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대20학번 · 742363 · 19/06/04 22:37 · MS 2017

    그냥 맞아서 맞았구나 했는데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네요 ㄷㄷ 자료 감사합니다

  • Vena · 795473 · 19/06/04 22:39 · MS 2018

  • 으게엑 · 801810 · 19/06/04 22:42 · MS 2018

    자비심 = 양심 이 이해가 안가요 ㅠㅠㅜ

  • Vena · 795473 · 19/06/04 22:46 · MS 2018

    개인적인 도덕, 이성, 선의지, 양심, 자비심 등등에 호소하는 게 모두 개인윤리적 해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Vena · 795473 · 19/06/04 22:48 · MS 2018

    ㄱ의 양심 자리에 위의 어떤 단어가 들어가도 맞는 보기가 되는 거져

  • 플라톤의 아내 · 554237 · 19/06/04 23:53 · MS 2015

    첫째, 사랑과 평화라는 종교적 이상을 바탕으로 했을 때 A는 자신의 양심=도덕적 상상력으로 타인을 공감=이타심에 기반하여 호소한 것이 당연함.

    둘째, 그러나 지문과의 문장 구조 호응상 선지의 양심을 전제 군주의 자비심으로 볼 수밖에 없음. 즉, 선지는 ‘A는 정치적인 힘 대신에 (전제 군주의) 양심에만 호소하는 잘못을 범했다.’로서 부사어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야 함.

    셋째, 그렇다면 여기서 자비심=양심이냐? 문제가 됨. 니부어의 원전을 찾아보면 이타심, 양심, 선의지 등을 말하지만 자비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음.

    넷째, 니부어가 직접 자비심이라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비심과 양심의 사전적 정의로 정오를 판단할 수밖에 없음. 이에 기반할 때 자비심과 양심을 동일시? 사전적 정의상 양심은 도덕적 가치판단에 관한 것이고, 이타심은 이익에 관한 것이고, 자비심은 감정에 관한 것인데? 물론 개인윤리적 측면에 속한다는 점에서는 이타심, 양심, 자비심이 모두 동일함. 그러나 선지는 개인윤리적 해법에’만’이라 표현하지 않고 양심에’만’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양심에만 호소한 것은 아니다 자비심에도 호소한 것이다. 다시, 양심과 자비심은 개인윤리라는 같은 ‘범주’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둘이 ‘동일’한 것일까?

  • 플라톤의 아내 · 554237 · 19/06/04 23:53 · MS 2015
    회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 플라톤의 아내 · 554237 · 19/06/05 00:03 · MS 2015

    첫째, 사랑과 평화라는 종교적 이상을 바탕으로 했을 때 A는 자신의 양심=도덕적 상상력으로 타인을 공감=이타심에 기반하여 호소한 것이 당연함.

    둘째, 그러나 지문과의 문장 구조 호응상 (지문 : 전제 군주의 자비심에 호소, 선지 : 양심에만 호소) 선지의 양심을 전제 군주의 자비심으로 볼 수밖에 없음. 즉, 선지는 ‘A는 정치적인 힘 대신에 (전제 군주의) 양심에만 호소하는 잘못을 범했다.’로서 부사어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야 함.

    셋째, 그렇다면 여기서 자비심=양심이냐? 문제가 됨. 니부어의 원전을 찾아보면 이타심, 양심, 선의지 등을 말하지만 자비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음.

    넷째, 니부어가 직접 자비심이라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비심과 양심의 사전적 정의로 정오를 판단할 수밖에 없음. 이에 기반할 때 자비심과 양심을 동일시? 사전적 정의상 양심은 도덕적 가치판단에 관한 것이고, 이타심은 이익에 관한 것이고, 자비심은 감정에 관한 것인데? 물론 개인윤리적 측면에 속한다는 점에서는 이타심, 양심, 자비심이 모두 동일함. 그러나 선지는 개인윤리적 해법에’만’이라 표현하지 않고 양심에’만’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양심에’만’ 호소한 것이 맞으려면 자비심과 양심이 동일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양심에’만’ 호소한 것은 아니다. 자비심에도 호소한 것이다. 다시, 양심과 자비심은 개인윤리라는 같은 ‘범주’에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바탕으로 둘을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 플라톤의 아내 · 554237 · 19/06/05 00:03 · MS 2015

    추가해서 달았습니다. 글쓴이님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 Vena · 795473 · 19/06/05 00:22 · MS 2018

    저는 개인적으로는 ㄱ 선지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니부어가 자비심mercy이라는 단어를 선의지와 같은 선상의 의미로 몇 번 사용 했던 것 같아요. 니부어의 저서가 한국어로 번역이 많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중에 Justice and Mercy라는 저서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자비심mercy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을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플라톤의 아내 · 554237 · 19/06/05 00:36 · MS 2015

    몇년도 책인지 알 수 있을까요? Justice and Love를 말하시는 건가요?

    Leaves from the Notebook of a Tamed Cynic (1930)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1932)
    기독교 윤리 해석학 (Interpretation of Christian Ethics, 1935)
    비극을 넘어서 (Beyond Tragedy, 1937)
    인간의 본성과 운명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1941)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The Children of Light and the Children of Darkness, 1944)
    Faith and History (1949)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 (The Irony of American History , 1952)
    Christian Realism and Political Problems (1953)
    The Self and the Dramas of History (1955)
    Love and Justice (1957)
    Pious and Secular America (1958)
    The Structure of Nations and Empires (1959)
    The Essential Reinhold Niebuhr (1987)
    Remembering Reinhold Niebuhr. Letters of Reinhold & Ursula M. Niebuhr (1991)

  • Vena · 795473 · 19/06/05 00:58 · MS 2018

    "이성적 윤리가 정의를 목표로 하는 데 반해, 종교적 윤리는 사랑을 그 이상으로 한다. 이성적 윤리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자신의 요구와 동등하게 보려 한다. 이에 반해 종교적 윤리, 특히 기독교 윤리는 상대적인 요구에 대한 치밀한 검토 없이 이웃의 요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절대자에 대한 종교적 감정의 결실이다. 종교는 한편으로는 자애심을 절대화하여 그것을 도덕 생활을 규범과 이상으로 삼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의 생명에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해 이웃에 대한 동정심(혹은 공감, sympathy)을 고무한다. 사랑은 이웃의 요구와 자기의 요구를 재거나 비교하지 않고 이웃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이성이 목표로 하는 정의에 비해서 윤리적으로 더욱 순수하다."

    "가장 높은 수준의 종교적 선의지를 지닌 개인들로 이루어진 국가도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 살사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한 국가에 속한 개인들은 순수한 자애심을 자아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국가의 개인의 입장에 자신을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애심으로 번역되어 있는 건 좀 더 많은 것 같아요!

  • 플라톤의 아내 · 554237 · 19/06/05 08:39 · MS 2015

    우선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아 자애심으로 해석된 부분도 있군요.. 해당 부분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런데 조금 더 본질적으로 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위에 댓글에 이야기했듯이 문제에 따르면 양심=자비심이라 전제해야 ㄱ을 맞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아래 사전적 의미상 같을 수가 없다는 거죠. 자비심은 자애나 동정심정도로는 같은 단어로 볼 수 있지만, 양심은 가엾게 여기는 마음 같은 것이 아니라 선악에 대한 판단에 관한 것이니까요. 물론 너무나도 당연히 종교적 이상 ,god’s grace, 자애, 동정심, 도덕적 상상력을 통한 공감, 양심 모두 개인적 윤리 ‘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나 같은 범주의 속한 단어라도 ‘같은’ 단어는 아니라는 거죠. 님이 발췌해 주신 원전에서도 자애심과 동정심 조차 ‘다른 한편으로는’이라고 말하며 자애심은 종교적 규범에 관한 것으로, 동정심은 이웃에 생명에 관한 것으로 구분은 하고 있네요. 여기서 같은 단어로 취급할 수 없다면 양심’만’이라는 보조사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죠. 양심, 동정심, 자애 중에서 양심’만’이라고 해석될 수 있으니까요.

    자비심 :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또는 그렇게 여겨서 베푸는 혜택.
    양심 :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 Vena · 795473 · 19/06/05 17:11 · MS 2018

    먼저 위의 두 인용문은 도덕적 인간과 비인간적 사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고 니부어가 양심과 자비심을 정확히 같은 의미로 사용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어휘의 사전적 의미와 그것이 철학에서 사용되는 의미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는 ...(중략)... 그러나 개인은 도덕적 양심이 있어서, 자비심, 동정심, 이해심 등의 감정을 통해,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때도 있다."(배근주)

    "The concept of conscience does not bear any connection with any particular substantial moral view (Broad 1940). The voice of conscience might suggest different principles and different behaviors to different people. In other words, there is no psychological or conceptual relation between conscience and any particular moral belief. However, as will be explained below, in the Catholic tradition the idea of an erroneous conscience is sometimes used to refer to conscience that fails to recognize the true moral laws which it is naturally predisposed to “witness” within our heart."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이렇듯 위의 글들을 종합해보면 니버가 자비심이나 동정심 등의 감정이 양심에서 따라 나온다고 보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타당한 근거가 없다고 가정하면요.) 그리고 저는 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물론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ㄱ 선지가 오류임을 뒷받침하려면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비교하기보다는 니부어가 '자비심이 양심에서 따라 나오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음을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