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KgeRYVLcGSQ [758273] · MS 2017 · 쪽지

2019-04-12 21:47:49
조회수 4,756

낙태죄 폐지에 관한 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22312652

안녕하세요


오르비를 눈팅만 하거나 간간히 질문글만 쓰던 유저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요즘 인터넷 상에서 낙태죄 폐지가 매우 뜨거운 감자입니다. 충분히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
각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방금 오르비에서 본 낙태죄의 헌법 불합
치 판결에 관해서, "여성의 권리 신장이며 사회적 진보이다. 이는 축하할 만한 일이다" 라는 글을 보고 너무 충격을
먹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한번 읽어보시고 여러분들도 생각을 정리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낙태죄 폐지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법적 측면과 윤리적 측면입니다.
 도덕적 해이의 관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주제는 진흙탕 싸움으로 퍼질 우려가 있기에 서술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법적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낙태죄 폐지 를 '축하' 한다고 쓴 글에서는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사회의 진보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자유주의 사회, 법치국가에서 "권리" 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의 모든 것은 권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우개 하나에도, 샤프심 하나에도 이것이 누구의 것이라는 권리가 붙어있습니다. 물건의 매매는 권리의 이전이고,
자신의 권리 상태를 넓혀나가는 것이 자유주의 국가, 법치 국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불법이라 칭하고, 법적 제제가 가해집니다. 여성의 권리를 지키자는 측면에서의 낙태죄 폐지는, 다른 많은 권리 관계를 어긋나게 합니다.
  첫번째는 당연하겠지만 태아의 생존권입니다. 몇 개월의 태아까지 한 개체의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의 측면입니다.
착상이 방금 이루어진 수정란을 태아라고 지칭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임산부의 뱃속에서 나오기
직전의 태아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수도 없을 것입니다.
수학적 귀납법을 사용하여서 착상된지 하루 지난 수정란은 태아가 아니다.
착상된지 이틀 지난 수정란은 태아가 아니다
 3일, 4일....n일... 따라서 모든 태아는 생명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논할 만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만약 아이가 임신 후 24주후에 태어났어도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존이 가능하다면 24주의 태아는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요? 과학기술이 더 발달해서 12주의 태아가 세상에 나온 경우에도 살려낼 수 있다면 12주 부터 인간인 것일까요?  결국 어쩔 수 없이 권리의 우위를 저울질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현재도 의료계의 자문을 받으면서 논의중인 사항이기도 합니다.

  두번째는 상당히 세밀한 권리 상태의 변화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페이스북 에서 john lee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시는 분의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상속 순위에서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이 갈 만한 아리송한 문제다.
법은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유복자인 태아에게도 상속을 받을 권리를 인정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인들도 고민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었다고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상속을 받을 권리가 있는 태아가 출생하기 전에 유산된다면, 태아의
 상속분은 태아에게 가까운 순서로 재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태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치고 아버지의
유산을 다시 나누게 된다고 한다. 드문 사례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당사자들에게는 해석의 차이로 수백억원이 갈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기도 하다. 물론 타국의 법에서는 사망한 태아도 일단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핵심은, 이렇게 미묘한 상황을 낳을 수 있는 복잡한 상황을 법외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과연 '자신있게' '단정'할 수 있는 문제냐는 거다.
가장 극단적인 부분까지 일반적으로 포괄할 수 있어야 일관된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법원이 위헌 판결이 아닌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이유도 이와 같이 수많은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관한 법률 제정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적 측면의 마지막 문제는 임신중절을 하는 의사의 양심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윤리적인 관점에서의 시각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이야기에 앞서, 임신 중절 수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16주 미만의 태아의 경우>
 우선 태아의 몸을 산부의 질 밖으로 꺼냅니다.
이 떄, 머리가 밖으로 나오면 출산으로 인정되기에 몸통만 밖으로 나온 상태가 됩니다.(미국의 법 입니다)
이후 아기의 목 밑에서 뇌까지 수술용 가위를 찔러넣고, 자두만한 머리속을 휘저어서 태아를 수명을 단절시킵니다.
석션(suction)과 비슷한 도구를 이용하여 남은 태반은 긁어냅니다.


<24주 미만의 임신중절>은 조금 다릅니다.
태아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약물을 이용하여 자궁 내부에서 마취를 시킵니다.
이제 자궁 내부에서 태아의 팔 다리를 분리시키고 꺼냅니다.
팔, 다리 , 몸통, 뇌. 이제는 살아있지 않은 고깃덩어리들이 테이블 위에 쌓여 올려집니다.
혹시 잔여물이 남아있으면 여성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재고 확인을 합니다.팔 두개, 다리 두개, 머리, 그리고 나머지 부위들. 시술대 앞에서의 의사는 '여성의 권리 향상,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라는 허울좋은 문구가 아닌, 움직이지 않는 살덩어리들과 마주칩니다.


낙태죄가 폐지가 되고 낙태가 합법화가 된다면, 임신 중절 수술은 의료보험제도의 지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의사들은 중절수술을 실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료법에 의하여 진료거부를 할 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수술을 거부한 의사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낙태죄 폐지 찬성론자들은 태아는 사람이 아니기에 지워도 된다고 말합니다.
전쟁은 불가피한 살인이지, 인간이 아닌 적들을 살처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지워도 된다는 논리가, 태아는 사람이지만 죽일 수는 있다는 논리보다 훨씬 잔인한 것입니다.



한 가지 관점만 바라보고서 맹목적으로 달려들지 않으시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적었습니다.
저 또한 아직 낙태죄에 관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 라고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고 전체적인 생김새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무의 이파리만 보고 숲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확정짓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몇 글자 적어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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