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조진다 [536525]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19-02-13 00: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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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6월 모의 평균6등급의 삼수 실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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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이렇게 뭔가를 써보는건 처음이네요..

몇 분이나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맞춤법이 많이 틀리거나 글이 두서가 없을수도 있는데 쪼금 길었던 수험생활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써봅니다.


중학교 시절

수도권 거주중이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인문계 중학교를 진학했고 중학교3년동안 따로 한 공부라고는 동네 수학학원가서 멍하니 칠판 보면서 들은게 전부고 학교 수업 간간히 들었다. 졸업 할때는, 흔히 말하는 실업계(특성화고)를 못가는 내신이라 일반계를 갔다(평준화지역). 전교생이 400명 정도 였는데 350등 정도 했었던거 같다.



고등학교 입학식 하기 한달전에 중학교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사고가 나서 제일 친한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때 장례식장에서 '내가 지금 만약 100억이 있든 어떤 사람이든 사람 목숨은 어찌 못하는거구나. 세상에서 젤 중요한 것이 사람 생명이구나' 이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나고 떠난 친구의 부모님이 오열 하는 모습과 친구의 주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슬퍼 하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대가리 텅텅 빈 중딩이고 그 사고난 상황에서 냉철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 했던 기억도 난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나는 중학생치고 그 상황에서 cpr도 하고 인공호흡도 하며 그 상황에서 일반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거였는데 그 당시에 어린 마음에 떠난 친구한테 너무 미안하고 내 자신이 싫었다. 나는 그래서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사람이 목숨을 잃으면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걸 견딜수가 없었다. 나도 내 친한 친구든 내 가족이든 누군가가 오랜 시간 살아서 세상을 떠나는게 아니고 흔히 말하는 사고로 떠난다면 내 스스로가 고통스러울거같았고 그 유가족들이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다신 보기싫었다. 정말 그 당시에 돈이든 뭐든 다 필요없고 사람을 내 손으로 살리자 이 생각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심리치료 1달간 받고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다.

새학기에 설문지?에다가 장래희망을 응급의학과 의사라고 적었고 담임선생님과 상담할 때 다른 꿈 없냐고 물어보셨다. 고등학교가 연고대 일반과 수시로 1~2명 겨우 진학하는 학교인데 게다가 고1 담임생은 중학교 성적을 아셨을테니 그렇게 말씀하신거 같다. 다른 꿈 없다고 했다. 할 말이 없으셨는지 그냥 상담이 끝났다. 


수학은 중학교 수학부터 개념원리 사서 독학하다가 1학년 2학기부터 개인과외를 붙혔고, 영어는 my와 me 구별도 못하고 because랑 because of도 차이를 몰랐다. 그래서 이명학 일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국어는 이것저것 독학용으로 나온 수능책을 봤었다.  어차피 수시로 의대 못갈거라 생각해서 정시 위주로 공부했다. 근데 평소에 학교 수업은 단 1초도 빠짐없이 풀 집중했었다. 평소에 풀집중 하면서 수업 듣다가 내신 시험 1~2주 전부터 내신 준비를 했었다. 영어는 그 때 문장 구조를 잘 몰라서 그냥 본문 달달 암기 했던거 기억난다.그냥 a4에 계속 쓰고 계속 읽었다. 국어도 그냥 외웠다. 수학은 교과서랑 rpm 봤었다.

고1 내신이 국영수 3등급이고 공통과학이랑 화학 모두 내신 1등급이였다. 근데 고1 6월은  5 6등급이였다. 계속 내신 조금씩 챙기고 정시공부 팠다. 고1 11월에 평균 2 3 맞았었다.내신은 1학년 2학기부터 한 두 과목만 2등급이고 나머지 올1이였다. 나는 사실 의대 가고 싶었지만 막상 공부하면서도 인서울도 못하면 어떡하지 했는데 성적이 공부하니 올랐다. 고2 11월 모의고사 국영수 121 나왔고 불가능은 없구나 싶었다. 근데 고3 시절 여자에 빠졌고 고3 내내 공부 하는둥 마는둥 했다. 이때 꼬였다.

그냥 재수해야지 했다. 병신이다.과탐 바꿔서 재수해야지 해서 고3 때 과탐 버리고 국영수만 했다. 

그러고 고3 수능 23355 맞고 재수 시작했다.


재수 정말 열심히했다. 강남의 학사에서 살며 2월에 재종반 개강하고 종강 할때까지 학원 빠진적 없고 자습 다 나갔다. 미친듯이 했다. 사관 시험 그냥 장난으로 가서 대충 풀었는데 1차 합격하고 모의고사도 올랐다.근데 수능날 또 조졌다 35123 맞았다. 내가 대가리가 빠간가 싶었다. 


삼수 시작했다. 재종이 맞지 않는듯해서 독재학원 갔는데 독재 학원 돈이 너무 아까워서 독서실로 옮겼다. 하루 순공 10시간씩 했던거같다. 그러다가 길에 쓰는 시간이 아까워져서 집 독재를 시작했다.

이때 하루 14시간이상했다. 점심은 30분컷하고 저녁은 인강보면서 먹었다.집 바로 앞 상가에 담배사러 가던가 담배 피러 갈때는 제외하고는 현관 밖으로 안나갔다. 재수할때는 물론이고 삼수할때 공기계도 없었다. 그냥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았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나중에는 전자담배를 사서 한달넘게 현관 밖으로 안나갔었다. 정말 열심히했다. 근데 너무 힘들었고 자살하고 싶었다. 혼자 방에서 울었고 정말 사람이 왜 미치는지 알겠고 왜 수험생들이 수능전날에 자살하는지 이해가 되더라 그 당시에 오르비에 글도 썼었다. 6 9 평 모두 지방의 성적이였고 정말 나는 미친듯이 살아서 이번에는 무조건 되겠다 싶었다.

근데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수도 없었다.병원을 갔고 허리디스크였다. 어이가 없었다 공부하다가 허리디스크라니.. 이 때가 10월이였다. 이 때 대자로 누워서 태블릿으로 과탐개념인강 봤었다. 스스로 이게 내가 정상인가 싶었다. 정말 욕이 절로 나왔고 너무 힘들었다. 다시는 이렇게 절대 못살거같다. 내가 이렇게까지 공부한 원동력은 의사가 되겠다는 그 의지 하나였다. 일종의 나는 강박증이였던거 같다 무조건 의대 가야한다.이게 내가 공부 시작한 이유고 내가 변한 이유니까 다시는 내 주위사람을 떠나보내기 싫었으니까..

근데 수능은 또 망했다. 생사수를 할건가 군대를 갈건가 대학을 그냥 갈건가 반수를 할건가 고민 많이했다.  결론은 사반수다.


포기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다시 도전하기로했다.

누군가는 나이 쳐먹고 현실파악 못한다고 할수도있다

내가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그게 팩트니까

스스로 아무리 냉철해지려해도 나 자신은 냉철하게 못 다루는거 같다.

삼수 끝에 드는 생각은 인생은 원하는대로만 되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는거다 

오히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나는 중학교시절 대학 갈 생각도 안했고 이렇게 공부를 할줄도 몰랐다.

제일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날줄도 몰랐고 내가 삼수를 이렇게까지 실패할줄도 몰랐다. 

정말 인생은 어찌될지 모른다는게 너무 와닿는다.

나는 삼수 망하고 인생 운빨이네 ㄹㅇ신은죽었다 이랬었다.

근데 이런 저런 고민해보니 내가 수능 때마다 망하는건 내 멘탈이 쓰레기이고 긴장감을 이기지못하고 실전연습을 안한거고 국어 어렵게 나온걸 대비 못해서다.

인생은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지만 따지고보면 필연적인거같다.

삼수를 하면서 인간관계, 외모, 건강 모두 망가졌다.

근데 후회하지는 않는다. 깨달은게 너무 많고 고통에 무뎌졌다.


맥락도 없고 두서도 없고 글이 쓰레기라 읽으시는 분 몇 분이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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