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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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내 플래너를 보면서 죄책감, 회의감을 가지는 때가 많다.
국어 수학 영어 탐구에 대한 플랜대로 하루를 살았지만, 이것이 내 하루의 전부였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프기 때문인 것.
수험생활을 보내며, 나는 짐짓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생각을 들추어 내기 시작했다. 당연해 보이는 거짓 진리에 내가 점점 죽어가는 성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
그 거짓 진리에 내가 경도되고, 호도되면 내게 남아있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을 터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 스스로가 내게 이야기를 해야 했다.
대학이라는 가치를 결코 지금 내 삶의 전부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이윽고, 나는 그를 본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격 당했다.
부모가 당신을 서울로 보내고, 일주일에 20만원 가까운 돈을 용돈으로 지급하는 이유는, 바로 그 ‘대학’ 때문이 아니더냐.
그런 같잖은 얘기를 남겨둘 시간에, 공부를 일분이라도 더 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그것에 대해 어떠한 얘기도 꺼낼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고 서술하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치고 지쳤음에도 그들에게 굴하지 않겠다는 것이 지금의 내 입장이다. 대학이라는 가치를 내 삶의 전부로 상정하기엔, 내가 가진 삶, 내가 가진 자아가 매우 복합적이고 그러기에 퍽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삶의 중심을 플래너로 둘 수는 없다.
삶의 중심을 복합적인 ‘나’ 그 자체에 두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끊임없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대학’이라는 팻말 앞에 서 있을 그 때, 나는 또 다시 육중하고 무거운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으니까.
플래너를 쓰고, 그에 적힌 계획을 전부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열심히 살아냈다’고 얘기하는 것이 꽤 깝깝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을 게다.
공부는 좀 덜 했더라도, 책에 있는 서술자와 대화를 하며,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여러 매체를 통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이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그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다루어 보기 위해 나를 아는 친구, 스승과 깊은 담화도 나누어 보고, 또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들.
그 생활이 정말 내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삶을 여행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을 두고 얘기하는 것일 테니까. 앞으로의 과정에서도 그 기억과 추억들은, 내게 있어서 분명 아주 좋은 영양분이 될 테니까.
주위의 낭설과 풍설에 휘둘리지 않아야 겠다.
여기 서 있는 ‘나’는 오로지 ‘나’이기 때문인 것.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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