가 되고싶었던 꿈을 접어두고 본질적인 행복을 찾고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기 위해 군대를 갑니다. 물론 군대에 가면 또 생각이 바뀔수도 있지만 지금은 제대 후에 원래 제가 하고싶던 꿈인 연기쪽을 도전해보려고 해요. 저는 원래 옷 잘입고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걸 좋아하고 그때 가장 행복했는데 어느순간부테 저 자신도 그걸 속이고 산것 같더라구요. 좋은 노래를 듣고 좋은 영화를 보고 멋진 패션을 봤을 때 맘속에 멋짐을 넘어선 설렘이 있었는데 그게 단지 멋있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와서 생각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니 그게 그냥 제가 하고싶어서 그런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군대에서 한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구요. 그게 지금 생각하는 제가 행복해지는 길이라 생각해요. 혹시 알아요? 제 얼굴이 포스터에 나오는 영화가 5년 뒤쯤엔 나올지 ㅋㅋㅋㅋ.


물론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다 똑똑하고 서로의 길을 잘 알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한번 생각해봐요. 이게 나의 행복인지. 남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행복해 보일 것 같아서 이런 삶을 살고 있는건지. 그럼 모두 화이팅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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