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1타신승범 [836995] · MS 2018 · 쪽지

2019-01-19 22: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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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내가 싫어하는 대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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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일 돈 낭비가 심한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대치동이라는 곳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곳을 교육의 메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메카보다는 무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교육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무덤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미리 말하지만, 저는 사교육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사교육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교육, 공교육 이전에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능력을 최대로 만들어주는 것이며, 이러한 기능을 하는데에 저는 사교육이 공교육에 대해 충분히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겨 퀸 김연아씨도 사교육이 없었다면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대치동은 확실하게 교육의 무덤입니다.

그 이유는 여기서 이뤄지는 교육의 대다수는 목적이 능력의 향상이 아닌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수단이어야 하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청소년기의 학생들을 교육할 때는 반드시 그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을 이겨서, 혹은 경쟁을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어떤 경쟁이든 고민없이 시작하는 행태는, 진 사람에게는 패배감을, 이긴 사람에게는 승리에 대한 집착, 그리고 패배에 대한 공포감을 누적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지속된 경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정작 중요한 때에 열정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대치동에서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학원이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종류의 학원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원은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한 결정인지 아니면 자기만족인지 모를 결정을 하면서 이 학원들이 본인들의 행태를 지속해나가는데 도움을 줍니다. 


과거 저는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중3 아이를 둔 한 학부모님이셨는데, 저에게 한국사 능력 검증시험을 준비해야할지 여쭤보셨습니다. 



일단, 이 때 첫 번째로 제가 물었던 것은 "왜?" 였습니다. 


만약, 아이가 한국사를 좋아한다거나, 아니면 그쪽 관련 진로를 생각하거나, 조금 더 나아가 향후 대학교에 갈 때 한국사 능력시험이 경쟁력을 갖추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 저는 주저없이 학원을 다니는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대답은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다시 여쭈어보았지만, 마땅히 답은 하지 못하셨습니다. 

아이의 장래희망은 의사였습니다. 



물론, 아까 그 학부모와 학생의 경우 대치동은 내신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먼저 한번 예습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사 능력 검증시험같이 비교과에 따로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성질의 것을 아이가 학원까지 다니면서 공부하도록 결정할 때, 아이가 이것을 공부하고 싶어하는지, 혹은 아이의 장래희망과 관련이 있는지를 먼저 고려하는 대신, 주위의 학부모들이 어느 학원에서 주어들은 말을 먼저 고려하는 모습은 과연 도대체 이 사람들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이 동네로 이사온게 맞을까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대치동 아파트들의 전세값이 최소 8~9억 연 이율 1%여도 1년에 천만원정도의 이자가 나올 정도의 돈입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10년, 학원비를 제외해도 대략 1억, 세금 고려해도 7천만원 정도의 돈입니다. 


이 외에도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교육비는 어마무시합니다. 


이런 돈을 투자하실 의욕은 있으신 분들이 제일 기본적인 고민은 하지 않고 계신 겁니다. 


아! 아니면 애초에 대치동에 오신게 자녀분들을 위해서가 아니실수도 있겠군요. 










이러한 목표의식이 없는 교육은 결국 세가지 결과를 냅니다. 




첫번째로, 아이들이 공부를싫어하게 됩니다. 


왜 공부하는지도 모르겠고, 피곤해 죽겠는데 아침부터 학원가서 달달한 음료 마시면서 게속 시험만 칩니다.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래도 바라는게 있으니까 하지, 이 아이들은 뭐 바라는 것도 없는데 진짜 왜 공부하는지 회의가 많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필요한 공부를 하지 않아서 입시 상에서 결과가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이 나타납니다. 


의대가 목표인 아이를 데리고 일단 과고를 보내야겠다고 아이가 흥미도 없는데 올림피아드를 시킵니다. 


아이가 뛰어나서 흥미는 없지만 어떻게든 해서 상을 타고 과고를 갑니다. 


하지만, 과고를 가면 자기 같은 친구들, 혹은 자기 과목에 가진 애정을 가진 친구들과 경쟁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자기 과목에 애정이 없었던 친구는 경쟁에 치이고 흥미도 잃고 여러모로 괴로움에 가득 찹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과고에서 의대를 지원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소수입니다. 


차라리 중학생때부터 선행학습을 하든지 수능이나 의대를 갈 수 있는 다른 입시수단을 고려했다면 의대에 가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세번째로, 아이들은 사람을 성적으로 판단하는 찐따가 됩니다. 


승리와 패배라는 경험은 값집니다. 하지만, 초등학생때부터 끊임없이 경쟁하고, 성취감이 아닌 승리, 혹은 자신의 상대적 위치에 대한 쾌감만을 추구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본인의 목표가 아닌, 1등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1등이 갖는 것, 1등이 하는 것, 1등인 것이 그들의 과제가 되며, 서열에서 높은 사람을 선망하고 낮은 사람을 배척하는 그런 찐따를 만듭니다.



수많은 학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대치동으로 옵니다. 


하지만, 대치동을 온 이후 그들은 더 이상 "자식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길 그만두고, 편한 길을 선택합니다.


주변 엄마들이 얘기하는 말을 듣고, 아이들을 학원에서 성적을 뽑는 기계로 전락시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의 진로나, 아이의 목표가 아닌, 승리를 위한 삶을 살게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삶을 살게 하기위해 대치동에 오시려면, 오시지 않는 것이 낫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대치동의 화려한 결과가 보이시겠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수면 아래에 경쟁에 깔려 목적을 상실한 학생들이 무수합니다. 수면위의 학생들도 위험합니다. 


경쟁이 계속되는 한, 성취가 아닌 승리로부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점점 적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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