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하다가 본 글인데 남자가 저랑 유형이 비슷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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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이블에 엎드려버렸다.
“뭐야? 사람이 사과하는데. 그렇게 반응하는 게 어딨어?”
“그건 사과가 아니잖아” 여자가 엎드린 상태로 대답했다.
“난 미안하다고 했어”
“미안하다고 해서 모든 게 사과는 아니지”
“그럼 뭐? 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건데? 무릎이라도 꿇을까?”
“네가 그런 말을 할수록, 나는 네 미안하다는 말에 대해서 진정성을 느끼기가 힘들어”
“아, 그래? 그럼 어쩌라는 건지 제대로 이야기나 해봐. 진정성 있는 사과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말해보라고…”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나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과 기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이에 질세라 한동안 퍼붓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잠깐 동안 엄청나게 커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하다가 이십 분쯤 지날 무렵에는 무척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아집과 맹목적인 분노를 발견했다. 또 감정에 못 이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잠시나마 가장 증오스럽고 추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남자의 변화를 아주 편안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났어” 마침내 남자가 말을 끝냈다. “너는 무슨 할 얘기 없어?”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여자가 되물었다.
“응”
“나는, 음, 할 얘기가 별로 없는 걸. 네가 미안하다고 했고”
“이번에는 진정성이 느껴졌어?”
“응. 많이 느껴졌어”
“아, 모르겠어. 진정성이라는 건 너무 어려운 개념이야, 나한테는”
“그래?”
“너랑 이런 식으로 싸우고 싶지 않았어.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걸까? 나도 속으로는 내 잘못이나 결함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도, 막상 싸울 때가 되면 하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져. 싸우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의 말싸움에도 지고 싶지 않은 거지”
“그래. 그래 보이더라”
“그러니까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니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 같은 사과가 나오는 모양이야”
“그런 사과만큼 의미 없는 사과도 없지. 그건 자신의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거고, 상대방이 느낀 감정에 대해 이해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거니까. 당장의 상황에서 벗어나고는 싶고, 그런데 지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할 수밖에”
“나는 정말 바꾸고 싶어” 남자가 말했다.
“뭘?” 여자가 물었다.
“이런 내 성격 말이야. 부정적인 상황도 싫고, 타협하기도 싫은…”
“왜 바꾸고 싶은데?”
“왜냐하면, 그런 게 너한테 상처를 주니까”
“……”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얼굴이 꺼져있는 휴대폰 화면에 작게 비쳐 보였다.
“사실, 나는 이런 걸 바꾸고 싶어서 많이 노력하는데 말이야. 잘 안돼. 노력한다고 이런 것들이 다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이십 년 넘게 형성해온 성격 같은 것들이”
“노력으로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사람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지만, 어떤 것들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영원히 바뀌지 않아. 죽는 그 순간까지 그대로인 것들은 분명 있지.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
“그렇지, 난 그게 두려워. 내가 내 이런 결함을 영원히 바꾸지 못해서, 너처럼 좋은 사람을 내 곁에서 떠나보낼까 봐 두려워. 너는 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믿어?” 남자는 거의 울먹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여자는 남자의 빨간 눈시울이며 검은색과 진한 갈색이 반쯤 섞인 눈동자, 흐르는 대신 속눈썹에 스며들어 반질거리는 눈물과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대답해줘. 바꿀 수 있을까?” 남자가 다시 물었다. “바꿀 수 있다고 말해줄래? 노력하면 바뀔 거라고 해줘. 나한테 용기를 줘”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그런 게 영원히 바뀔 수는 없어” 여자가 대답했다. 남자의 깊은 곳에서 뭔가 쪼개져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 그럼 나는, 너와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겠네”
“세상에는 헤어지지 않는 관계도 없어. 수십 년을 같이 살아도 언젠가는 헤어지는 거야. 어떤 형태로든”
“그럼 우리가 만나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어? 바뀌지 않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지? 네 말대로라면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라고. 안 그래?”
“아니, 아니야. 언젠가 헤어진다고 해서 모든 만남에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노력해서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노력이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지”
“무슨 소리야? 그게”
“언젠가 끝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 아무리 봐도 끝이 없는 영화를 상상해봐. 상영시간이 백 년, 아니, 무한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영화를 생각해보라고. 그런 영화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
“……” 남자는 왼쪽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그래도 끝이 있다는 건 슬픈 거야”
“그래서 슬픔도 가치가 있는 거지”
“난 너랑 헤어지기 싫어. 그래서 노력할 거야. 노력해서 날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
“아니. 아무리 기다려도 바뀔 순 없다니까”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냥 이대로 받아들이라고?”
“계속해서 노력해야지”
“영원히 바뀌지 않는데도?”
“응. 바뀌지 않아도 나는 널 사랑해. 네가 내게 상처 주는 부분을 영원히 갖고 있더라도 사랑할 거야. 그걸 고치기 위해 영원히 노력한다면”
“아, 아”
“그래 줄 수 있니?”
“그래, 노력할게. 영원히 바뀌지 않더라도 노력할게”
두 사람은 말이 끝나자마자 껴안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남자가 이 대화를 기억해낸 것은 여자와 헤어진 지 십오 년이 넘게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아빠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딸의 얼굴에서 십수 년 전의 자신을 발견했다. 딸이 욕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말없이 쳐다보다가, 가만있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소리에 입을 열었다.
“……네가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메아리>, 20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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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고집이 엄청 세네요
네
저런사람 만나면 상처 많이 받을것같아요.
남자주인공 엄청 슬픈게 눈에 그려져서 짠합니다
ㅠㅠ
세상이 냉정하긴 하지만 저 여주인공처럼
냉정하고 냉랭한 사람이 연인이라면 사랑을 받자고 하는건지 상처를 받자고 연애하는건지 괴로울겁니다.
저런사람들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