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 [865451] · MS 2018 · 쪽지

2019-04-21 22: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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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대한민국 병원 수련시스템은 붕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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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료시스템 붕괴

대학병원은 교육 병원이고, 그래서 희귀 케이스와 어려운 케이스들을 교수님들이 보고, 레지와 인턴 인력들은 교육 목적으로 환자를 차근차근 배워나감. 수련하신 분들은 밖에 나가서 자기 전문과목 진료를 보며, 1-2-3차병원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해야 함.


-여기까지 이상적인 시스템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시스템이 진작 붕괴했다. 보험으로 돈 안되거나 자칫하면 덤터기 쓰일 중환자들은 개원에서 다 손절하고, 그런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몰린다.


 바글바글 몰려들 환자들은 교수들에게 몰빵되고, 그 뒤치다꺼리를 레지와 인턴이 다 한다.

인턴들은 평판이랑 원하는 과 배치를 위해, 레지들은 인맥을 위해 침묵한다.


일을 잘하는 수련의면 다행인데, 그걸 동료들에게 짬 때리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에 신생아 의료사고 은폐를 살인죄라고 프레임 씌우는 기사를 보면 보통은 '의사 개새끼!' 하고 넘어가겠지만, 아는 사람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거다.



한국 의료계 일선에서 일하는 수련의라면 누구나 이쪽 시스템이 얼마나 과로에 허덕이는지 알고 있고, 신생아를 안고 가다가 넘어진 그 레지를 몰락시킨 이 사회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고 있다. 그만큼 이 바닥이 똥밭이다.



환자들도 치료비가 싸니까 쇼핑하는 기분으로 3차병원을 고르고 동네병원은 돌팔이라고 교수님교수님 거리며 지가 대학병원에 꼭 와야 하는 특별힌 환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윗년차 선배들은 허구한날 'latte is horse' 거리면서 이런 똥밭을 구른 걸 무슨 훈장인마냥 설치지만, 객관적으로 수련의 수에 비해 환자 수와 업무 강도는 매년 급증하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우리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필자의 짧은 고견으로, 올해 있었던 과로사 혹은 의료사고가 점점 늘어날 거다.





2.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인 똥군기


생각보다 이곳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일반 직장보다도 더 심한 상명하복 구조이고, 군대보다 심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나마 괜찮다고 소문난 서울의 빅3도 실상은 개판이다. 수도권이 낫다고는 하지만 지방 못지않은 병원도 수두룩하고, 신체적인 접촉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병원이 손에 꼽히는 수준일 거다.


물론 언어폭행 없는 병원은 당연히 없지. 이 바닥에 구르면 똑똑한 사람도 병신이 되는 것 같다. 어떻게든 자기 잘못 덮고 남에게 뒤집어씌우고 눈치 살살 살피는 사람이 윗선으로부터 '일 잘한다' 소리 듣는 게 현실이다.


대물림 갈굼 문화가 군대보다 더 심한데, 대물림 덮어씌우기도 심하다. 선배가 잘못했는데 목격자가 없고 책임 소지가 불분명하면 후배나 인턴들이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근무 환경도 꼰대 그 자체다. 분명히 힘든 과는 존재하는데, 생각보다 의료계가 생명을 놓고 일분 일초 경각을 다투는 일은 드물다.


물론 응급처리를 위해 기본적인 능력은 갖춰야 하지만, 그런 건 짬을 먹으면서 기본적으로 탑재되고, 그 외 일반적인 수술에서도 위급한 상황은 적다.


그래서 분위기를 덜 엄하게 가져가거나 퇴근시간 등을 좀 유하게 풀어줄법한 과가 많은데, 그걸 윗대가리들이 죽어도 안 한다.


라떼는 말이야~ 시전하면서 일이 없어도 밤까지 앉혀 놓고 간호사가 해도 되는 잡일을 인턴에게 시키는 병원이 비일비재하고, 의료전산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인턴에게 떠넘겨서 엑셀로, 심지어는 수기로 쓰잘데없는 자료 정리를 시키는 병원도 많다.



피피티 만들어주고, 교육자료 만들어주고, 인쇄에 공지에 행정처리에 환자 관리, 환자 연락, 소독물 관리, 뒷청소, 컴퓨터 관리, 가습기 관리.. 피피티에서 각도가 어긋나면 그걸로 밤새도록 여지껏 만든 모든 ppt 재고시키는 정신나간 놈도 있고, 행정실, 비서, 데스크님, 간호사 들 병원 직원이 맡아야 하는 업무를 너무 당연하게 인턴과 레지가 도맡는 병원도 있다.


노조가 두려워서 의료인들에게 시킨다는 말도 있는데 팩트체크는 못해봄.


이런 업무만 줄여도 의사들 평균 수면시간 2시간은 늘릴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의료인들 수면시간 늘려주고 제때 퇴근시켜주고, 말도 안되는 잡무들만 안 시켜도 올해 있었던 신생아 들고 뛰쳐가다가 넘어지는 일이나 자잘한 의료사고가 팍 줄어든다는 건 누구나 알텐데, 인턴 레지들은 지 밥줄 평판 학위가 달린 일이니 침묵하는 추세이고, 서로 남탓하기 바쁘고, 웃사람들이나 주변인들은 괜히 자기들에게 일 넘어갈까봐 입을 꾹 쳐닫고 있따.


얼마 전 서울대 치대 ooo 부정 입학 관련해서 말이 많은데, 그거보다 훨씬 심하고 더럽고 치사한 일들이 전국에 넘쳐난다. 어째 저 학교 하나만 언급되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3. 병원의 노동강도?


최저임금 지키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되고, 차라리 당직은 처우가 많이 개선돼서 돈을 많이 받는데, 각종 병원에서 업무시간 주작은 흔하게 일어나며, 오히려 인턴->레지 과정 중 평판에 흠집이 날까봐 다들 쉬쉬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병원에서 주작한 수치를 보이면서 '이렇게 정부가 노력했습니다'라며 딸딸이를 치지만, 현실은 시궁창.

오히려 서류 처리나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져서 일은 일대로 많아지고 업무시간은 업무시간대로 인정 못받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건 수도권에서 벗어난 병원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고 들음.

교육업무가 겹친 병원에서는 교육업무는 근로시간 산정에서 빠지기 때문에 교육업무에 치이는 레지는 더 죽어난다.


별첨을 하자면 치과병원이나 치과가 부속으로 딸린 대형병원은 실습, 기공 등 잡무로 굴린다. 얘네는 이런 걸 근로시간으로 치지도 않기 때문에 수련의들이 끔찍한 삶을 지샌다. 얘네는 의대보다 더 구식으로 찍어누른다. 의사로서 같은 대학 치대생들은 다소 '논달이'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련 치의들의 업무강도는 더 끔찍해서 치대 전문의는 의대에서도 불쌍하게 여긴다(그나마 당직은 적은데, 그래서 돈은 훨씬 덜받고 고생은 고생대로 한다)



세 줄 요약

1. 의료시스템 정상화

2. 의료계 업무시간 정상화

3. 교수 레지던트 체계 정상화

시급하다.

여러모로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붕괴 중이다. 하지만 그 폐쇄성이랑 직업 특수성 때문에 바뀌기 힘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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