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연구소 [849283]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9-03-03 02: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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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찬우가 보내는 16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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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이라는 시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아들이, 친구들이 탄 기차가 서울로 가는 것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을 때, 그런 그를 애써 모른 척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통한의 시간이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마디의 불평없이 자신만의 삶을 일구어냈던 의지와 정열의 시간이 아니었던가.


이는 곧 오직 가족들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어머니, 한 집안 며느리의 전형인 것.


당신께서 마지막을 준비하던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의 기억은 조바심에 예전보다 선명해지고

당신의 기억은 아픔 속에 어제보다 희미해져갔다.


그 누구도 당신께서 가진 병을 말하지 않아, 홀로 외로움 속에 투병하고 있을 때, 눈치조차 없는 내가 당신께 2주라는 시한부 삶을 얘기해주고 말았을 때


나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었던,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그 눈빛에 다리마저 후들거릴 정도로 가슴 아파했지 않은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병원 앞에서 눈물을 닦아냈던 내가,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장고의 믿음 때문일지라.


감사하고 또 고생하셨다는 얘기를 끝으로 전하며.


삼가 명복을.


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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