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nos [790926] · MS 2017

2019-02-24 18: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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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영어 번역/세계사) 살라딘 이야기 1.출생과 이집트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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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din was born into a prominent Kurdish family. On the night of his birth, his father, Najm al-Dīn Ayyūb, gathered his family and moved to Aleppo, there entering the service of ʿImad al-Dīn Zangī ibn Aq Sonqur, the powerful Turkish governor in northern Syria. Growing up in Baʿlbek and Damascus, Saladin was apparently an undistinguished youth, with a greater taste for religious studies than military training.


살라딘은 저명한 쿠르드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의 탄생날의 밤에 그의 아버지는 그의 가족을 모아서 알레포로 가서 북시리아의 강력한 투르크족 행정관 밑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다마스쿠스와 ba'lbek(지명이름)에서 성장하면서 살라딘은 군사적인 훈련보다도 종교적인 학습에서 좋은 성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His formal career began when he joined the staff of his uncle Asad al-Dīn Shīrkūh, an important military commander under the emir Nūr al-Dīn, who was the son and successor of Zangī. During three military expeditions led by Shīrkūh into Egypt to prevent its falling to the Latin Christian (Frankish) rulers of the Latin kingdom of Jerusalem, a complex, three-way struggle developed between Amalric I, the king of Jerusalem; Shāwar, the powerful vizier of the Egyptian Fāṭimid caliph; and Shīrkūh. After Shīrkūh’s death and after ordering Shāwar’s assassination, Saladin, in 1169 at the age of 31, was appointed both commander of the Syrian troops in Egypt and vizier of the Fāṭimid caliph there. His relatively quick rise to power must be attributed not only to the clannish nepotism of his Kurdish family but also to his own emerging talents. As vizier of Egypt, he received the title “king” (malik), although he was generally known as the sultan.


그의 전 경력은 장기왕조의 왕인 누라딘을 섬기는 그의 친척 아사드의 간부로 들어가면서 그러니깐 누라딘 에미르(이슬람권의 군주) 아래 들어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배경적으로는 당시 십자군 전쟁 시기, 라틴 기독교 손에 이집트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이집트에서 shirkuh가 이끄는 원정때에 예루살렘 왕국의 왕국의 왕(Amalric I) 과(수능때 등장한 예루살렘 왕국입니다. 살라딘의 생애가 3차 십자군원정이기 때문에 적어도 예루살렘 왕국은 3차 십자군 원정 이전에 성립되었다고 보셔도 될듯 합니다.),파티마 왕조의 총리대신(vizier 원래 영어 사전에서는 고관이라는 뜻으로 나와있으나 편의를 위해서 총리대신으로 적습니다.)인 파티마 왕조의 Shāwar(910년에 건국된 수능에 등장한 이집트 왕조입니다.) 삼파전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파티마 왕조의 총리대신이 죽고(나무위키에서는 급사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예루살램 왕국의 왕조가 암살 명령 후, 살라딘은 31세때 이집트의 시리아 부대의 사령관이자 파티마 왕조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번역자의 사족으로, 이때부터 살라딘이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상대적이게 빠른 세력의 성장은 아마 그의 쿠르드 가문의 부족 족벌주의(clannish nepotism)뿐 만 아니라 또한 그만의 떠오르는 재능이 이유로 꼽히는것이 분명해보입니다. 총리대신으로서, 그는 왕(말리크, 참고로, 유희왕의 마리크라는 인물이 이 칭호를 따온겁니다.)칭호를 얻었습니다. 비록 그가 술탄으로 알려지긴 했지만요.


Saladin’s position was further enhanced when, in 1171, he abolished the weak and unpopular Shīʿite Fāṭimid caliphate, proclaiming a return to Sunni Islam in Egypt. Although he remained for a time theoretically a vassal of Nūr al-Dīn, that relationship ended with the Syrian emir’s death in 1174. Using his rich agricultural possessions in Egypt as a financial base, Saladin soon moved into Syria with a small but strictly disciplined army to claim the regency on behalf of the young son of his former suzerain.


1171년에 살라딘의 지위가 더욱 강해지자 (이때 파티마 왕조가 멸망했던 즈음입니다.) 그는 수니파 이슬람으로 회귀한다고 주장하면서,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를 버립니다. 그가 누라딘의 이론적으로는 그시기때 봉신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 시리아의 에미르(아까 말했듯이 이슬람권의 군주라는 뜻입니다.) 그가 죽어서 그 관계는 끝났습니다. 재정적 기반으로의 이집트에서의 풍부한 농작물 보유를 사용하여 (당시 이집트가 황량한 사막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이집트는 나일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농작물 생산량은 고대부터 쭉 뛰어났습니다. 이집트 문명이 4대문명에 낀것도 나일강 때문이 10할중 9할의 이유때문일겁니다.)  살라딘은 시리아로 이동했고 작지만 엄격히 훈련된 정예병들로 그의 전 종주의 젋은 아들의 편에서서 섭정(regency 정통한 통치자 대신 다스리는겁니다. 일본의 덴노와 막부의 관계를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릅니다.)을 선포하게 됩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세계사 상식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는 910년부터 1171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왕국은 3차 십자군 원정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습니다.


출처 브래태니카 영어 백과: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Sala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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