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축구부 [857860] · MS 2018 · 쪽지

2019-01-20 03: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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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이 직업이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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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시간이 가는데 나는 고등학생에 언제까지고 멈춰있다

넘어가는 달력빼고는 모든게 똑같이 변한바가 없다


오르비에는 매일 보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자리에 있고

나도 4년전에 있던 그자리에 아직도 있다

사이트는 그대로인데 사람만 늙고 있다.


초등학생이던 엄마 친구아들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고

나는 늙어버려 예전에 갖고 있던 열망이 더이상 불타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버리는 것에 느낌이 사라졌다


하루일과를 보내고 기계처럼 퇴근하는 직장인들 처럼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나오며 무의식중에 만족감을 느끼는

내가 가끔씩 섬뜩하다


머리로는 이제 수능을 놓아야 하는것을 안다

하지만 매번 나는 수능을 위해 오르비를 기웃거린다

어떻게든 미련을 떨처내야하는데


학벌주의 때문에 다른 일에 느껴야할 설렘이나

뛰어야할 가슴에는 이제 재만 남았는지

아무리 불쏘시게 질을 해대도

늙어버린 말 처럼 채찍질에도 꿈쩍도 하지않는다


패배감과 권태로움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한다

남들이 명문대라 하는대학에 다니면서도

수능판을 떠나지 못하며 독재관을 기웃거리는 나는

학원 근처에 보이는 갓 스물된 재수생들의 눈을 보기가 

무섭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제는 인정해야한다.

내가 4년전 강남에서 장수생과 노량진에서 공시생을 보던 눈으로 나를 처다 보더라. 속으로 너희는 이렇게 안될거 같아?

라고 하지만 결국 의미없는 짓이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봤는데

거기엔 내가 알던 20살의 나는 없고 눈밑이 패여있는 장수생, 회색빛 인간만 있더라


이제는 서울대 그거 때려치워야지, 안가고 만다

굳게 마음을 먹고 책을 덮고 나와도


내 마음을 비웃듯이


아냐 한문제만 더맞으면돼 이미 늦었으니 갈때까지

가보자! 이런 생각이 든다.


수험생이 직업이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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